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포비아’ 전방위 확산…공포 줄일 대책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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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기차 포비아’ 전방위 확산…공포 줄일 대책 시급
광주시, 지하충전 시설 일시 폐쇄
남구서 오인신고 소방 출동 소동
선박 선적 기준 충전율 50% 미만
정부, 지원·방안 대책 내달 발표
  • 입력 : 2024. 08.21(수) 18:33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등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는 가운데 21일 광주시청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구역이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나건호 기자
지난 1일 인천시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800대가 넘는 차량이 전소되거나 그을리는 대형 화재 사고가 일어난 뒤 ‘전기차 포비아’가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엔 광주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한 차량에서 난 매연을 전기차 화재로 오인한 시민의 신고로 소방 당국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는 등 전기차 화재 공포가 사회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21일 광주소방본부와 전남소방본부의 ‘전기차 화재 현황’에 따르면 광주시는 △2021년 2건 △2022년 2건 △2023년 0건 △2024년 2건으로 나타났고 전남도는 △2021년 3건 △2022년 2건 △2023년 1건 △2024년 2건이었다.

전국 기준으로는 2019년까지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전기차 화재 발생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 △2024년 상반기(1~6월) 29건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처럼 전기차 화재 발생 증가는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전기차는 불이 나면 순간적으로 리튬이 터지면서 1000도 이상의 폭발을 일으켜 화재 진압이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시민들의 공포와 경각심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광주시와 각 지자체는 전기차 포비아를 줄이기 위해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광주시는 청사 지하의 5개 충전시설 사용을 중단하고 전기차 주차를 전면 금지했다. 광주 남구는 청사 지하 주차장에 있던 9개의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 1층 주차장으로 옮겼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두려움은 전기차 선박 선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남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연화도→욕지도를 운항하는 A업체 등 2개 사는 전기차 선적을 전면 금지했다. 전남에서는 제주항로를 운항하는 여객선사들이 전기차 선적 기준을 배터리 충전율 5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해상에서 불이 나면 진압이 어려운 점과 많은 승객을 태워 운항하는 여객선 특성상 대형사고 우려를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규제들이 전기차 소유주의 생활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명확한 기준과 법 제정을 통해 전기차 소유주의 권리 보장과 시민들의 불안감 해소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남도 해운항만과 관계자는 “아직 전기차 선적에 대한 명확한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해수부)의 권고만 나온 상황이다”며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현재 ‘목포·여수·진도·완도·녹동→제주’ 항로의 선박들이 전기차 선적에 대해 충전율 50% 미만 제한 권고를 적용해 운항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 달 해수부에서 전기차 선적 기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새로 발표할 예정이다”면서 “현재까지 전기차 전용 화재 진압 장비를 갖춘 선박은 없는데 내년 중으로 선박 내 전기차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장비 보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유근종 광주시 사회재난과장은 “9월 초에 환경부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내면 그것과 연계해 광주시도 전기차 화재 대비를 위한 제도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아직 정부의 구체적 지침이 나오지 않아 섣부른 정책이 오히려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울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서울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입차를 위해선 90% 이상의 충전율이 필요하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기차 화재가 충전율과 큰 연관이 없다는 의견을 제기하며 이러한 대책이 성급했다고 지적한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배터리 충전량과 화재 발생은 관계가 없다며, 100% 충전해도 안전한 운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자사 차량 계기판에 충전율이 100%로 표시돼도 실제로는 추가 충전 용량이 남아 100% 완충을 나타내는 게 아니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이를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기차 포비아 확산을 막기 위해서 배터리 안전규격 강화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제기됐다.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GIST) 에너지융합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 보급된 전기차 배터리는 수백 개의 셀 중 단 하나만 불이 붙어도 전체로 확산하는 구조다.

냉각재나 난연재를 써 화재 전이를 차단하거나 고장 난 셀이 없는지 진단하고 관리하는 배터리관리기술(BMS)이 이미 존재하고 배터리에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소화하는 기술도 있지만, 해당 기술을 적용하면 가격이 올라 제조사들이 선택하기 꺼린다는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이 이를 채택하기 위해선 결국 정부가 나서 전기차 배터리 안전규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임 교수의 주장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일 ‘2025년도 예산안 관련 당정협의회’를 통해 전기차 화재 예방 및 진압 관련 예산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기차 화재예방 충전기 보급을 9만대까지 확대하고 무인 파괴 방수차,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 추가 도입, 국고여객선 전기차 전용 소화장비 보급 예산 등을 반영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어 다음 달 초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범위와 정책 마련을 골자로 한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충전율 규제와 함께 사후 화재 진압 등이 포함될지 주목된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