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22시 30분 윤 대통령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비상계엄령을 발표했다. 50분쯤 서울에 사는 아들이 국회 앞 사진과 함께 소식을 보내주었다. 실시간 뉴스를 보니 벌써 국회 앞에는 시민들이 몰려있었고, 어떤 사람은 계엄군의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고 있었다. 그 후 십여일 동안 서울에서는 매일 모여 탄핵 찬성을 독려하는 집회를 열었다.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춘천에서도 광주에서도 탄핵을 원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열렸다. 계엄이 통치라는 망상에 빠진 대통령 때문에 국민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란죄 혐의를 받고 있는 윤 대통령이 경찰 소환에도 불응하고 있다. 헌정사상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됐지만 이마저도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비뚤어진 열성 지지자 뒤에 숨어 꼴사나운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이때문에 거리의 시위는 더 뜨겁고 열정적이다. 특히 이번 시위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나는 비 오는 날에도 비옷을 입고 시위 현장에 있었다. 이번에는 그럴수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기우였다. 이번 ‘탄핵 촉구 범국민대회’의 주를 이루었던 연령층은 십 대부터 삼십 대 그리고 여성이었다고 한다. 게임을 하다 나왔다는 남자도 있었다. 그들은 체감온도 영하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집을 나와 추운 현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던 응원봉을 흔들며 누구에게나 익숙한 가요에 개사를 해서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 개인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기 모임’ 등 재미있는 풍자 현수막도 많았다. 왜 나왔냐는 질문에 “내 삶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응원봉을 들었다.”라는 젊은이도 있었다. 특히 발언대에 올라 탄핵 찬성에 대한 자기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청소년들을 보며 감동했다.
먼저 십 대에 주목한다. 흔히 기성세대들은 요즈음의 청소년들은 예의 없고, 사회에 관심 없고, 학교폭력이 심한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런 학생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대다수다. 그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민주적이고 상대를 배려하는 분위기다.
다음으로는 젊은 여성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페미니스트이면서 신유물론자인 이탈리아의 ‘로지 브라이도티’는 자신의 저서 ‘변신: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의 새로운 주체인 ‘여성-되기’에 대해 말했다.
‘여성-되기’로서의 주체는 ‘여성’이라는 단순한 범주에 묶이지 않는 다층적으로 체현된 주체라는 것이다. 즉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주체라는 개념에 갇히지 않고 현실에서 자기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낸 주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 다수의 여성이 ‘여성’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을 수 없는 고유한 개체로서 독립된 주체로 ‘체현’된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라고 본다.
집회 현장에 모인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젊든 나이가 많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대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의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