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민박집·캠핑장 ‘앞마당이 바다’… 힐링 촌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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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전남일보]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민박집·캠핑장 ‘앞마당이 바다’… 힐링 촌캉스
●함평 주포한옥마을
주포항·돌머리해수욕장 근처
전원마을… 49가구 거주
주민 3분의2가 민박 운영
카라반·오토캠핑장 인기
바다 저편 낙조 풍경 황홀
흥선대원군 척화비 세운 곳
  • 입력 : 2023. 06.22(목) 15:28
김미정 씨의 캘리그래피 작품. 윤슬한옥에서 만난다.
바다에서 본 주포한옥마을 전경. 마을이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윤슬한옥 전경. 주포한옥마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집이다.
함평만의 낙조 풍경. 주포한옥마을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한옥이 멋스럽다. 바다와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이 고즈넉하다. 바다가 그리는 그림도 수시로 바뀐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인가 싶더니, 금세 바닷물이 밀려든다.

“멋지죠? 전망도 좋고요. 저의 집이자, 소꿉놀이 터입니다. 찾아와서 하룻밤 묵는 손님들도 좋아해요. 함평만 풍경이 이렇게 근사한지, 예전엔 몰랐다면서요.”

주포마을에서 ‘윤슬한옥’을 운영하는 김미정 씨의 말이다.

윤슬한옥은 한옥펜션이다. 손님에 내어주는 방은 모두 5개. 화장실과 욕실 등 내부가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다. 온돌방이 있고 침대방도 있다. 전통의 안락함과 현대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집이다. 금·토요일은 늘 손님으로 가득 찬다. 평일에도 빈 방이 드물다. 서울과 경기는 물론 부산과 경남, 멀리 강원도에서도 찾아온다.

하긴, 손님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집이 우아하고 예쁘다. 정원에는 꽃이 흐드러져 있다. 꽃이 크고작은 항아리와 잘 어우러진다. 흙으로 빚은 토우도 익살스런 얼굴로 반긴다. 근사하게 쓴 캘리그래피도 눈길을 끈다. 기왓장에 쓴 ‘밥 잘하는 예쁜 신랑, 밥 잘 먹는 예쁜 각시’라는 글귀가 웃음을 짓게 한다.

“희망사항입니다.”

‘밥 잘하는 신랑과 밥 잘 먹는 각시는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냐?’는 물음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다. 여러 가지 장식도 하나하나 시선을 붙잡는다. 아름다운 가정정원을 꾸미고 단장한 이가 김 씨다.

김 씨는 예쁜 글씨를 직접 써서 장식을 한다. 크게 웃는 얼굴의 토우도, 손님들한테 음식을 담아 내놓는 그릇도 직접 빚었다. 꽤 넓어 보이는 집 안팎의 정원도 손수 가꾼다.

“항아리도 친정엄마, 친구엄마가 쓴 것들입니다. 동네 어르신한테 얻은 것도 있어요. 돈을 주고 산 것보다 애착이 더 가요. 손님들도 좋아하시고요.”

김 씨의 말에서 ‘일하며 즐기는 재미’가 묻어난다. ‘소꿉놀이터’라고 한 게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림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캘리그래피와 그림이 버무려지면 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김 씨가 사는 곳이 함평 주포 한옥마을이다. 주포한옥마을은 전원마을이다. 지난 2019년에 완공됐다. 함평군이 체류형 관광객 유치와 해안관광 활성화를 위해 조성했다.

마을에는 현재 49가구가 살고 있다. 그 가운데 3분의 2가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옛 선비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한옥민박이다.

마을 앞 풍광도 매력적이다. 바다와 갯벌이 잘 보전돼 있다. 돌머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바닷길도 예쁘게 단장돼 있다. 돌머리해수욕장은 서해와 소나무 숲이 한데 어우러져 낭만을 더해준다. 해수찜으로 널리 알려진 신흥리로 연결되는 방파제 길도 멋스럽다.

해질 무렵, 한옥과 돌담길을 따라 걷는 산책도 호사를 안겨준다. 바다 저편으로 떨어지는 낙조 풍경은 황홀하다. 해변의 파도 소리도 정겹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수많은 별빛도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마을에 있는 오토캠핑장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카라반까지 갖춘 캠핑장이다. 마을로 연결되는 교통편도 좋다. 서해안 고속국도, 광주-무안 고속국도가 국도와 바로 이어진다. 도시민들이 찾기에 좋다. 가족끼리, 연인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 맞춤이다. 전남도에서도 농어촌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올여름 ‘촌캉스’ 마을로 추천하고 있다.

오래 전 주포는 서해에서 잡은 어물의 집산지였다. 함평만에서는 엽삭이 많이 잡혔다. 엽삭은 새끼전어를 일컫는 지역말이다. 황실이(강달어), 준치도 잡혔다. 칠산바다에서 잡은 조기도 모여들었다.

흥선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가 여기에 세워진 이유다.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을 경계해 1871년 전국에 세운 비석 가운데 하나였다. 척화비는 함평군청 뒤뜰을 거쳐 지금은 함평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전남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척화비다.

그때 마을의 지명이 주항포(酒缸浦)였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돈이 풀렸다. 밥과 술을 파는 집도 호황을 누렸다. ‘주포(酒浦)’로도 불렸다. 주막이 많은 포구였다. 주막은 50년대까지 성황을 이뤘다.

주포에 바닷길을 막고 방조제가 만들어진 건 일제강점 때였다. 간척사업은 백봉 라용균(1895-1984)이 주도했다. 라용균은 1931년 간척지를 준공하고, 농지 30만 평을 만들었다. 새로운 마을(궁산리)이 생겼다. 간척지는 120여 가구 600여 명의 생활 터전이 됐다. 라용균을 기리는 공적비가 방조제 아래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간척공사 직후 주포는 ‘신설포’ ‘수랑개’로 불렸다. 수랑개는 바다를 막은 간척지가 진흙탕이었다고 이름 붙여졌다. 수렁의 갯가였다.

주포는 1950년대 후반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항구의 불빛도 희미해졌다. 주포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옛 영화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구주포(옛 주포)에서 옛 모습을 그려볼 뿐이다.

주포를 찾는 발걸음이 다시 늘기 시작한 건 60년대 후반이다. 돌머리해수욕장이 문을 열면서다. 자연스레 상점이 생기고, 횟집도 다시 문을 열었다. 부침을 겪은 바닷가에 한옥마을도 들어섰다. 주포한옥마을이 함평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남도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