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욕망의 탐구… 금기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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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욕망의 탐구… 금기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 '라스트 썸머'
  • 입력 : 2024. 04.07(일) 15:18
‘라스트 썸머’ 포스터. (주)디스테이션 제공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이 10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덴마크 합작영화 ‘퀸 오브 하츠’(2019)를 리메이크한 영화 ‘라스트 썸머’는 감독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관능적 사랑을 소재로 삼고 있다.

필자는 감독의 전작인 ‘로망스’(1999) 관람 경험을 도대체 잊을 수가 없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되자 영화제에 관여하던 방송연예과 교수에게서 우수작으로 추천을 받은 영화가 ‘로망스’였다. 그런데… 영화관을 빈틈없이 가득 채운 관객들 사이에서 동료교수와 함께 관람을 시작했다가 곧바로 ‘입.틀.막’이 시작되었다. 눈은 화면을 보고 있지만 아무런 소리를 낼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고 괜스레 옆좌석의 동료교수 보기조차 민망하기 짝이 없어 러닝 타임 내내 벌을 서다 나온 느낌이랄까…. 아무리 문화적 차이가 있다 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그렇게나 노골적인 연출은 수용에 거부반응이 일었던 기억이었다.

그럼에도 프랑스 소설가이자 감독인 카트린느 브레야 작품이 칸느에서 주목을 받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고, 필자로서는 응당 놓친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서, 그녀의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는 있었다.

안느(배우 레아 드루커)는 청소년 전담 변호사이다. 사회 저명인사답게 아시아계 입양아인 두 딸들, 안젤라와 세레나를 키우며 남편 피에르(배우 올리비에 라보딘)와 함께 엘리트 층으로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중이다. 어느날 남편의 전처가 양육하던 아들 테오(새뮤엘 키르셰)가 이 집에 들어온다. 기숙학교에서 사고를 친 말썽꾸러기 10대 소년 테오는 제법 건장한 청년의 모습을 띠고 있다.

감독은 금기에 대한 거침없는 도전을 안느와 테오를 통해 시도한다. 사회적 관행에 따르면, 청소년 전담 변호사인 안느는 가정 밖에서나 안에서나 여성의 성 역할인 보호자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감독은 이것이 여성의 천성이자 본능이 아니라는 듯 안느로 하여금 욕망의 맨홀에 적극적으로 밀어넣는다.

하지만 자연에서 사회로 돌아간 안느는 지금껏 가꾸어놓은 일상이 테오에 의해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로써 길고 긴 방황과 갈등의 늪이 전개된다.

감독은 사회적 규범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충돌, 욕망을 대하는 태도를 낱낱이 탐구함으로써 그녀의 모든 작품에서처럼 여성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사회윤리적 잣대를 꺾은 채로 인물의 시선과 눈동자의 흔들림,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영화 ‘라스트 썸머’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변주곡과도 같다. 신화 속 이오카스테는 자살했지만 안느는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변호한다. 남편 피에르는 거짓을 진실로 수용하는 위선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미숙하고 취약한 존재인 청소년 전담 변호사가 처한 딜레마에 의붓아들과의 금지된 사랑이 위선으로 봉합이 되는 건지… 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인터뷰에서 “열린 결말”이라며 여운을 남긴다.

‘라스트 썸머’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제공
사랑이라는 상태를 몸의 세계로 그려내는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은 17세 발표한 첫 소설부터 18세 미만 금지 판정을 받았고, 20~30대에 일찍이 영화감독 데뷔를 했다. 자신이 쓴 성장소설을 영화화한 도발적인 데뷔작 ‘정말 어린 소녀’(1976)였는데 바로 상영금지를 당했다. 이후에도 그녀가 감독한 작품 ‘36 사이즈의 작은 소녀’(1988), ‘완전한 사랑’(1996), ‘로망스’(1999) 그리고 대표작 ‘팻 걸’(2001)은 모두 성적 수위가 높아 숱하게 프랑스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마광수 교수 급이었던 모양이다.

그랬던 그녀도 이제 76세인 노장감독이다. 그녀는 “영화는 감정을 나타내는 도구”라며 “영화는 나의 가장 깊숙한 내면이자 나의 일부이므로 관객 여러분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와 대화하는 것과 같아요”라는 친근하고도 우아한 인사말을 남겼다. 마광수 교수가 작품 속 인물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듯이 브레야 감독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