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공 모양 건축물인 ‘스피어’가 개장하면서 화제가 됐다. 총 3조 2000억원을 들여 만든 스피어는 외벽의 높이 111m, 너비 157m의 웅장함을 자랑하며,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콘텐츠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대표관광지에는 콘텐츠 지적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 기반의 체험형·몰입형 시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과거처럼 단순 관람과 체험을 넘어서 콘텐츠 IP에 IT 등의 첨단기술을 결합해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몰입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거대한 화면 속 영상이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몰입감을 준 스피어 역시 대표적인 몰입형 콘텐츠 공연장이다. 스피어 뿐 아니라 미국 LA의 대표 관광지인 디즈니랜드, 유니버셜스튜디오 등도 기존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장면을 4D 등의 형태로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체험관들이 즐비하다. ‘K-디즈니’를 꿈꾸는 전남 역시 영화·애니·게임 산업에서 제작된 캐릭터 IP를 활용한 체험형·몰입형 콘텐츠 활성화 전략이 시급하다. 당장에 콘텐츠 산업과 첨단기술의 융복합 사업화를 꾀할 수 있는데다 전남 관광산업의 한계인 관광인프라 구축을 위한 핵심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미국 LA를 대표하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투어버스를 탄 관람객들이 4D 몰입형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
지난 2023년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세계 최대 규모의 공 모양 건축물인 ‘스피어’가 정체를 드러내자 전 세계가 주목했다. 건물 하나 짓는 공사비만 약 3조 2000억원(23억 달러) 규모인 세계 최대 규모의 공연장이다. 구 모양의 외벽의 높이 111m, 너비 157m으로 축구장 2개 면적에 달한다.
외관만으로도 압도하는 스피어 내부는 16K 해상도의 LED스크린이 설치됐고, 약 1만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스피어는 미국의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MSG)이 약 7년 전부터 기획해 건립했다. 개장 이후 호평을 받으며 라스베이거스의 새 명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스피어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콘텐츠 관광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다. 객석을 제외한 전면이 대형 스크린으로 둘러싸여 스크린을 한눈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다. 공연장 내부엔 16만개의 스피커가 설치돼 어느 객석에 앉아도 선명하면서도 웅장한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 모든 객석에는 영상과 사운드의 느낌을 진동으로 전하는 ‘햅틱 시스템’이 적용됐다. 진동뿐 아니라 영상 속에 담긴 바람과 향기, 열기까지 체험할 수 있다.
실제 현재 상영중인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지구에서 온 엽서’(Postcard From Earth)에서 우주선이 이륙하는 장면에서는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을 좌석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압도적인 영상에 빠져들게 해 관람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스피어의 외관 스크린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 시각효과도 압권이다. 스피어 측은 외부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는 광고로 하루 약 6억원의 광고 수익을 올린다고 했다. 외관 영상은 24시간 상영 중이며, 내부 관람료는 대략 20여만원 정도다.
국내에서도 스피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부가 오는 2025년 경기 하남에 총 2조원 규모의 ‘스피어’ 건립을 천명했고, 해당 지자체도 행정절차 등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도 관심이 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방문, 스피어 공연을 관람한 뒤 서울의 관광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놨다. 오 시장은 다양한 공연시설에 스피어의 첨단공연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찾는 외래 관광객 상당수가 K-팝 등 문화 체험·관람을 원하는 점을 고려해 서울시는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전남 관광전략,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
콘텐츠 IP를 활용한 몰입형 체험 공간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콘텐츠 관련 기업 등은 대대적인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올해 가장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건 디즈니다. 지난 8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혼다 센터. 디즈니의 최대 팬 축제 ‘D23’ 쇼케이스 무대에 오른 조시 다마로 디즈니 익스피리언스(Experience·경험) 회장이 공격적인 크루즈·테마파크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투자금액만 600억달러(약 82조 3020억원) 규모다. 디즈니 놀이공원·크루즈·리조트 등 체험형 상품을 총괄하는 그는 ‘역대급 확장’을 강조했다.
1957년 월트 디즈니가 고안한 ‘플라이휠’ 전략은 디즈니가 보유한 영화·캐릭터 등을 체험 사업에 적용해 잊기 힘든 ‘몰입 경험’을 만들고, 평생 디즈니를 찾는 충성 소비층을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체험 부문의 영업이익은 디즈니 전체 영업이익의 69%를 차지했다. 체험이야말로 디즈니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는 것이다. 콘텐츠 천국인 미국 LA의 테마파크 대다수가 크고 작은 체험형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 IP를 활용한 몰입형 체험 공간을 육성하는 세계적 흐름 속에 ‘K-디즈니’를 선포한 전남에 시사하는 바 크다. 전남도의 K-디즈니 전략은 콘텐츠 산업 육성과 함께 콘텐츠 IP를 활용한 관광산업 육성이 핵심이다.
하지만 도내 대표 관광지 등에서는 세계적인 콘텐츠 체험공간 육성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일례로 전남을 배경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보면, 지자체들이 앞다퉈 촬영지·세트장을 관광투어 상품으로 만들었지만 인기가 시들해진 촬영지나 세트장은 늘 관리부실 도마에 오르기 일쑤였다.
해양엑스포를 통해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연 여수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빅 오 쇼’는 당시 첨단기술을 접목,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10여년 뒤의 현재의 상황은 다르다. 최근 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몰입형 관공시설과 비교하면 기술적인 면에서 ‘퇴물’에 가깝다.
순천시 역시 국가정원박람회를 통해 전남 관광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급부상했지만 10년 가까이 ‘정원’이라는 테마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순천시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원과 콘텐츠 IP를 결합하겠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투자없이 기존 콘텐츠 상품과 빼어난 자연경관에만 의존한 지역의 관광 활성화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순천을 중심으로 한 K-디즈니 육성에 나선 만큼, 전남도도 새로운 몰입형 콘텐츠 시설 투자를 통해 새로운 관광전략 구축이 절실하다.
이복은 ㈜에스씨크리에이티브 대표는 “스피어 같은 대형 몰입형 콘텐츠 시설이 들어온다면 관광객 유치 뿐아니라 지역 콘텐츠 산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 올 것”이라며 “스피어를 운영할 선진기업과 지역기업과의 기술 협업, 인재를 키우는 플랫폼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몰입형 콘텐츠 기술이 접목된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이진희 순천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전남은 콘텐츠 산업의 기술면에서 매우 열악하다. 결국 대형자본의 콘텐츠 기업 또는 첨단기술을 선보이는 시설이 들어선다면 엄청난 파급효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이어 “수도권도 아닌 순천에 엄청난 자본 투자를 이끌어내는게 쉽지 않다. 다만 콘텐츠 분야의 무긍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 발전의 속도 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지역내에 눈높이 걸맞는 몰입형 콘텐츠 등의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다면 지역내 콘텐츠 분야의 산업 생태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사진=라스베이거스 김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