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마음을 씻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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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문화향기>마음을 씻는 시간
박관서 시인
  • 입력 : 2020. 03.24(화) 13:11
  • 편집에디터
'막장은 또 다른 길이다/나무들이 이산화탄소를 마셔서 그대들의 숨결과 사랑을 만들어 주듯이 그대들도 이제는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사람을 파먹지 않고 사는 어린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지 않아야 한다 몸 안에 있어야 할 피를 내보이며 나라의 국기를 몸으로 휘감거나 환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 신을 빚어서/그대들이 그대들에게 부여해준, 하늘이 아니라 슬픔으로도 끊지 못하는 인간의 맥박을 감추지 않아야 한다 낮고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새순이 움을 틔우고/지렁이가 안식을 이루며 한 생을 완성하는 실은 뿌리였던 그대의 그대 안에 어둔 심장으로 잠들어 있던 실은 온통 몸으로 얼룩진 마음이었던/그대를, 온전히 씻어야 한다.(졸시 '손을 씻는 시간')



쓰긴 써야 하는 데 산문 언어로는 도대체 쓸 수가 없어서 한편의 졸렬한 운문을 썼다.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나라와 세계를 넘어서 내 일상까지를 꽁꽁 가두어버렸다. 내가 쓰는 언어마저도 나 스스로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일단 입을 다물고 본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거리 이전에 심리적 거리가 '혼잣말'에 이르게 한다.

도대체 보이지 않는 혼란과 공포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신 그동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세워서 보이는 것들을 탈취해가던 우리 사회의 주류 종교인과 정치인 그리고 언론인들이 환히 보인다. 그리고 물론 눈에 보이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말하는 저들에게 휘말려 묵묵히 마르지 않는 눈썹을 적시면서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처럼 살아가던 내 자신을 먼저 반추한다. 아니 그들에게 생각 없이 내주었던 내 존재를 모처럼 돌아본다.

모르는 곳에서 나와 모르는 곳으로 돌아가는 우리들 생의 이면은 쓸쓸하지만 사실은 다정하다. 불빛 난무하는 도시를 벗어나 오래된 시골길을 걷다 보면 앞서가던 어미 아비가 내어주는 손길처럼 따뜻하다. 원래 자연에서 나온 우리들의 신체를 이루는 세포 자체도 코스모스라 불리는 우주의 모습과 형태를 같이 한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그 자연과 우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 지겹도록 따콩따콩 울려대는 재난 문자메시지를 족족 지우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모처럼 즐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순환기에 응당 몸으로 스며드는 컬컬한 목감기를 생강차 한 잔으로 달랜다. 발전과 새로움 그리고 공동체라는 문화와 이념 아래 버려두었던 내 생의 속내인 낮고 어두운 심연을 돌아본다.

그리고 어쩌면 대처 여부에 따라 우리의 일상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감기나 독감 정도일 수도 있는 바이러스에 걸려서 죽는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들을 보면서, 낮고 어두운 곳에 버려두었던 또 다른 나를 돌아본다. 이 역시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여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끼는 공감 세포들의 깊은 단절과 함께 하나의 국가공동체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격과 예의를 생각한다.

정신없이 나아가는 것들은 정신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아직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는 이들의 말'에 홀려서 우리들의 생애를 소비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생애가 너무 짧고 안쓰럽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전체에서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분으로 전체를 보는 시간이다.

아니 부분이나 전체라는 구분이 아니라 나를 통해 나를 보는 마음의 시간이지 않은가 한다. 어쩌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에서 살아가던 바이러스가, 이를 잃고 오직 보이는 것들의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는 보이지 않는 선물이라고 한다면 좀 가혹한 말인지 모르겠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