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노영필>다시 흙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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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노영필>다시 흙으로부터 배운다
노영필 교육평론가
  • 입력 : 2024. 04.21(일) 15:17
노영필 교육평론가
평생 배움을 멈출 수 없다. 우연한 기회로 농작업실습연수에 참가해 뜻밖에 쏠쏠한 즐거움을 얻고 있다. 자연과 함께하고 자연을 이해하는 연수여서일까 사뭇 생기가 돈다.

농사짓기는 흙이 만든 스토리텔링이다. 흙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씨앗은 흙 속에 자리를 잡으면 수백 배의 힘을 이겨내고 싹을 띄운다. 물론 수분이 놀러오고 햇살이 친구가 되어줄 때 새집살이를 시작한다.

흙은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다. 인간이 죽으면 누울 자리를 만들어주고 동식물에게 살아갈 생명의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흙은 넓은 품으로 모든 것을 안아준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다. 흙이 위대한 이유다.

연수시간 내내 지인이 좋은 흙을 얻어가겠다고 농장을 찾아왔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흙을 퍼 담던 지인은 자잘한 돌들이 섞여 나오니 땅이 나쁘다고 실망해 했다. 어떤 흙이 좋다고 생각했던 걸까? 지인의 흙 이해가 궁금해졌다.

좋은 흙, 나쁜 흙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만든 기준일 뿐, 흙 속에는 뭇 생명의 애환이 스며있고 만인의 사연을 품고 있는 지구의 역사 그 자체 아닌가. 흙은 동물의 숨결이 되고 식물의 향기가 되어 지금껏 지구를 아름답게 지켜왔다. 흙은 한 번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공생의 미덕으로 차별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았다. 생명의 품이 되어주었다.

흙은 늘 배움을 주는 보물 창고다. 흙은 인류가 살아가면서 빼놓지 않고 모셔야 할 소중한 존재다. 한줌 흙 안에 우주 생명이 머무르고 있으니 농사일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흙이 품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읽지 못하면 농사일을 성공할 수 없다. 흙의 친구는 물, 바람, 햇빛, 기온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식물들마다 갖는 생리, 병충해, 영양, 기후 환경의 이해가 연결되어야 안심이다. 나의 섣부름은 16년 복잡하게 자란 중학생 아이들을 1년 맡은 담임이 자칫 엉뚱한 선입견으로 대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연수에 참가하면서 흙을 둘러싼 새로운 이해의 계기가 되어 다행이다. 좋은 흙이 무엇인지, 좋은 환경이 무엇인지 그릇된 오해를 바로 잡은 정보를 얻었다. 가장 큰 오해는 농사짓는 일을 ‘힘쓰는 일’ 쯤으로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연장이 일을 한다’고 말한다. 농사일도 트랙터, 이양기, 관리기 등 대부분 기계가 일한다. 조작법만 알면 힘들이지 않고도 기계를 움직일 수 있다. 인공지능, 로봇까지 등장한 스마트농업까지 온 걸 보면 힘이 아니라 머리로 농사를 짓는 세상이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깨 너머로 배웠던 주먹구구식의 농사짓기를 되짚어 정리할 기회가 필요했다. 이번 연수가 안성맞춤의 시간이 된 것이다. 그 소박한 동기가 흙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아는 척했던 농사일은 또 다른 부끄러움이었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이 얼마나 나쁜 표현인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참으로 무지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앞으로는 ‘농사나 짓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아무 배려도 담지 못한 채 농부에게 모욕 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흙이 악동들의 신발에 묻어 집으로 들어올 때 천덕꾸러기로 취급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흙의 건강은 사람이 좌우할 뿐 흙은 그대로 거기에 건강한 숨결로 머물러 계실 따름이다.

흙은 지구생명의 포태다. 흙의 가르침으로 흙을 새롭게 모실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 흙을 보면 감사해하고 경의를 표현할 것이다. 흙의 생명성에 다시금 눈뜨게 해준 흙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