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바다를 여는 크신 어머니 '개양할미'는 대모신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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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바다를 여는 크신 어머니 '개양할미'는 대모신 위상
개양할미의 계보||대모신, 거인신은 한해륙(한반도)에 유포된 마고 설화의 유형||개양할미 뿐 아니라, 전남 진도의 영등할미,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 경상도 해안의 안가닥 할미 등 꼽아
  • 입력 : 2022. 12.15(목) 15:24
  • 편집에디터
부안 수성당-사진의 뒷쪽이 전면이고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윤선

전북 부안군 적벽강에 죽막동 제사유적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의 해신(海神) 관련 제사터다. 19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수성당(水城堂)을 수성당(水聖堂)이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노천제사가 아닌 실내 제사 즉 당집 안에서 제사를 지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단서가 이것이다. 신격(神格)은 '수성할미' 혹은 '개양할미'다. 절벽 위 평탄면에는 3세기 후반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퇴적되어 있다. 고군산열도와 왕등도, 비안도 등 먼바다를 내다보기 좋은 위치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고고학적 유물이나 역사적 연원보다는 이곳에 얽힌 설화였다. 몇 해 전 월간 기독사상에 1년간 연재하며 '동굴의 노래, 여울굴에서 부유하는 돌배까지'라는 제목으로 이 내용의 일부를 다룬 바 있으므로 참고 가능하다.

제사유적 아래쪽을 대막골이라 한다. 아래편 해안으로 낭떠러지가 있다. 여울굴이라 한다. 이곳에서 개양할미가 나와 바다를 열고 풍랑과 깊이를 조정하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풍어를 관장하였다는 내용의 설화가 전해온다. 이를 죽막동(竹幕洞) 개양할미 설화라고 한다. 한가지 버전만 있는 게 아니다. 서해를 다스리는 여해신(女海神)이 딸 여덟을 데리고 와서 전국 각도에 시집보내고 자신은 서해바다를 관장하였다 한다. 여신의 탄생설화와 도래설화(渡來說話, 물을 건너왔다는 의미)가 섞여있다.

나는 2007년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해양문화의 프랙탈, 죽막동 수성당 포지셔닝」(도서문화 제30집)이라는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죽막동에서 백제의 제사유물뿐 아니라 가야, 왜(일본)계, 중국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원삼국시대 동아시아 해양문화권 무대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래서 고대 동아시아문화 트라이앵글의 한 지점이라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검색하면 대강이 소개되어 있다. 이 중에서 항아리, 쇠도끼, 동방울, 동거울, 거울, 손칼, 낫, 소옥, 곡옥과 중국 도자기, 특히 신주에 달아매는 북과 방울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북부안 죽막동 수성당의 개양할미 신도. 이윤선

죽막동 여울굴에서 태어난 개양할미

개양할미의 영험성은 여러 군데서 보고되고 있다. '부안군지'(1991)에 따르면 격포의 채석강 북쪽 끝자락에,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큰 사자가 등장한다. 호환(虎患)으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면 개양할미가 청동사자 머리를 남쪽의 고창 선운산 쪽으로 돌려서 쫓아내고, 반대쪽이 시끄러우면 다시 청동사자 머리를 변산 쪽으로 돌려 호랑이의 극성을 막았다고 한다. 대모신(大母神) 혹은 거인신의 위상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막동은 대막골(대나무가 많은 골짜기), 당골(당산이 있는 골짜기) 등으로 불린다.

죽막동 수성당은 본래 구랑사(九娘祠)라 불렀다. 훗날 수성당으로 고쳐 불렀다. 둘 다 개양할미와 여덟 딸에 관한 호칭들이다. 부안 격포 주민들이 1960년대 초까지 이 신을 모시고 당제(堂祭, 마을제사)를 지냈다. 구랑사, 아홉 명의 낭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뜻인데 정작 설화에는 여덟 명 혹은 일곱 명의 딸만 등장한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개양할미 본인을 포함한 아홉 명이었거나 시대에 따라 변형된 이본이지 않을까 싶다. 개양할미라는 용어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바다를 연다는 뜻의 개(開, 열다)를 붙여 '개양(開洋)'으로 불렀다는 증언들에 덧붙여 개펄의 '개'와 해양의 '양(洋)'이 습합되었을 가능성 등을 제시하였다. 할미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한(크다)+어미'로 해석된다. 대모신이나 거인신이라 말하는 이유다. 한해륙(한반도)에 유포된 마고 설화의 유형이기도 하다. 크신 어머니 신격 즉 대모신으로는 개양할미뿐 아니라, 전남 진도의 영등할미, 제주도의 설문대할망, 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 경상도 해안의 안가닥할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것이 마고설화다. 마고할미는 창조여신이었다가 어느 시기 축소되거나 변이되어 '마귀할미'나 '산신' 등으로 좌천된다.

권태효의 「여성거인설화의 자료 존재양상과 성격」, '탐라문화 (37호)'에 의하면, 이들 여성 거인들은 창조신에서 희화화된 신격으로, 숭배의 대상에서 징치(懲治)의 대상으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선신(善神)에서 악신(惡神)으로, 여성 거인에서 남성 거인으로, 비현실적 형상화에서 현실에 가까운 형상으로 변화되어왔다. 신화학자 조현설도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에서 변화의 이유를 남성 중심의 신성가족 계보에 편입되면서부터라고 추정하고 있다. 내가 바다와 여성 신격을 특히 주목하여 추적하는 이유가 있다. 1세기 전부터 이 땅의 신종교 관련 지도자들이 주목해왔고 특히 근 3~40년 전부터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후천개벽이니 역성 개벽이니 따위의 시대전복을 외쳐온 바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민(民)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대두하였던 민속, 민중, 민요, 민본, 민학, 민예, 민화(民畵) 등 이름도 빛도 없던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온 시대정신이라고나 할까. 내가 감히 남도인문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 칼럼을 써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를 시대정신이라 여기는 까닭이다.

다시 문제 삼는 것은 민(民)을 주목하던 1세기 전의 시대정신, 그 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쩔 것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본 논의를 갈무리하지 하지 않으면, 귀한 지면을 허투루 낭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내가 그렇게 소비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며, 남도사람들에게 권면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북 부안 죽막동 여울굴. 이윤선

남도인문학팁

여울굴은 창조의 공간 여음굴(女陰窟)에서 온 말이다

개양할미의 거인적 위상은 설화의 서사구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개양할미가 당굴에서 탄생했다(탄생설). 혹은 딸 여덟을 데리고 들어왔다(도래설). 딸 여덟 혹은 일곱을 낳았다. 딸 여덟을 팔도(내륙)에 보냈다. 혹은 딸 일곱을 칠산 바다에 보내서 일곱 섬을 관리하게 하고 막내딸과 살았다. 또는 부안 앞바다에 있는 각지의 섬으로 보내서 관리하게 하였다. 개양할미는 거인여신이자 신이한 능력의 소유자로 칠산 바다를 걸어 다녀도 버선이 젖지 않으며 서해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당굴'이라고도 하고 '여울굴'이라고도 하는 대막골 아래편 낭떠러지다. 나는 이를 여음석(女陰石) 혹은 여음굴(女陰窟)과 관련하여 해석했다. 수성당이 위치한 북편으로 양 갈래의 곶이 마치 가랑이를 벌린 듯한 형국이요, 바닷물이 자궁으로 들어와 거품을 내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전통 풍수학에서도 이런 유형의 땅을 명혈(名穴)이라 한다. 땅에 대한 인격화, 여성의 생산성, 재화와 복락에 대한 욕망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는 관념들이자 설화적 장치들이다. 여성의 음부와 자궁을 성적으로 말하면 음란한 요설이라고 폄하하다가 풍수를 대입해 말하면 음덕(蔭德)의 충만으로 칭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컨대 남한 3대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 전남 구례의 운조루는 남쪽으로 연못을 파서 경관을 완성했다. 이를 비보(裨補)라 한다. 약한 기운을 보완한다는 의미다. 길지(吉地)에 대한 관념과 풍경에 대한 욕망들이 수미상관하고 있다. 개양할미가 당굴에서 나온 것이나 여덟 딸을 낳은 것은 탄생이라는 사건의 중복이다. 여음굴이라는 공간 자체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장치다. 이와 비슷한 풍경이 한국 관음신앙의 성지라는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에 있다. 내가 3년여 다니면서 답사했던 중국 주산군도 보타도의 관음굴에 대해서는 오래 전 이 지면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다. 차차 기회를 봐가며 낱개의 사례들을 소개하겠지만, 거인여신, 창조여신을 소환하는 시대정신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거듭 묵상할 필요가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