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시내버스 171번 기사 정영준씨. 연합뉴스 |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의식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놀란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머뭇거리던 그때, 막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더니 곧장 뛰어와 응급조치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28일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흑기사처럼 나타난 그는 시내버스 171번(도원교통) 기사 정영준(62)씨다.
1998년부터 운전대를 잡은 정씨는 신호를 받고 좌회전으로 연대 앞 정류장에 진입하던 중 쓰러진 사람 주변으로 청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한 정씨는 급히 내려 다가갔으나 쓰러진 이는 혀가 말려있고 호흡과 의식이 없었다.
정씨는 그의 혀를 펴 기도를 확보하고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심폐소생술에 들어갔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은 119에 신고하며 정씨를 도왔다.
정씨가 심폐소생술을 4분쯤 이어갔을 무렵, 쓰러진 남성은 소리를 내며 숨을 뱉어내더니 기침하고는 의식을 조금씩 회복했다.
호흡과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본 정씨는 주변 학생들에게 쓰러진 남성을 119 구급대에 잘 인계해달라고 부탁한 뒤 버스에 올라 승객들에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버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들은 정씨에게 손을 내밀며 “수고하셨다”고 격려했다.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리고는 다시 묵묵히 버스를 운행하는 그의 모습을 본 한 승객은 하차할 때 과자를 건네며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날짜가 좀 지났지만 칭찬하고 싶다”, “몇분 정도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하시고 나서 쓰러졌던 분이 의식을 찾는 모습이 보였고, 기사님이 안도하면서 버스로 와 출발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정씨는 “회사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매년 받아 급박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마저 버스를 운행하면서 ‘배운 대로 하면 되는구나, 사람을 살릴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는 매년 4시간씩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대면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연 12시간 이수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교육(온라인) 과정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당시 정류장에서 쓰러졌던 남성은 의식을 회복한 상태에서 병원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
정씨는 “굳이 알리지 않을까 하다 뿌듯한 마음에 결국 친구와 동료들에게 ‘내가 살면서 사람 한 명을 구했다’고 말도 했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는 “당시 버스에서 기다려주신 승객분들도 있는데 운행이 지체된 것에 대해 뭐라 하지 않고 격려해주셨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노병하 기자·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