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더위가 이어진 7월 한 예비군이 헬멧에 물을 가득 담은 뒤 몸을 적시고 있다. 국방부 제공 |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과 열대야가 광주·전남을 뒤덮은 7월,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청년들 사이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실내는 찜통, 실외는 화상 수준. 뜨거운 바람과 과밀 생활관 속에서도 집합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일부는 “현역 때도 이런 날씨엔 훈련을 연기했는데 예비군에게는 왜 이런 배려조차 없느냐”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남일보는 두 편의 보도<본보 8일자 6면 “폭염 속 날아든 ‘예비군 훈련 통지서’에 부글부글”, 14일자 6면 “덥다, 더워”…폭염에도 강행된 예비군 훈련에 ‘원성’>를 통해 예비군 훈련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했고 마침내 정치권의 응답을 이끌어 냈다.
더불어민주당 정준호(북구갑) 의원은 28일 폭염·혹한 등 극한 기후 상황에서 예비군 훈련을 연기하거나 실내 훈련으로 전환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예비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현행 예비군법은 미세먼지 농도가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실내 훈련이나 시간 조정을 ‘노력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폭염이나 한파에 대한 별도의 대응 조항은 없다. 이에 따라 매년 반복되는 이상기후 속에서도 훈련은 강행되고, 불만과 민원도 되풀이돼왔다.
발의된 개정안에는 기상청 기상특보가 발효된 지역에서는 △훈련 연기 △실내 전환 △훈련 시간 조정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단순 권고가 아닌 법적 강제 조항으로, 훈련 주관 기관이 폭염에도 훈련을 밀어붙이는 관행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정 의원은 “지역 언론사인 전남일보의 연속 보도를 통해 실태를 접했고, 일상이 된 기후위기 속에 더는 예비군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예비군도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이다. 최소한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지키는 법적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 청년들이 예비군 훈련으로 건강을 위협받고 취업 일정이나 학업을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시대 변화에 맞게 제도를 손보는 것은 국가의 책임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법안 발의 이후, 지역 예비군들 사이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훈련을 마친 예비군 김모(27) 씨는 “이런 더위에 훈련에 나오라는 통지서를 받았을 땐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법이 개정돼 앞으로는 위험한 상황에서 강제로 훈련받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모(26)씨도 “한여름에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니 정말 땀으로 샤워하는 줄 알았다”며 “하루빨리 이런 폭염 속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구조적 대응 측면에서도 이번 입법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전국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기상특보가 내려진 날, 훈련을 연기하거나 실내로 전환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수백 만명에 이르는 예비군들이 더 이상 기후위기 속 무방비 상태로 훈련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이 늘고 있고 예비군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날씨에 의한 피해’가 일상화되고 있다”며 “이 법은 단지 예비군만을 위한 것이 아닌, 기후재난 시대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 정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제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과제도 남아 있다. 실내 훈련장 인프라 부족, 훈련장의 지역 편차, 장거리 이동 부담, 운영 인력 유연화 등은 후속 대책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국방부 등 군 당국과 예비군 지휘체계도 이에 걸맞은 전면적 훈련 개편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법안이 실제 통과되고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국회의 모니터링도 절실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폭염에 대비해 ‘혹서기 교육훈련 지침’ 준수를 강조하는 문서를 지난 3일과 10일 각 군에 시달했다”며 “각종 훈련 중 위험성 평가를 하고 안전조치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사전 예방교육도 철저히 할 것을 지시했다.부대 훈련 지침과 온도지수를 고려해 훈련 일정·방법 등을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현·이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