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땅갱아지/ 논밭 갈아주고/ 지랭이도 흙을 일궈/ 거름기를 보태네/ 큰 논배미 김매기/ 우랭이가 해결하고/ 무당벌레 야금야금/ 해충 잡기 선수/ 앞뒷산 뻐꾸기도 장단 맞춰/ 호미자루 가볍구나” 무학(無學)의 토종씨앗 지킴이 장흥의 이영동씨가 쓴 시이다. 무학이라니 배운 게 전혀 없다는 뜻일까? 제도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뜻일 뿐, 오히려 그 누구보다 뿌리 깊은 공부가 내면에 들어있는 분이다. 지난해 봄이던가 그의 연구실 겸 자택을 들렀다. 출생에서부터 갖은 고생을 다하며 고향에 뿌리내린 까닭, 농사를 지으며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편집에디터 2023.01.26 16:31“좌우 나졸(邏卒) 금군 모조리 순령(巡令) 일시에 내달아 토끼를 에워쌀 제 진황(秦皇) 만리장성 싸듯, 산양 싸움에 마초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겹쳐 잡는 거동 영문 출사 도적 싸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막혀 벌렁벌렁 떨며,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 달음에 너를 잡아 약개장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계탕 달여 먹고 네 껍질 벗겨내야 잘양 모아 깔게 되면 응혈 내종 혈담에는 만병회춘의 명약이라 이 강아지 몰고 가자~” 김준수가 에 나와 사물놀이패...
편집에디터 2023.01.19 14:53산양(山羊)은 주로 깎아지른 절벽에 등장한다. 바위 이끼, 진달래 등의 잎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침엽수림 지대가 서식처다. 북한 쪽에 많이 있다는 뜻인데 남한의 강원도, 경북, 충북 등지의 높은 산에도 서식한다. 자기 영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지만, 설령 밖으로 나갔다가도 정확하게 제 위치로 돌아온다. 교감의 감각이 발달해있기 때문이다. 벼랑 위에 있는 적을 인지하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각이 계곡의 물을 통해 반대편 산꼭대기에 이른다. 땅과 바다 특히 물에 대한 감각이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나 ...
2023.01.12 14:27지역학의 요체는 무엇일까 그때부터,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걸 부인하는 것은 식민지 조국 조선을 배반하는 것이었고, 더럽고 냄새나는 조국 중국을 배반하는 것이었고, 희망 없는 조국 베트남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백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가 지배하는 기회와 풍요의 나라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내가 뱀과 같은 유태인이라는 것을, 내가 무식하고 가난한 히스패닉이라는 것을, 내가 거리에서 부랑아로 자라난 이탈리아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고종석, ?전라도 생각?, ??서얼단상??, 개마고원, 2002) 지역에 대한 주체성의...
편집에디터 2023.01.08 17:17나는 큰 소리로 “엄매!” 하고 소리치면서 이 세상으로 왔다. 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만, 생전의 생모께서 늘 해주신 얘기다. 1897년생 아버지 예순여섯에 얻은 첫아들, 내 탄생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셨을까?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 하늘에서 떨어졌냐 땅에서 솟았냐 했다. 어머니는 자그마한 땅뙈기를 받는 조건으로 품은 아들을 핏덩이로 아버지께 넘긴 씨받이셨다. 역설적으로 전통시대의 악습이 베이비부머 시대의 끝자락까지 남아있던 탓에 나는 이 세상에 올 수 있었다. 강물처럼 쏟아져 내린 양수의 세례를 받고 공기 호흡을 위한 첫울...
편집에디터 2022.12.29 14:27문화분권의 시대, 지역자치의 시대, 지역학의 시대라는 화두가 제기된 지 매우 오래되었다. 그 기간이 숙성된 만큼 지역의 독창적이고 특별한 문화가 존중받거나 대우받고 있는 것일까? 기간은 오래되었다지만 그다지 숙성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지역자치도 일어나고 지역분권도 일정 부분 구축되며, 문화분권 차원의 지역학도 우후죽순 범람하는 모양새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을 하는 과정일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은, 바꾸어 말해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도...
편집에디터2022.12.22 16:21전북 부안군 적벽강에 죽막동 제사유적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의 해신(海神) 관련 제사터다. 19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수성당(水城堂)을 수성당(水聖堂)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노천제사가 아닌 실내 제사 즉 당집 안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단서가 이것이다. 신격(神格)은 '수성할미' 혹은 '개양할미'다. 절벽 위 평탄면에는 3세기 후반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퇴적되어 있다. 고군산열도와 왕등도, 비안도 등 먼바다를 내다보기 좋은 위치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고고학적 유물이나 역사적 연원보...
편집에디터2022.12.15 15:24본 지면에 K-FOOD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선언적으로 남도음식이 K-FOOD의 원천이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왜, 무엇이, 어떻게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미처 말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차례 나누어 이를 다뤄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지역의 어느 음식이라고 중요하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음식에 저장된 시대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를 둘러싼 문화적 함의와 관련된 것이다. 김재경은 '소설에 나타난 음식과 권력의 문화기호학'이란 글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음식은 무엇을 어디서 어떻...
편집에디터2022.12.08 17:35선녀는 하늘에서 베를 짠다. 연오랑의 짝꿍 세오녀가 그랬고 견우의 짝꿍 직녀도 그랬다. 오죽하면 이름을 직녀(織女) 곧 베를 짜는 여자라고 했을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금가락지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이다. 구름 위에 노닐기가 무료하면 가끔 땅으로 내려와 놀다 떨어뜨리기도 한다. 지리산 노고단의 옥녀도 그리했다 하니 전국의 수많은 옥녀봉은 선녀들이 내려와 좌정한 바위일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것인지 노고단 형제봉에서 떨어뜨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을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한다. 산과 연못이...
편집에디터2022.12.01 15:52고풀이는 남도의 씻김굿에서 연행되는 후반부 거리 중의 하나다. 본 지면을 통해 두어 번 고풀이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에 대한 내 마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대하며 다시 고풀이를 소환할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맹골도를 바라보는 해안에 흙집 짓고 살던 소설가 고 곽의진은 세월호의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뜰 일을 하다 쓰러졌긴 했지만 나는 그 죽음이 세월호의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 나와 나누었던 카톡에 절절했던 내용이 남아 있다. 의무와 책임, 풀어야 할 과제들 말이다. 어찌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던 우리에게 세월호가 얹어준 무게가 그러했다. 곽의진과 내가 진도사람이어서 그랬고 동시대인이어서 그랬다. 세월호에 희생당한 아이들이 바로 내 자식이며, 참살당한 이들이 내 가족이나 다름없기에 그랬다...
편집에디터2022.11.24 16:38지난 칼럼 를 통해 지명가요의 전통과 변천을 톺아본 바 있다. 다시 제기할 문제는 호남의 각 지역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중의법(重義法)을 차용한 이유랄까, 그렇게 시를 짓고 노래했던 남도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발생하여 유행하던 지명가사(地名歌辭)가 호남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란 점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위백규의 여도시(輿圖詩)에서는 경기, 호서, 해서, 관서, 관동, 관북, 영남, 호남을 골고루 노래했다. 문제는 문학 장르로서의 가사(歌辭)를 넘고 여러 노래...
편집에디터2022.11.17 17:20함평의 가리내패와 사당패에 대하여 "이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 옥천, 함평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 삼랑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 거사의 본래 용어)들이 절을 하여, '소사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신재효가 정리한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한다)에서 사당패가 전국 유랑을 하며 재능을 파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함평의 가리내패? 무슨 연희를 하던 집단이었을까? 이어지는 사설에 ...
편집에디터2022.11.10 16:37"부루단지는 부리단지, 부리동우, 부릿동우, 부룻단지, 부루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조상신을 모시는 항아리라는 뜻으로 조상단지, 신줏단지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와 연관이 있을 법한 명칭으로 세존단지, 시준단지, 제석단지, 제석오가리라 부르는 곳도 있다. 단지 안에 곡식을 담아 주로 대청에 모신다. 대청이 없는 집에서는 안방의 농 위에 모시기도 하고 선반을 따로 만들어 시렁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특별히 두서 말들이 큰 독에다 모시는 경우에는 부엌에 모신다." 의 '부루단지'에 대한 설명이다. 내 고향 진도, 옛 우리 집에서는...
편집에디터2022.11.03 17:05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검은닭을 길렀는지는 알 수 없다. 동남아시아 계통이나 일본 계통의 오골계로 오해받던 시절도 있었다. 지양미가 보고한 '봉황과 긴꼬리닭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고양시 긴꼬리닭 3계통, 축산연구소의 재래닭 3계통, 연산 오계, 제주도의 재래닭, 축산연구소 레그혼, 로드아일랜드 및 코니쉬 등 11개 집단 449수를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는데, 긴꼬리닭과 연산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과 93% 확률로 동일한 그룹임이 확인되었다. 긴꼬리닭을 포함하여 연산 화악리 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임을 알려주는 실험이었던 셈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고려 시대 이달충(1309~1385)의 시에 등장하기도 하고, 조선 시대 문헌에는 다수 등장한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아주 오랜 시기부터 검은닭이 사육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월에 논산에서 열리는 연산...
편집에디터2022.10.27 15:37판소리 창본집(김봉호)에 나오는 호남 지명 2018년 8월 10일 본 지면에 를 소개했다. 20세기 초 임방울이 불러 국민 유행가가 된 노래다. 1931년 유성기 음반으로 제작된 것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1930년대 취입된 유성기 음반에는 임방울, 정정렬, 하농주, 김금암 등이 녹음하였고, 해방 후에는 박동진, 신평일 등이 취입하였다. 필사본이나 이본들이 많으므로 노랫말이 균일하지 않다. 의 노랫말은 중의법(重義法)으로 구성되었다. 해당 지명에 단어의 본뜻을 입힌 것이다. 김봉호가 쓴 '판소리창본집'을 참고한다. 고창(高敞)은 지세가 높고 탁 트인다는 뜻이고, 익산(益山)은 많은 산, 만경(萬頃)은 수면이 아주 너른 것을 뜻한다. 모든 단어나 어구가 그렇다. 중의는 두세 가지 의미를 담는 어구라는 뜻이다. 대부분 댓구 형식이다. 는 부단히 변해왔다. 신재효본 에 와서야 ...
편집에디터2022.10.20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