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하정호>새로운 시대를 위한 지방교육자치와 교육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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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하정호>새로운 시대를 위한 지방교육자치와 교육주권
하정호 광주시교육청 공무원
  • 입력 : 2025. 01.12(일) 17:34
하정호 광주시교육청 공무원
한밤중에 벌어진 내란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 한겨울 길거리에서 은박지를 둘러싸고 돌부처처럼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런데 관저 깊숙이 숨어든 내란의 우두머리가 체포되지 않겠다고 차벽을 쌓고 철조망을 두르는 사이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이 계엄 이전으로 돌아갔다. 34%와 36%. 겨우 2%, 오차 범위 안의 차이다. 무당층은 줄고 시민들은 니 편 내 편으로 갈라섰다. 전 국민에게 생중계된 내란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공화국의 정신과 헌법 질서를 유린해도 저쪽 사람이 대통령 되는 꼴은 못 보겠다고 한다.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여당의 지지율이 더 높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탄핵이 끝나면 다시 대선이 다가온다. 촛불혁명 때처럼 죽 쒀서 개 줄 수는 없다. 대통령이 바뀌면 저들이 내가 바라는 사회개혁을 해줄 거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정시 비율을 늘렸고, 국가교육위원회 출범도 미루고 고교학점제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입시개혁과 같은 논란이 되는 일을 다음 정부로 미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 이제는 연일 쏟아지는 정치권 기사와는 거리를 두고 우리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중앙정치와 보수양당만 바라보지 말고 분권과 자치, 시민주권의 회복을 위한 발판을 하나씩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지방교육자치는 미군정에 의해 선물처럼 주어졌다. 중앙집권적인 교육체제가 일본 군국주의를 지탱했다고 본 딘(W. F. Dean) 소장은 교육구의 설립, 교육구회의 설치, 의무교육에 필요한 교육재정의 안정적 확보 등을 담은 ‘교육자치 3법’을 제정하고 공포했다. 그리고 정부 수립 이후 제정된 ‘교육법’에도 이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에서 지방교육자치는 허울뿐이었고, 그마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1991년에 다시 부활할 때까지 지방교육자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때까지는 교육감도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2006년 이후로는 시민들이 직접 교육감을 선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감 직선만으로 지방교육자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을 전문성을 갖춘 교원이 학교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자주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021년에 개정된 ‘교육기본법’ 제5조(교육의 자주성)에는 ‘국가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에 관한 자율성을 존중’하여야 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할하는 학교와 소관 사무에 대하여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실시하여야’ 한다. 또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존중하여야 하며, 교직원·학생·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이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지역 실정에 맞는 교육의 실시, 교육 4주체의 학교운영 참여 등도 포괄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 개념이다.

여기서 한 가지, 1949년 제정된 ‘교육법’에는 분명 “공정한 민의에 따라” 지역 실정에 맞게 교육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이를 1997년에 ‘교육기본법’으로 대체하면서 이 구절이 빠지게 된 점이 아쉽다. 교육의 자주성은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시민통제의 원리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교사들은 법률이 보장하는 대로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 실정에 맞게 교육과정을 구성해야 한다. 교육의 전문성은 그 과정을 잘 수행하는 능력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헌법이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우리 사회를 재생산하는 핵심기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에 근거해 시민의 교육권, 학습 기본권을 되찾아야 한다. 이제 “공정한 민의에 따라” 마을에서도 주민들이 학교와 함께 지역교육계획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