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유월이 오면, 오, 인생은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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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유월이 오면, 오, 인생은 아름다워라”
오소후 시인
  • 입력 : 2023. 06.22(목) 12:29
오소후 시인
유월이다. “유월이 오면/하루 종일 향기로운 마른 풀 위에/ 내 사랑과 함께 앉아서/ 산들바람 부는 저 높은 하늘에/ 흰구름이 지어 놓은/ 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리.” 이런 지금 한가한 시를 뇌인다. 군대간 남학생에게 안부편지를 영문시로 써보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남학생은 늘 유월이면 내 안부가 궁금하다는 유월이다.

광산구 도심 장록습지, 2020년 12월 국립습지 1호가 된 그런 공간에 서면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 새벽 봄안개가 꿈꾸게 하고 가을 갈대가 노을을 안으면 한 폭의 남도화가 되는 강변을 거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벌써 2년 전이다. 영산강 134㎞를 걸었다. 팬데믹 시절을 극복하자는 차원과 늘 걷고 싶던 강변길을 따라 걸었었다. 도심 강역을 지날 때 참 많은 걸 느꼈다. 강어귀 작은 포구가 아닌 거대한 도시, 그 도시에서 방출되는 오수 그리고 오수처리장 근처를 지날 때는 역한 내음과 어쩔 수 없는 도시의 오염된 공기를 어서 피하고 싶었다. 저절로 환경보호운동자가 되고 만다.

좀 유식한 문자가 떠오른다. 계산무진(溪山無盡) 추사의 글씨로 읽고 싶다. 끝없이 계곡의 물이 흘러야 산이 존재한다는 간단한 해석 넘어 큰 의미도 읽어 낼 수 있다. 특히 황룡강과 극락강이 만나 영산강이 본류가 되는 영산강 Y 벨트가 살아나야한다. 그래야 큰 도시 시민들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있다. 그리고 반성모드로 나는 환경보호를 위해 무얼 했었는가, 또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는가. 스스로 묻고 답했다. 너무나 절실한 문제라고 느꼈다. 나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진실로 생태보호에 뒤서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축제를 열었던 광산구 어룡동 주민축제에 박수를 보낸다. 의병이야기, 5 ·18 정신, 환경보전 참여로 장록습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일은 정말 작은 마을의 큰 비중을 지니는 축제다. 생태모니터들의 영상물을 보면 진귀한 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된다. 2022년 제2회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서식환경 변화로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태환경 보전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기 위해 탐사캠프를 개최한다”며 “장록습지 생물다양성 탐사를 통해 주변에 서식하는 생물종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탐사는 또한 진흥책으로 훌륭하다. 모니터들이 관찰한 생물종 이름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마치 반가운 친구의 이름을 부르듯이 수달, 삵, 새호르기, 흰목물떼새 등 829종을 만난다. 물억새와 닭뿌리풀, 붓꽃, 노랑창포꽃, 외돌이물달팽이, 물벌레, 개똥하루살이, 물칭개나물, 마름, 물거머리, 물바구미, 큰빗이끼벌레 등 낯선 이름을 부르며 나무테크길을 따라 걷는 장록교에서 구비져 흐르는 황룡강에 내리는 노을을 보았다. 6·25 참전용사진혼비 (오경수 시 2007) 앞에서 잠시 묵념하고 시비를 읽는다. 하늘빛(광산) 어등에게 무등이 벗되기를 청하고 극락과 황룡이 영산에서 만나 호남의 역사를 논한다라는 글귀가 용사의 혼들을 달랜다. 아픈 기억의 유월이다.

오월 중순 호남대 정문앞에서 걸어내려와 공원길을 걸었다. 노란 유채꽃밭에 키 작은 형형색색의 코스모스가 흩뿌려져 있는 장록습지 상부 공원에서 걷는 자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낙원, 천국, 극락, 상그릴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내가 아는 이상의 세상을 현실에서 만났다. 꿈 속의 길을 걷는다. 참으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이따금 새들이 짝을 부르고 나는 동영상 촬영을 하고 ‘사랑아’ 노래를 입히고 어느새 장록습지는 문화창작소가 되었다.

서울 여의도만한 면적의 장록습지를 장록교에서 바라본다. 뒤돌아보면 한 시간 반이면 도착되는 KTX열차가 지나는 광주송정역이 보인다. 한 달음에 서울 한강을 보는 상상을 한다. 남으로 흘러가는 영산강 구비마다 전설과 신화가 주저리주저리 담겨있다. 가야산, 앙암바위, 강변문학길, 느러지, 멍수등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멀구슬꽃나무와 해당화가 핀 영산강 1경길로 생각은 흘러간다. 백천강이 필경에는 바다로 간다는 어느 명사의 글귀던가. “그녀는 노래 부르고/ 나는 그녀를 위해 노래를 짓고/ 마른 풀내 향긋한 건초 더미 위에/ 남몰래 둘이 누워/ 하루 종일 달콤한 시를 읽으리/ 오, 인생은 아름다워라 /유월이 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