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Z세대 독자 이서연(18·왼쪽)씨와 이수민(16·오른쪽)양이 5·18 사적지인 광주광역시 동구 전일빌딩245 1층에서 작품의 한 구절을 설명하고 있다. 박찬 기자 |
“초등학교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어요. 금남로 건물 외벽에 선명한 총탄 자국들이 남아 있는 사진이었는데 교과서에 적힌 설명만으로는 납득되지 않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지난 주말 5·18 항쟁지인 전일빌딩245 1층에서 만난 이서연(18)씨는 학교 수업만으로는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씨에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은 기억은 추상적 이미지로만 그려오던 그날의 비참한 상황이 살갗에 와닿는 경험이었다.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아닌, 지금의 우리를 숨 쉬게 만든 저항의 연결고리처럼 느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책을 읽고 기억함으로써 저항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항쟁 당시 수많은 10~20대 희생자들이 나왔는데 소설 속의 동호, 정대, 은숙이 단순히 ‘등장인물’이 아니라 지금 내 옆을 걷는 친구들처럼 느껴졌다”며 “나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면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을까, 스스로 반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책을 덮은 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책만으로 다 담기지 않는 그날의 진실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수많은 묘비를 보고 그는 “또래의 청소년들, 현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였을 이들의 이름이 묘지를 뒤덮고 있었다. 봉긋한 흙더미 위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슬픔이 얹혀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소설 속 인물 영재는 뭐가 제일 먹고 싶냐는 질문에 울먹이며 ‘카스테라와 환타’를 먹고 싶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당시 시민들이 얼마나 평범한 일상을 갈망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겨울,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가려는 시도가 44년이 흘러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가폭력의 재현이자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군부정권의 그림자였지만, 국민들은 이에 맞서며 광주에서 시작된 저항의 맥박이 지금도 대한민국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이수민(16)양은 계엄령이 선포된 날, 학교에서 5·18에 관한 수업을 들었고 이후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1980년 광주의 정신이 시대를 건너 오늘을 지켜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전한다.
그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현실이 되는 걸 보고 충격이 컸다”며 “광주의 민주화운동이 실패로 인식됐다면, 그렇게 늦은 새벽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나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월문학의 중요성은 계엄령 이후 벌어진 극우 세력의 폭력 사태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광주의 청소년들은 다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책장에서 꺼내 읽었고, 거리로 나섰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이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박혜은(18)씨는 “현재 극우 세력이 민주주의를 압박하는 방식은 1980년 군부와 닮았다. 이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폭력에 동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치유는 잊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더 깊이 기억하고, 아파하고, 되돌아보는 것이 하나의 ‘투쟁’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과 함께 금남로 일대를 가득 메우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국가적 과오를 부정하고 반복하려는 이들을 보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 조선대 재학생 장상원(25)씨는 ‘5·18 민주화운동 청년해설사’를 병행하며 온라인에서 광주 민주항쟁을 왜곡하는 게시물을 찾아 제보하고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독자 제공 |
진실을 올바르게 전달하고 기억하는 건 우리 세대에 남겨진 가장 큰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 숙제를 일찍이 시작해 풀어가고 있는 청년이 있다. 조선대 재학생 장상원(25)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온라인에서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게시물을 찾아 제보해 왔다. 그는 현재 ‘왜곡폄훼대응자문위원회’ 활동을 펼치는 등 ‘5·18 민주화운동 청년해설사’를 병행하고 있다.
장씨는 오늘날 대다수의 청년은 역사를 정치 이데올로기와 관련 없이 ‘사실’과 ‘정서’ 위주로 알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책보다는 영상과 SNS를 통해 오월광주를 접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극적이고 사실이 아닌 내용이 무분별하게 생산되는 환경을 경계해야 한다고 장씨는 경고했다. 영상물과 SNS 게시물을 중심으로 극단주의 사상을 가진 세력을 키우는 설파가 이뤄지고 있는 최근 정세는 심히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장씨는, 청년 세대가 만들어가는 ‘기억의 방식’에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그는 “영상물이나 SNS 콘텐츠는 빠르고 직관적이라 많은 이들이 쉽게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사람이 ‘악’을 저지르고 동조하게 되는 원리를 깊이 사유하고 권위·전체·반지성주의를 항상 경계하며 사는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건전하게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민주항쟁에 대한 진정한 계승”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광주 청년들에게 있어 5·18을 계승한다는 것은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선 삶의 태도다. 이들은 일상에서, 디지털 공간에서, 거리 위의 외침 속에서 오월영령들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