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의료공백 대안 ‘비대면 진료’ 혼란만 가중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의료건강
[전남일보]의료공백 대안 ‘비대면 진료’ 혼란만 가중
비대면 진료하는 병원급 0
일부 의원들도 ‘초진’ 거부
노인 등 사용 불편…신뢰↓
“IT·통신 돈벌이 수단” 지적
전문가 “중증· 위급 대안을”
  • 입력 : 2024. 02.27(화) 18:29
  • 정성현·강주비 기자
정부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진료지원인력 간호사 시범사업을 본격 시행한 27일 조선대학교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양배 기자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의료 공백을 없애기 위해 내놓은 ‘비대면 진료’가 현장에선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전남 상급병원 및 2차 의료기관의 경우는 인력부족 등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할 여력이 되지 않는 데다, 의원급들마저 정부 안내와 달리 ‘초진’ 등에 제한을 두면서 시민들의 혼란은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정부가 의료 대란을 빌미로 플랫폼에 돈벌이 수단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비대면 진료’의 허용 범위가 대폭 넓어졌다.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초진’ 환자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졌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본래 비대면 진료는 시범사업 형태로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최근 6개월 동안 대면진료를 본 ‘재진’ 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됐다.

그러나 병원급 이상은 물론 기존 시범사업 대상이던 의원급 의료기관도 정부 지침을 적용하는 곳은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광주·전남 지역 거점 병원인 전남대·조선대병원과 기독병원은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비대면 진료 역시 의사들의 몫인데, 응급·중증환자마저 ‘겨우’ 수용하는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수요를 우선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점도 추진이 어려운 이유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교수님들이 비대면 진료까지 소화하기엔 여의찮다”며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른다.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원급 의료기관 역시 종전처럼 ‘초진’에 한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보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날 본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진료기관 명단’에 포함된 관내 의원 10여곳에 무작위 전화를 돌려 확인한 결과 8곳이 ‘재진’ 환자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고 1곳은 비대면 진료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머지 1곳만이 초진 환자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화상 시스템을 갖춘 의료기관도 없어 오진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광주 남구 모 의원 관계자는 “매스컴에서 나온 것처럼 화상으로 직접 불편한 부분을 보여주고 소통하는 방식의 비대면 진료는 의원급 쪽에서 불가능하다”며 “전화로 기존에 처방받던 약을 재처방 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27일 화순의 한 의원에서 내과의가 비대면 진료 후 약을 처방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시스템을 구축한 의원도 문제다. 장비를 투입해 진료 여건을 마련했지만 정작 시민들이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화순의 한 의원에서 만난 김모(68)씨는 “코로나 때부터 비대면 진료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설명은 해줬는데 어려워서 포기했다”며 “노인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 하기 어렵다. 만나서 짚어주며 봐야지 믿음이 간다. 어차피 약을 타려면 밖으로 나와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는 △구글·애플 스토어 앱 검색 △앱 다운 및 회원가입 △본인 인증 및 건강 문답 △질환에 맞는 진료 과목 선택 △화상·통화·문자 진료 △처방전 수령 순으로 진행된다.

해당 의원 원장은 “읍내로 나오기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비대면 진료를) 마련하게 됐다. 정작 먼 거리여도 대부분 현장 방문을 선호한다”며 “수년 간 써본 결과 비대면 진료가 의료공백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비대면 진료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IT·통신 등 플랫폼 업체들을 배불려주기위해 이같은 정책을 시행한 것’이라는 의혹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료 관계자는 “내 코가 석 잔데 화상 장비·인력을 신규 구축할 병원이 어딨겠나”며 “비대면 진료는 의료공백을 다 메울 수 없다. 화상 진료가 안 되는 곳은 전화로 해야 하는데 단순히 ‘머리가 아프다’는 내용을 듣고 어떤 의사가 섣불리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이상주의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영광 한 2차병원 간호사 이모(58)씨는 “정부는 의료대란으로 인한 경증환자 수요를 의원급에서 해소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며 “예산을 투입한다 해도 현장에서 준비가 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결국 그 사이에서 플랫폼(IT·통신사)만 배부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의료계는 비대면진료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위·중증 환자 등 진료 대상에 대한 세밀 분류 △각급 병원별 진료 체계 세분화 △의료문제 발생 시 보상 절차·제도 △의료법 공백 최소화 및 통신시설 설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성현·강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