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신화와 육감’을 잃어버린 시대를 고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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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신화와 육감’을 잃어버린 시대를 고발하다
아바타2 물의 길, 파야칸의 눈
향유고래는 물속의 파장과
울림을 통해 교신한다.
파야칸의 눈이 말하는
교감의 방식이 그렇고
신화 읽기의 눈이 그러하다.
영화 아바타가 우리에게
  • 입력 : 2023. 01.12(목) 14:27
산양(山羊)은 주로 깎아지른 절벽에 등장한다. 바위 이끼, 진달래 등의 잎을 먹기 때문일 것이다.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침엽수림 지대가 서식처다. 북한 쪽에 많이 있다는 뜻인데 남한의 강원도, 경북, 충북 등지의 높은 산에도 서식한다. 자기 영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지만, 설령 밖으로 나갔다가도 정확하게 제 위치로 돌아온다. 교감의 감각이 발달해있기 때문이다. 벼랑 위에 있는 적을 인지하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각이 계곡의 물을 통해 반대편 산꼭대기에 이른다. 땅과 바다 특히 물에 대한 감각이 최고의 경지에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왜 산벼랑에 서식하는 양(羊) 얘기가 물과 관련되는 것일까? 양(洋)이라는 단어에 단서가 있다. 물(?)과 양(羊)을 합한 글자가 양(洋)이다. 해양(海洋)이나 대해(大海), 파도가 넘치는 모양, 큰바다 혹은 시냇물이 가득한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다.



바다의 렌즈로 세상 들여다보기



좌계 김영래 선생이 풀어주신 산양의 오감(五感) 얘기다. <바다의 렌즈로 세상 들여다보기>라는 제목으로 (사)연안보존네트워크 신년 대담을 진행하면서 던진 화두 중 하나다. 지난 1월 3일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신화연구가 좌계 김영래와 내가 대담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일당백 참여자들 모두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자리였다. 갯벌의 인문학을 기치로 내걸고 마련한 첫 번째 자리다. 갱번(바다에 대한 남도 사람들의 호명 방식)과 전이지대(轉移地帶, 생물권보존 구역에서 서로 다른 둘 이상의 공간이 접하는 지역)를 수십 년 주창해온 내게 각별한 자리였다고나 할까. 좌계 선생은 신화 읽기의 한 전형을 품은 사람이다. 그의 신화해석들이 주는 영감이 크다. 인류가 잃어버린 흙과 물에 대한 감각을 산양이 가지고 있듯이, 사람들이 잃어버린 신화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나 할까. 김상준 교수가 영화 아바타2 얘기로 화답했다. <내일신문> 칼럼에서 그가 말한 한 토막이다. “<아바타>의 생명 세력과 파괴 세력 간의 결전은 오늘날 기후위기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 우화다. 올(2022년)여름 더위는 많은 숲을 태우고 남북극의 빙하를 녹였다. 이제 이 겨울은 북극의 극한기류를 중간 위도 대까지 밀어내고 있다. 냉기를 막는 제트기류가 풀린 탓이다. 동서가 혹한에 몸살이다. 이제 이런 극서와 극한의 널뛰기가 더이상 ‘이상기온’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의 뉴노말, 새로운 정상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협의체제를 ‘신기후체제’라 한다. ‘신기후체제’는 기후위기의 가속화 추세를 완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멈추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의 저자다운 영화 읽기다. 장자의 창작물인 붕(鵬)의 날갯짓을 몬순 기후와 연결하여 읽어냈기 때문이다. 영화 <아바타2-물의 길>을 읽는 눈이야 수백 개로 나뉠 수 있지만, 가족, 생태, 환경, 특히 기후위기의 서사로 읽는 것이 보편적이다. 브레인스토밍의 장점이라고나 할까. 궁인창 대표가 고래 이야기로 화답했다. 붕새의 날개와 고래 지느러미의 만남, 정초의 대담 공간은 이윽고 붕새의 날갯짓으로 몬순의 바람을 일으키고 고래의 유영으로 대양(大洋)의 물비늘을 초대하는 신화의 현장이 되었다.



물의 길, 파야칸의 눈



영화 아바타2는 부제 ‘물의 길’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아바타1과 대칭이다. 멸절 위기의 생태환경을 고발하고 인류의 탐욕을 경계하는 시선은 변함이 없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1편은 ‘숲의 길’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편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길들을 상정하지 않았던 듯하다.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다니 아마도 물의 길에 이어, 사막의 길, 대지의 길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2편에서는 툴쿤으로 불리는 고래 종의 파야칸이 일종의 해결사로 등장한다. 귀상어(해머헤드샤크)인 듯싶지만, 포경선으로 직유된 전투선과 장치 등의 풍경을 보면 향유고래의 화신으로 보인다. 파야칸은 주인공 제이크설리의 셋째 아이(실제는 둘째 아들) 로아크와 긴밀하게 교감하며 물의 길 서사를 이어간다. 이들을 인간과 가상의 나비족을 합성한 아바타로 창조해내고 판도라 행성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기후위기뿐 아니라 종족 간의 혐오와 끝없는 탐욕, 생태적 교감을 잃어버린 지구별의 모순을 고발하기 위해 고안한 불가피한 장치들이다. 김상준 교수의 지적대로 지구별은 ‘여섯 번째 대멸종’의 문턱에 다다라있다. 영화 아바타에 설정된 고도의 과학과 장비들이 이 대멸종을 막아줄 것 같진 않다. 삭막하고 살벌한 기계의 풍경으로 그려지는 지구에 비해 숲과 바다의 풍경으로 그려지는 판도라 행성이 대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아바타의 신화 읽기 방식은 좌계 김영래의 신화 읽기와 맞닿아 있다. 신화를 잃어버린 시대, 육감(시각, 미각, 청각, 후각, 촉각, 영감)을 잃어버린 시대를 고발하는 풍경이다. 끔벅거리는 파야칸의 눈이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하지만 파야칸은 눈으로 말하지 않는다. 예컨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져 있는 향유고래는 수심 3,000미터까지 잠수가 가능하다. 잠수하는 동안 액체였던 기름은 고체가 된다. 뇌와 심장과 폐에 제한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며 호흡을 극도로 감소시킨다. 머리의 크기가 변하며 300기압이 넘는 압력을 이겨낸다. 해저의 심연, 해상의 파도, 향유고래는 물속의 파장과 울림을 통해 교신한다. 파야칸의 눈이 말하는 교감의 방식이 그렇고 신화 읽기의 눈이 그러하다. 영화 아바타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신화는 말한다. 좌계의 말처럼 산양이 계곡의 물을 통해 반대편의 어떤 기운들을 교감하듯이 미세한 물의 혈관들을 관통하는 교감의 방식을 회복하라고 말이다. 뭍과 물이 교직하는 갯벌이, 마을숲과 늪이, 대대(對待)의 공간에 서식하는 도깨비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 갯벌의 인문학, 내 갱번 이야기는 계속된다.



남도인문학팁

좌계 김영래의 고래 신화 읽기

<산해경(山海經)>의 마지막 편을 이루고 있는 <해내경(海內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동해의 안쪽 북해의 구석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수상(手上) 생활을 하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 좌계는 북해를 발해로 읽고 조선천독을 고조선으로 읽는다. 오강원은 <산해경, 해내경, 조선천독 기사의 맥락과 의미>(한국사연구, 2015)에서 조선을 ‘위만조선’으로 읽는다. <삼국지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리(高句麗) 관련 기록이 있다. “드디어 수도를 만들고자 했으나 미처 궁실을 만들 틈이 없어서 단지 비류수(沸流水, 고구려 건국지역에 있는 강) 위에 갈대로 집을 짓고 수상생활을 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이들의 수상생활이다. 좌계는 이를 왜(倭)까지 확장하여 해석하고 이들이 고래를 사육했다고 주장한다. 무슨 아바타 영화 같은 이야기냐는 반문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 신화는 신화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그의 주장을 다 수용하지 않더라도 고래가 가진 교감의 방식, 나아가 영화 아바타에서 에이와로 호명되는 민들레 씨앗 같은 교감의 방식을 환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정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과 합리의 정신을 넘어, 육감으로 전회(轉回)하는 물의 길, 파야칸이 말해주는 신화의 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