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번뇌 속 해탈한 돌부처와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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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삶은 번뇌 속 해탈한 돌부처와 같은 것”
여든여섯 김준호 화백 23번째 전시
20일부터 관선재 ‘돌부처 드로잉전’
‘미륵세상’ 꿈꾸며 운주사에서 위로
서양화풍 내려두고 '흑백작업' 변모
  • 입력 : 2024. 08.18(일) 17:21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김준호 화백이 오는 20일부터 관선재 갤러리에서 ‘돌부처 드로잉전’을 선보인다.
천불천탑과 와불로 유명한 화순 운주사는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미륵세상’을 소망하는 많은 사람의 수양처로 주목받았다. 세상살이가 팍팍할 때, 외로움이 엄습할 때 이곳에서 위로를 얻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든여섯의 나이에도 붓을 쥔 원로화백 김준호 작가 역시 이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그를 위로한 것은 운주사의 천불천탑이나 와불이 아니라, 뼈만 앙상하게 남았거나 깨어지고 못생긴 돌부처였다. 그것들을 한 십 경 바라보고 있으며 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지고 어느새 세상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해탈을 경험했다.

평생을 한국적 정한에 천착해온 김준호 화백은 세상살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을 찾아 무언의 대화를 나눴고 그때마다 친구가 되어주었던 돌부처들을 하나하나 화폭에 담았다. 그렇게 오롯이 담묵으로 그려낸 돌부처와 석탑을 모아 23번째 개인전을 연다. 전시 ‘김준호 돌부처 드로잉전’은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동구 예술의거리에 있는 관선재 갤러리에서 이어진다. 차분한 시선으로 관조한 돌부처 30여점과 소나무 2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김준호 화백은 반세기 넘게 작가의 삶을 살면서 수려한 색채로 서양화풍의 남도 풍광을 묘사해왔다. 동백꽃, 여인, 봄 풍경 등 자연의 색채를 캔버스에 옮겼다. 그런데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동안 그려온 세계와 사뭇 다르다. 흑백의 담묵은 쓸쓸함을 물씬 풍기게 하고 돌부처 외형에는 오랜 세월의 질감을 넘어 깨지고 쪼개진 흔적까지 남아 있다. 어쩌면 이는 고된 생애를 지나온 해탈의 경지, 비로소 터득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운주사를 찾아온 간절한 사연이 깃들고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돌부처의 외형은 그의 삶과 닮았다. 김 화백은 지난 1986년 대장암에 걸려 투병을 이겨냈다. 무등산, 한라산 등 무작정 산을 찾아다니며 ‘고통’도 받아들이는 해탈의 경제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부터는 화순 운주사를 다녔다. 운주사 입구의 동냥치 거지탑과 송장탑, 호떡탑과 항아리탑, 할아버지나 할머니 부처, 아기부처, 시종부처 등 돌부처 80기와 석탑 21기를 접하며 돌부처에 담긴 자비세상을 붓으로 한땀 한땀 그려냈다.

김준호 작 ‘운주사 분신불’.
콩테, 먹, 돼지털붓 등을 사용해 완성한 특유의 질감도 감상의 묘미다. 김 화백은 “드로잉이 쉬운 것 같아도 종이와 연필의 궁합을 맞춰야 온전한 모습을 묘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먹을 처음으로 사용했다”며 “화선지에 먹을 사용하면 먹이 너무 번져 수채화 종이를 사용했고 붓은 양모가 아닌 유화에 사용되는 돼지털 붓을 사용해 특유의 느낌을 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콩테며 연필이며 동양적 색감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며 “투박하면서도 은은한 돌탑을 표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천착한 것인 먹그림이다. 연필 드로잉이나 콩테만으로 도무지 느낌이 살지 않았던 것이 먹을 사용하니 온화한 동양적 분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서양화를 그리는 것처럼 여러 번 덧칠하면서도 먹물이 너무 번지지 않게 명암표현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평생 붓을 들어온 생애다. 절대 도전이랄게 없을 것만 같은 미술인생에 여전히 영역을 확장하고 변화를 거듭한다. “붓을 들 수 있을 때까지 미술인으로서 삶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