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 열사의 아버지인 강민조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보호 위한 백골단 부활 규탄,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
특히 광주는 백골단의 폭력에 숨진 고(故) 강경대 열사가 안장돼 있었던 데다, 그의 부모가 식당을 운영하며 민주화 운동을 뒷받침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1991년 4월26일, 학원 자주화 투쟁에 참여했던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 열사는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당시 노태우 정권에 대한 국민적 항거를 촉발하며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강경대 열사의 희생은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사건 발생 사흘 뒤인 4월29일, 전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2학년 박승희 열사는 강경대 열사의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 도중 분신하며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쳤다. 박 열사의 분신 이후 60여일 동안 13명의 열사가 분신하거나 의문사로 목숨을 잃었다. 이 시기는 ‘분신정국’으로 불리며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이 뜨겁게 타올랐던 시기였다.
같은 해 5월18일 경찰의 갖은 방해 끝에 영결식과 노제를 치른 강경대 열사의 운구 행렬은 광주로 향했다.
같은 해 5월18일, 노제 장소를 서울역으로 옮긴 운구 행렬은 연세대학교를 출발해 광주로 향했다. 연고가 없는 강경대 열사의 유해가 광주에 안장된 이유는 강 열사의 유족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이 깃든 광주에서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통해 광주로 이동한 강 열사의 운구 행렬은 5월19일 밤 광주 금남로3가 광주은행 사거리에서 멈춰 섰다. 10만명이 넘는 시민과 학생들의 애도 속에 노제가 치러졌으며, 5월20일 강경대 열사는 광주 망월묘지공원에 안장됐다. 이후 이천 민주화묘역으로 이장됐다.
이후 강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씨 부부는 아들의 희생을 기리며 광주에서 활동하며 지역사회와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 강씨 부부가 1993년 광주 북구 우산동에 개업한 경민회관은 강경대 열사와 강민조 씨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식당으로, 민주화 운동가들의 모임 장소와 지역 사회 봉사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강 열사의 유족은 여전히 백골단의 부활을 자처하는 단체의 활동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적극 활동에 나서고 있다.
강민조씨는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백골단의 부활을 규탄하며 “이러한 움직임이 아들의 희생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 역시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김순 광주전남추모연대 집행위원장은 “백골단에게 희생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한다”며 “민주주의 역사를 무력화시키는 움직임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그는 “백골단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상징한다”며 이를 망각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상아 기자 sanga.je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