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권 색향미얏애화연구소장. |
가을의 진정한 꽃은 단풍이라 했다. 대한민국 단풍명소요 구례의 자랑인 피아골 단풍을 보고 싶어 길을 나선다. 창가에 스치는 섬진강 윤슬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자동차가 갈 수 있는 ‘산아래첫집’까지 갔다. “주차 좀 했네요” 주인장은 반갑게 맞이하며 “잘하셨습니다. 잘 다녀오셔요” 인사를 건넨다. 아무 조건 없이 주차하라는 구례 인심이다. 고맙고 감사라는 마음을 간직하며 배낭을 메고 혼자 걷기 시작했다. 단풍길을 걸으며 온갖 상념을 지워내며 삶을 돌아보고, 현재의 감정을 헤아려 봤다. 걷는다는 건 온몸으로 풍경을 받아들인다는 말처럼 피아골 풍경이 내 몸에 안기어 들어왔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풍경은 달랐다.
숲에서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계곡 물소리는 경쾌하고 우렁차다. 검푸른 물은 바위 사이로 흐르며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다. 평일이라 등산객은 60대가 대부분이다. 은퇴자인 모양이다. 거의 부부 동반이나 여성들이다. 만추와 단풍, 나이 든 사람들의 조합이 잘 맞는다. 말씨를 들어보니 서울,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이 혼재돼 있다. 등산로에서 서로 나누는 인사말이 정겹고 인정이 넘친다. “안녕하셔요.” “ 수고하십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힘내셔요.” 등 말 한마디가 고맙다.
표고막터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단풍 사이로 쪽빛 하늘이 눈부시다. 산 능선과 하늘의 가름 선이 좁아 보인다. 쑥차 한잔을 마셨다. 행복하다. 건강한 몸이 있어 감사하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어 고맙다. “하늘을 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두 발로 걷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청량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하다. 상큼한 향기를 맡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일하지 않고 여유롭게 안빈낙도 삶을 살 수 있도록 연금이 있어 감사하다. 모두가 감사할 일뿐이다.
등산로를 따라 길을 재촉한다. 바위에 푸른 이끼가 싱그럽다. 단풍 물든 나무 사이를 걷다 보니 자연의 소리와 함께 마음이 차분해졌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스쳐 갔다. 단풍이 바람을 부여잡고 조금만 참아주라고 소곤거린다. 바람과 조금씩 비추는 햇빛이 단풍 색채를 섬세하게 살려내고 있다. 만추를 연주하며 춤추고 있다. 발아래에서 나는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정겹다.
삼홍소(三紅沼)에 도착했다. 남명 조식이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 이고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쳐 수홍(水紅)이며 사람까지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해서 인홍(人紅)이라고 했다.”라는 삼홍소다. 여기에다 마음도 붉고 스마트폰도 붉어 오홍(五紅)이 됐다. 디지털 릴레이가 되어 대한민국이 붉다. 아쉽게도 잦은 폭우로 소(沼)가 많이 메워져 아쉽다. 계곡 출입을 금하고 있으니 가까이 갈 수 없어 더욱 아쉽다.
어찌하랴. 삼홍소 다리를 건너 희미한 햇빛을 받으며 바위에 걸쳐 앉아 추억에 젖어 보았다. 구례군농업기술센터 등에 몸담고 있을 당시 봤던 단풍과 결이 달랐다. 행사에 참여하고 직원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단풍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여유롭게 있으니 이제 서야 단풍이 잘 보인다. 물감으로 흉내 내지 못하는 다채로운 색채를 풀어내는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 꽃이 저리도 아름다울 수 있던가.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다. 멍하니 마음을 빼앗겼다. 꽃이 싱그러운 청년을 상징한다면 단풍은 원숙한 노인을 상징한다. 세상의 이치도 이와 같지 않던가.
단풍이 삼홍소에 하나둘 아니 수없이 많이 떨어진다. 추풍낙엽은 이럴 때 쓰는 말이로다. 단풍이 떨어진 가지 사이에 한줄기 햇빛이 들어오니 풍경이 달라졌다. 시시각각 변화무쌍에 감탄한다. 낙엽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변화의 필연성을 보았다. 무상(無常)의 개념을 알게 하고 생명의 순환과 변화를 일러줬다. 햇빛은 바람과 물소리와 합의체를 이뤄 사유하고 있다.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며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을 가슴속에 고이 모셨다. 찰나의 시간을 엮고, 지금의 감성과 풍경을 기억에 담아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승화할 시(詩)를 보태어 본다. 정호승 시인의 ‘가을’ 시를 낭송하며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여유롭다.
‘돌아보지 마라/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돌아보지 마라/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돌아보지 마라/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