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들나무가 있다. 수령 400년은 거뜬히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른 서너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을 듯한, 나무의 우람한 기둥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눈과 비바람은 얼마나 맞았고, 햇볕은 얼마나 받았을지, 천둥소리와 번개는 또 얼마나 듣고 맞았을지…. 세월이 빚어낸 주름이 큰 물결처럼 나무에 새겨져 있다. 풍수지리로 볼 때 비보림(裨補林)이다. 지형의 약점을 보완했다.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충효마을의 왕버들은 본디 다섯 그루였다고 전해진다. 소나무와 매실나무도 한 그루씩 있었단다. 1송 1매 5류로, 마...
편집에디터2022.12.01 17:14고풀이는 남도의 씻김굿에서 연행되는 후반부 거리 중의 하나다. 본 지면을 통해 두어 번 고풀이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소개하였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대립에 대한 내 마음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대하며 다시 고풀이를 소환할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맹골도를 바라보는 해안에 흙집 짓고 살던 소설가 고 곽의진은 세월호의 충격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뜰 일을 하다 쓰러졌긴 했지만 나는 그 죽음이 세월호의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 나와 나누었던 카톡에 절절했던 내용이 남아 있다. 의무와 책임, 풀어야 할 과제들 말이다. 어찌 보면 아무런 관련이 없던 우리에게 세월호가 얹어준 무게가 그러했다. 곽의진과 내가 진도사람이어서 그랬고 동시대인이어서 그랬다. 세월호에 희생당한 아이들이 바로 내 자식이며, 참살당한 이들이 내 가족이나 다름없기에 그랬다...
편집에디터2022.11.24 16:38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지리산이 부른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낙엽들은 수북이 쌓여있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누군가의 흐느낌으로 들려오는가. 그 흐느낌에 불려가니 빗점골 너덜겅 곁의 한 그루 소나무 아래서 '지리산 곡(哭)'을 노래하는 이가 있다. 음악을 전공하고 민족을 사랑했던 '최순희' 함께 했던 빨치산 동지들을 평생 그리워 하다가 얼마 전 91세의 나이로 영욕의 생을 마감하고 이 소나무 아래 묻혀서야 그리운 이들의 품에 안겼다. 며칠 전이 그분의 기일이었다. 남부군 문화지도원이었던 그녀는 대성골 대공세 때 포로가 되...
편집에디터2022.11.24 13:38오래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의도치 않게 밤을 새운 적이 있었다. 오후 늦게 시작된 눈발이 점점 굵어져서 마침내 온 대지를 점령해버린 날이었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멈춰버렸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서 정거장으로 향할 때였다. 종아리까지 푹푹 들어가는 눈을 밟으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야 했던 그 밤 나는 Pink Floyd를 알게 되었다. 그 뒤 앨범을 통째로 영화화한 앨런 파커(Alan Parker)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을 비디오로 보게 되었고 CD를 소유하게 ...
편집에디터2022.11.17 16:56지난 칼럼 를 통해 지명가요의 전통과 변천을 톺아본 바 있다. 다시 제기할 문제는 호남의 각 지역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중의법(重義法)을 차용한 이유랄까, 그렇게 시를 짓고 노래했던 남도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발생하여 유행하던 지명가사(地名歌辭)가 호남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란 점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위백규의 여도시(輿圖詩)에서는 경기, 호서, 해서, 관서, 관동, 관북, 영남, 호남을 골고루 노래했다. 문제는 문학 장르로서의 가사(歌辭)를 넘고 여러 노래...
편집에디터2022.11.17 17:20상구마을의 한낮 풍경. 상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돈삼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빨강 열매가 유난히 빛난다. 먼나무, 이나무, 호랑가시 등 감탕나무에 속하는 열매들이다. 울타리로 심어놓은 남천도 있다. 자연스레 '사랑의 열매'가 떠오른다. 호랑가시나무를 찾아간다. 목적지는 나주시 공산면 상구마을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는 별나게 생겼다. 한쪽은 열매가 무성하게 달리는데, 다른 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두 얼굴의 나무다. 올해는 유난히 열매가 더디 달리고 있다. "햇빛이 많이 비치고 안 비치고 차이도 아니고, 흙이 다른 것...
편집에디터2022.11.17 17:20함평의 가리내패와 사당패에 대하여 "이때에 하동(河東) 목골, 창평(昌平) 고살메, 함열(咸悅) 성불암(成佛庵), 담양, 옥천, 함평 월앙산(月仰山) 가리내패가 창원(昌原), 마산포(馬山浦), 밀양, 삼랑 그 근방들 가느라고 그 앞으로 지나다가 움생원의 관을 보고 걸사(乞士, 거사의 본래 용어)들이 절을 하여, '소사 문안이오, 소사 문안이오~" 신재효가 정리한 변강쇠가(가루지기타령이라고도 한다)에서 사당패가 전국 유랑을 하며 재능을 파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다. 함평의 가리내패? 무슨 연희를 하던 집단이었을까? 이어지는 사설에 ...
편집에디터2022.11.10 16:37보살의 몸으로 도솔천에 머물고 있다는 미륵은 언제 깨어나서 중생을 구제 할 것인가. 나라가 어지럽고 민족이 힘들 때마다 그 미륵이 깨어나기를 바랐지만 아직껏 묵묵부답이다. 운주사의 와불도 그랬고, 선운사 도솔암의 마애불도 그랬다.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지혜의 결정체인 와불의 육계를 잘라버려서 그랬다는 설도 있고, 도솔암의 마애불 가슴팍에 숨겨놓은 비기가 답이라는 그럴싸한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던 동학혁명 때 접주 손화중이 그 비기를 꺼냈다지만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편집에디터2022.11.10 14:57록웰이 그린 인근 마을 그림.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의 제노포비아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처음 미국에 도착한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인 노예를 대체할 값싼 노동력으로 유입된 이들은 나중에는 금광에서 금을 캐는 일을 했다. 미국 백인들은 이 중국인 노동자들이 백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해 위협으로 여겼다. 중국인을 역병, 해충이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결국 1882년 연방정부는 중국인의 미국 이민을 금지하는 중국인 배척법을 통과시켰으며, 나중에는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이민을 금지시켰다. 이민금지법을 폐지하는 '1965년 이민국적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유럽 백인이민자들만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이민 온 아시아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희생자로 살아야 했다. 그런 미국이 1965년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중남미, 아프리카 이민자들에게 문을 열었다. ...
편집에디터2022.11.03 16:14"부루단지는 부리단지, 부리동우, 부릿동우, 부룻단지, 부루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조상신을 모시는 항아리라는 뜻으로 조상단지, 신줏단지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와 연관이 있을 법한 명칭으로 세존단지, 시준단지, 제석단지, 제석오가리라 부르는 곳도 있다. 단지 안에 곡식을 담아 주로 대청에 모신다. 대청이 없는 집에서는 안방의 농 위에 모시기도 하고 선반을 따로 만들어 시렁 위에 올려놓기도 한다. 특별히 두서 말들이 큰 독에다 모시는 경우에는 부엌에 모신다." 의 '부루단지'에 대한 설명이다. 내 고향 진도, 옛 우리 집에서는...
편집에디터2022.11.03 17:05공북리 2구 효대마을 풍경. 노거수와 어우러져 멋스럽다. 이돈삼 가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나뭇잎은 울긋불긋 단풍 들게 하고, 국화는 형형색색으로 꽃을 피웠다. 산과 들이 온통 가을빛으로 가득하다. 차를 타고 강변을 드라이브하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산자락의 밭에서 감을 따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감나무에 감도 주렁주렁 걸렸다. 가지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정겹다. 빨갛게 물드는 감잎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감이 많이 달렸습니다. 때깔 좋고, 튼실해 보이는데요." "예, 올해 풍년입니다. 맛도 좋아요. 하나 드셔 보셔요. 약 안 했으니, 그냥 드셔도 돼요." 감 따던 농군이 길손의 말을 받아준다. 염치 생각하지 않고, 감 하나를 덥석 베어 물었다. 입안으로 만추가 전해진다. 맛있고, 달다. 감이 '종합비타민제'라는 말을 실감한다. 문득, ...
편집에디터2022.11.03 17:08'저스트스톱오일' 활동가들이 반고흐 '해바라기' 작품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는 시위를 했다_2022년 최근 빈센트 반 고흐의 가 환경단체 활동가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뒤이어 는 지난 23일 독일 포츠담의 바르베리니 미술관에서 독일 기후 환경단체 '라스트 제너레이션' 소속 일원 2명이 작품 위에 으깬 감자를 부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감자를 투척한 작품은 클로드 모네의 는 지난 2019년 1억1천1백만 달러(한화 약 1천5백95억 원)에 낙찰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우리는 기후 재앙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토마토 수프나 으깬 감자가 그림에 묻는 것"이라며, "과학이 2050년이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는 두렵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들은 "만일 그림에 토마토 수프나 으깬 감자를 끼얹는 것으로 화석...
편집에디터2022.10.30 17:15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검은닭을 길렀는지는 알 수 없다. 동남아시아 계통이나 일본 계통의 오골계로 오해받던 시절도 있었다. 지양미가 보고한 '봉황과 긴꼬리닭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고양시 긴꼬리닭 3계통, 축산연구소의 재래닭 3계통, 연산 오계, 제주도의 재래닭, 축산연구소 레그혼, 로드아일랜드 및 코니쉬 등 11개 집단 449수를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는데, 긴꼬리닭과 연산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과 93% 확률로 동일한 그룹임이 확인되었다. 긴꼬리닭을 포함하여 연산 화악리 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임을 알려주는 실험이었던 셈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고려 시대 이달충(1309~1385)의 시에 등장하기도 하고, 조선 시대 문헌에는 다수 등장한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아주 오랜 시기부터 검은닭이 사육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월에 논산에서 열리는 연산...
편집에디터2022.10.27 15:37광주의 달동네라 말할 수 있는 발산부락을 찾았다. 조만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질 처지에 있어 지금의 모습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다. 진즉 찾았어야 하는데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벌써 떠난 이들이 많아 여기 저기 빈집들이 즐비하다. 그런 곳마다 담장이 허물어지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그러나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많아서 좁고 긴 골목을 따라 온기가 가늘게 이어져 있다. 이런 곳을 두고 달동네라 부르는데 어디에 근거를 두고 생겨난 말인지 궁금하다. 말 그 자체는 문학적이라 할...
편집에디터2022.10.27 15:21브루클린 다리 1866년 뉴욕에 유독 혹독한 추위가 닥쳐왔다. 이스트 리버가 얼어붙을 정도였다. 당시 뉴욕과 브루클린은 독립적인 도시였다. 유일하게 페리가 두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운송) 수단이었는데 강이 얼어버려서 운항이 중단되었다. 다리 건설이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뉴욕 동쪽의 이스트 리버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구상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일 이민 출신 토목공학자인 존 뢰블링이었다. 뢰블링은 강 속에 케이슨을 이용하여 거대한 석재 주탑을 세우고 강철 케이블을 사용한 현수교를 상상하고 있었다. 새로운 강철 제련법을 이용할 참이었다. 마침내 뢰블링은 이러한 모든 신기술을 이용하여 다리 공사를 착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 순간, 그의 가족에게 저주가 찾아왔다. 브루클린 다리 저주의 시작은 1869년 6월, 설계를 마친 뢰블링에게 먼저 왔다....
편집에디터2022.10.20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