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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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586 퇴장
이용규 논설실장
  • 입력 : 2023. 01.17(화) 15:37
이용규 논설실장
 2023년 계묘년은 토끼해이다. 60년만에 찾아온 ‘검은 토끼’의 주인공은 1963년생이다. 63년생은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1기(1955년~1963년)에 태어나 인구 증가에 일조를 한 이들이다. 가정마다 조부모, 부모, 4~5명의 동기간 등 대가족의 틈바구니에서 물질적으로 부족해도 ‘가족이 재산’이라는 가족 사랑을 배웠다. 1980년대 대학을 다녔으니 586세대로 통한다. 토끼띠, 586세대는 농업중심에서 산업화라는 국가적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각기 다른 영역에서 치열하게 대한민국의 발전을 담당한 이들의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1980년대 20대였던 586은 산업현장과 대학에서 개발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위해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일상에서 피할 수 없었던 최루탄 가스는 격랑의 시대에서 감내해야할 대상이었다. 군부 독재의 항복을 목격한 586은 20대 끝자락에 직장에 들어가서 1997년 IMF시기를 온 몸으로 극복했고, 현재도 건재한 벤처 신화의 주역으로서 한페이지를 장식했다. 1980년대 태동한 야구, 농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 시대의 전설들과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대학 진학률이 30%를 감안하면 다수의 586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서 기름에 젖은 작업복을 입고 선배 세대들과 함께 대한민국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눈물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떠밀려와 발버둥치며 성공신화를 써내려간 586이 눈물겹고도 화려한 서사를 뒤로한 채 서서히 삶의 현장 1막에서 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분야는 여전히 무풍지대다. 운동권 출신의 86그룹들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키즈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은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치적 지형으로 여야는 달랐지만 이들이 젊은 시절 매달렸던 민주화 활동은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의 든든한 입신양명의 보증서였고, 사회 전분야로 뻗은 공고한 네트워크는 이익을 보장하는 완벽한 시스템으로 작용했다. 이들에게서는 조선시대 사림과 같은 특성이 드러났다. 조선시대 사림은 정치에 군자라는 선악의 개념을 도입해 갈라치기를 했다.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워 자신들은 군자이고 기존 관료들은 소인이기에 중용하면 안된다는 논리였다. 자신들만이 정의로운 세력이라는 개념으로 공신들의 부패와 탐욕을 성토했지만 이들도 못지 않은 특권 향유와 자신들의 불의와 지적에는 “예전에도 그랬다”고 얼버무렸다.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권력을 독점한 뒤에는 치부와 특혜에 골몰했다. 위선과 내로남불로 명경지수같은 도덕성을 기대한 많은 이들을 실망시켰다.

 586세대가 어느 때 부터 날선 분노와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정치 세력화된 86그룹을 겨냥하는 비판의 화살에만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이끌어온 이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없고, ‘나 때는 말야’ ‘꼰대’, ‘무능하고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찬 세력’ 등 온통 독설로 장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고 진보를 외쳤던 시대가 만든 오늘의 세상이 자식세대들에게 “더 불공정하고 더 정의롭지 못한다”는 비판앞에서는 아픔이 크다. 달도 차면 기울고 도도하게 흐르는 물의 흐름을 거스릴 수 없음은 명백한 진리이다. 나이라는 생물학적 잣대로 사회발전의 견인차를 했던 노력과 열정이 무시돼 비애감마저 든다. 어제없는 오늘이 없듯이, 사회의 튼실한 토대를 놓는데에 일익을 인정해주는 아량도 필요하다. 정년이라는 제도에 틀에 떠밀려 삶의 현장을 떠나는 586세대가 인생 2막의 무대에서 쫄지않고 멋진 주역으로서 건재하길 힘찬 응원의 박수를 서로에게 보낸다. 이용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