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400년전 마을 보호위해 심은 비보림, 나주 명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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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400년전 마을 보호위해 심은 비보림, 나주 명물로
나주 상구마을||임란 의병 모아 이순신 도운||오득린이 심은 호랑가시나무||빨강 열매 '사랑의 열매' 상징
  • 입력 : 2022. 11.17(목) 17:20
  • 편집에디터
상구마을 전경. 팽나무와 모정, 호랑가시나무와 오득린 기적비가 한데 모여 있다. 이돈삼

상구마을의 한낮 풍경. 상구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이돈삼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빨강 열매가 유난히 빛난다. 먼나무, 이나무, 호랑가시 등 감탕나무에 속하는 열매들이다. 울타리로 심어놓은 남천도 있다. 자연스레 '사랑의 열매'가 떠오른다.

호랑가시나무를 찾아간다. 목적지는 나주시 공산면 상구마을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는 별나게 생겼다. 한쪽은 열매가 무성하게 달리는데, 다른 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두 얼굴의 나무다. 올해는 유난히 열매가 더디 달리고 있다.

"햇빛이 많이 비치고 안 비치고 차이도 아니고, 흙이 다른 것도 아녀라. 암수 두 나무의 가지가 자연스럽게 붙었다고 합디다. 나무를 처음 심을 때, 암나무와 수나무를 붙여갖고 감아서 접목했다는 얘기도 있는디. 얘기를 듣고 본께, 그렇게 보입디다."

경운기를 타고 들판으로 나가던 마을 어르신의 말이다. 어르신의 말을 버무리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상구마을의 호랑가시나무. 한쪽은 열매가 무성한데, 다른 한쪽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지난해 12월의 모습이다. 이돈삼

호랑가시나무의 빨강 열매.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로 디자인돼 쓰이고 있다. 이돈삼

호랑가시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은행나무처럼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맺힌다. 나무를 심은 옛사람도 암․수나무가 있어야 꽃가루받이가 이뤄지고, 열매도 맺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마을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살기를 바라는 속내도 담았을 것이다.

호랑가시나무는 400여 년 전 오득린(1564~1637)이 심었다고 전한다. 오득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이순신을 찾아갔다. 오득린은 이순신을 도와 큰 공을 세웠다.

오득린이 마을에 정착할 무렵의 얘기다. 마을의 서쪽은 숲으로 울창한데, 동쪽은 들판으로 휑-했다.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서 오른쪽이 약했다. 그가 동쪽에 나무를 심은 이유다. 약한 지세를 보완해주는 비보림(裨補林)이다.

그때 심은 팽나무가 마을을 감싸고 숲을 이루고 있다. 숲과 함께 살아온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그믐날에 팽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내왔다.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고, 나무 아래에도 묻었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빌었다.

나무 한 그루로 천연기념물이 된 호랑가시나무. 400여 년 전 오득린이 심었다고 전한다. 이돈삼

한쪽에 있는 호랑가시나무도 애지중지했다. 가지를 하나라도 꺾으면 몸에 큰 병이 든다고 믿었다. 상여가 지날 때도 나무 앞을 지나지 못하도록 했다.

오득린은 1564년에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았다. 이순신의 막하에서 여러 해전에 참전했다.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에도 참가했다.

상구마을 표지석. 상구마을은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1구에 속한다. 이돈삼

호랑가시나무와 오득린 기적비. 상구마을의 상징이 됐다. 이돈삼

호랑가시나무 앞에 오득린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선무원종일등공신 나주오씨득린기적비(宣武原從一等功臣 羅州吳氏得麟記蹟碑)'라고 새겨져 있다. 그를 기리는 경승재(景承齋)가 마을 앞 산자락에 있다. 경승재는 나주오씨의 모임 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철 지난 천일홍과 메리골드, 사루비아 그리고 코스모스가 줄지어 반겨주는 상구마을은 나주 오씨의 오랜 집성촌이다. 마을 입구에 나주 오씨 세장산이 있다. 팽나무 숲그늘에 효자 오달주와 효열부 함양박씨를 기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마을회관은 내부 개보수 공사로 어수선하다.

"꽃이 이쁘지요? 여름꽃인데, 아직껏 피었네요. 우리 주민들이 심은 겁니다. 집에 남아있는 꽃씨를 갖고 나와서 심었어요. 행정기관의 지원 없이. 우리 동네는 70년대에 새마을사업도 잘 했어요. 마을회관도 그때 하사금으로 지은 겁니다. 주민들이 울력을 해서. 우리 마을이 '대한늬우스'에도 나오고 그랬어요."

오병엽(70) 이장의 자랑이다. 마을회관의 겉모습을 그대로 두고, 안에만 고치는 이유다.

상구마을 호랑가시나무의 키가 5.5m, 가지는 허리 높이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사방으로 뻗었다. 둥그렇게 펼쳐져 소담스럽다. 밑동의 둘레는 1.7m, 두 팔을 벌려도 손가락이 닿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천연기념물(제516호)로 지정됐다. 2015년엔 바로 옆의 축사를 없애고 주변 정비까지 말끔히 했다.

효자 오달주와 효열부 함양박씨를 기리는 비석. 팽나무 아래 모정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호랑가시나무는 언뜻 거칠게 보인다. 두꺼운 이파리의 끝에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다. 진녹색으로 윤기도 흐른다. 열매는 빨간색의 콩알만 한 크기로 무수히 달린다. 이파리와 열매의 빛깔이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속내는 다소곳하다. '행복'과 '평화'를 꽃말로 지니고 있다. 빨강 열매는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의 상징이 된 '사랑의 열매'로 디자인돼 쓰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호랑이가 이파리에 돋아난 가시로 가려운 데를 긁었다고 이름 붙었다. '호랑이 등 긁기 나무'다. 가시가 호랑이 발톱처럼 매섭게 생겼다고 '호랑이 발톱나무'로도 불린다. 억세고 단단한 가시를 호랑이도 무서워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햇볕 다사로운 남해안과 제주도에서 자생한다. 꽃은 봄에 피고, 향기가 짙다. 열매는 늦가을부터 겨울에 맺힌다.

서양에서는 '예수나무' '크리스마스나무'로 통한다. 지빠귀과의 티티새와 얽힌다. 예수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고 있을 때다. 티티새 로빈이 부리를 이용해 예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뽑아낸다. 로빈은 금세 가시에 찔려 죽고 만다.

호랑가시나무 이파리에 달린 가시가 예수의 면류관을 상징한다. 빨강 열매는 핏방울, 쓴맛의 껍질은 예수의 고난을 나타낸다. 하얀 꽃은 예수의 탄생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호랑가시나무로 장식을 하는 이유다.

상구마을 입구. 철 지난 천일홍과 메리골드, 그리고 코스모스가 줄지어 반겨준다. 이돈삼

상구마을은 나주시 공산면 상방리 1구에 속한다. 오래 전 삼포강을 사이에 두고 상리, 하리로 나뉘었다. 강을 따라 거북이 내려간 곳이 하리, 올라간 곳이 상리였다. 이후 두 마을이 합해지면서 '상구(上龜)'가 됐다. 지금은 40가구 60여 명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오순도순 살고 있다.

상방리 2구는 석해(石海), 3구는 백두(白頭), 4구는 복사초리(伏蛇草理)로 불린다. 복사초리는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전투를 한 곳이기도 하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상구마을 입구에 있는 오씨세장산. 마을은 나주 오씨의 오랜 집성촌이다. 이돈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