전일광장·정상연>예술은 예술이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일광장·정상연>예술은 예술이다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4. 04.23(화) 13:58
정상연 교수
“여러분은 예술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얼마 전 음악을 전공하는 2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필자가 물었다. “예술은 인생입니다.”, “예술은 영원한 시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등 뻔한 질문에 재치있는 현답들로 대화가 쌓였다. 과연 ‘예술은 무엇일까? 에 대한 질문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왔고 예술과 철학적 관념에 대한 개념 인식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생각하는 예술은 인간의 수많은 활동 중에 가장 빛나는 창조 행위이며 영적 활동이라 믿는다. 형상화되는 그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인위적 수고보다는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인간의 정서와 가치를 전달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다. 그래서 톨스토이(L. Tolstoy, 1828~1910)는 ‘예술은 무엇인가?’를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그 어떤 것’으로 정의하였다.

예술은 영적 교감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근본적인 자율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에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술을 정치적 수단이나 도구로 오용(誤用)해서도 안되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없다.

중세 이후 아니 그 이전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이념이나 정치적 논리에 앞서 실제적 존재, 즉 그 작품으로 인정받고 오늘날까지도 찬란한 빛을 발현하고 있음이다. 이를테면 14세기에서 16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혁신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최후의 만찬>을, 또 한 명의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는 <피에타>를 제작했으며, 라파엘로(1483~ 1520)가 〈아테네 학당〉을 인류의 유산으로 남겼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이분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80억 세계인구 중 일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순수한 예술적 행위와 위대함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시대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계몽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함과 동시에 정형화된 형식미가 돋보였던 고전주의 시대 천재음악가들을 살펴보면, 교향곡을 106곡이나 작곡해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1732~1809)과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무려 626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1756~1791),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베토벤(1770~1827) 등을 언급할 때도 정치적인 추를 좌, 우로 나누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3대 발레 작품으로 알려진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이자 러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 그는 러시아 민족의 고유한 색과 정신을 음악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근세에 누구도 그의 작품을 이념의 논리로 차용하지 않는다.

현재 중국 클래식 음악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랑랑(1982~)과 유자 왕(Yuja Wang, 1987~)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음악가들이다. 미국 백악관에 초청되어 독주회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여러 번의 내한 공연을 했었다. 이들에게 우리는 공산주의자 또는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예술가일 뿐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항상 클리셰(cliche)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이데아(idea)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예술은 객관적 시선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찾는 영적 활동인 것이다. 물론 예술도 사회 속에 존재하는 규정과 제도, 규범(규칙)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하고, 자신이 딛고 있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예술’ 그 작품에 메시지를 담아 감동이라는 흔적을 세상에 남긴다. 그래서 예술은 고전이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즉 예술은 예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