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구자곤>‘수검표’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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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구자곤>‘수검표’에 담긴 의미
구자곤 화순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 입력 : 2024. 04.08(월) 14:58
구자곤 사무과장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몇 번의 흔들림과 격렬한 공방을 치르며 이제 투표, 개표만 남겨두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 여러 선거 이슈와 어젠다로 서로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을 했다면, 우리 선관위는 차분하고 내실 있게 선거를 준비해 왔다. 이번 총선부터 가장 달라진 점은 수검표 절차의 도입이다. 분류기운영부에서 분류된 투표지를 심사계수기에 투입하기 전, 개표사무원이 손으로 직접 한 장씩 확인하는 서사를 쓰게 됐다.

수검표 절차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돼 있다. 먼저 선관위에 대한 부정선거 의혹제기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고, 신뢰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또 수검표 절차는 선관위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있음을 공표하는 시그널이다. 선관위는 불신, 정치권 갈등으로 얼룩진 사회 분위기를 수검표라는 장치로 통합과 공감의 정서적 토대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전 한 유튜버가 전국 40여곳의 (사전)투·개표소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사건이 있었다. 그 자체가 사회체제에 대한, 선관위에 대한 불신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러한 개인의 일탈은 사회 전반에 불신 풍조를 확산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선관위는 불법 카메라 탐지장비를 활용하는 등 투·개표소 시설관리를 강화하고 유권자가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불법카메라로 상징되는 이러한 불신 풍조는 사람간의 연대를 더욱 단절시키고, 사회시스템 작동기제의 규범을 훼손시킨다. 불신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결국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거친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진 고통, 분노, 갈등, 불안, 두려움의 감정으로 점철된 ‘아픔의 자화상’이다.

우리 조직도 지난 2022년 대선 사전투표 부실관리 논란 등으로 여러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었다. 직원들은 모두 고통과 아픔으로 심연의 바다에 침잠했다. 우리는 지난 아픔과 고통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고통 속으로 들어갔다. 더욱 가열찬 자기검열도 실시했다. 우리 조직의 고통과 아픔은 ‘아픔의 자화상’을 가진 이들과도 역설적으로 연결된다. 갈등과 대립,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수검표’라는 고통의 산물을 내놓으며 그들도 소중한 한 명의 유권자라는 사회통합과 공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회체제, 선관위를 불신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수검표’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의 신뢰성을 ‘이런저런 장치들’을 보임으로써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불신’을 잠깐 내려놓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단계까지 오라고 손 내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