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18명 유족, 27억원 손해배상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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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18명 유족, 27억원 손해배상 승소
주민·교사·농민·상인 등 무작위 학살
재판부 "장기소멸시효 적용 불가"
  • 입력 : 2024. 06.23(일) 16:48
  •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
1948년 여순사건 발발 당시 진압군이 민간인을 검문하고 있는 모습.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 직후 군·경의 좌익 부역자 색출·토벌 과정에서 사살 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정신적 손해 배상을 받는다. 18명의 유족은 이번 소송을 통해 총 27억원 위자료를 인정받았다.

광주지법 제14민사부(재판장 나경 부장판사)는 여순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자 18명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는 여순사건 직후 군·경의 좌익 토벌 도중 숨진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들인 원고 20명에게 상속분에 따른 위자료로 각기 948만1792원~2억1500만원씩 총 24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1948년 10월 9일 당시 제주 4·3 사건 진압 차, 여수에 주둔한 국방경비대(국군의 전신) 소속 군인 2000여명은 반란을 일으켜 토착 좌익 세력과 합세해 여수·순천과 주변 일대를 장악했다.

이에 당시 정부는 총 11개 대대 규모의 진압군을 투입, 반군 협력자 색출·토벌 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반군의 점령지 또는 이동 경로에 속했던 지역민들은 부역자, 반군 협조자라는 이유로 사살됐다.

원고들의 부모 또는 형제였던 18명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또는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에서 여순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자로 인정 받았다.

희생자들은 1948년 12월부터 1950년 12월 사이 반군을 돕거나 좌익 유격대 세력 등을 돕거나 동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적법 절차 없이 연행, 총살 당하거나 사살된 민간인이다.

이 중에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 뒤편 밭에 끌려가 집단총살 당한 교사, 보리 파종을 위해 두엄을 지고 가다가 연행된 농부 등도 있었다. 반군에 짐꾼으로 끌려갔다는 이유로 사살되기도 했다.

재판부는 “국가 소속 군인, 경찰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했다.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해 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했다.

피고인 국가 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났다고 주장한 데에 대해서는 “원고들은 여순사건 위원회로부터 관련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송달 받은 이후에야 비로소 손해의 발생, 위법한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 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 등을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헌법재판소 관련 위헌 결정에 따라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에 해당해 민법상 장기소멸시효 5년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