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광주 광산구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 왼쪽부터 나야나, 임세미 쉼터 팀장, 말린다, 산지와. |
6일 찾은 광주 광산구 외국인노동자센터.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세 명이 센터에 모여 점심을 지어먹었다. 둥글게 모여앉은 이들은 제일 먼저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걱정했다.
한국에 온 지 20년이 넘은 나야나(53·여)씨는 "스리랑카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무척 심각해 집 앞 가게를 가는 일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갈 수 없다'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리랑카 공동체에서 매달 조금씩 모은 돈으로 몇 개 가정에 쌀과 반찬 등을 지원해주려 한다. 직접 방문하지 못해도 이렇게나마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스리랑카행 비행기는 두세달에 한 번 이륙한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수는 훨씬 적다. 어렵게 스리랑카에 도착하더라도 2주 간 격리조치 되다보니 3달 안에 귀국하려면 일정이 무척 빠듯하다.
몸이 아파 고향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한국에 온 지 2년5개월 째라는 말린다(26)씨는 "E-9 어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양식장에서 오래 근무했다. 지금은 허리가 아파 잠시 일을 쉬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치료를 받고 싶지만, 3개월보다 하루라도 더 늦게 귀국하면 미등록외국인이 된다는 불안감에 (고향 방문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한국에서 치료를 받지만, 보험이 없어 번 돈 대부분을 치료비로 충당하기도 한다.
산지와(30)씨는 "위장이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 보험이 없어 CT 찍고 약 처방받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코로나19와 홍수 등 재난 상황을 겪으며 한국 생활의 외로움을 사무치게 느낀다고 토로했다.
나야나씨의 한 동료는 수년에 걸쳐 고향에 보낼 중고 핸드폰, 노트북 등을 여러 개 모았다. 그에겐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아껴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살림이었다. 하지만 기록적인 홍수에 살던 집이 잠기면서 모아둔 물건들이 모두 떠내려갔다.
임세미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쉼터팀장은 "홍수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살 집과 살림을 잃었지만, 어떠한 지원도 없었다. 이주노동자들도 내국인과 똑같이 일하고 세금을 내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난 상황에서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한국 사회 시선이 이 정도에 머물러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정일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국장은 "고용허가제는 미등록 양산법"이라면서 "미등록 외국인이 되는 건 그야말로 간단하다. '작업장 변경은 3개월 안에 해야한다'라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작업장을 바꿀 때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허락 없이 작업장을 변경하면 고용주가 5일 간 이탈 신고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영락없이 미등록 외국인 신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9비자로 입국한 외국인들은 원칙적으로 최초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에서 계속 취업해야 하지만, 예외적으로 사업장의 휴업, 폐업 등 정상적인 노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경우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장 변경에도 제약이 따른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 횟수를 3년간 3회, 변경 기간은 3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사업장을 이동하는 이주노동자는 3개월이 단 하루라도 초과되면 새로운 곳에서 일할 수 없다. 사업주의 귀책 사유일 경우엔 횟수에 상관없지만, 역시 3개월 이내에 근무처를 변경해야 한다.
지난 2012년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직장 이동 권리 제한이 인종차별이라며, 고용허가제에 대해 개정 권고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바뀐 건 없다.
이주노동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직장 선택 권리 제한이다. 고용센터에서 연결해 준 일자리로만 취업해야 해서 원하는 일자리가 생겨도 갈 수 없다. 고용센터를 통해 취업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3개월 이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참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
말린다씨는 "고용센터에서 일자리를 소개해 줄 때까지 기다리다 미등록외국인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여기저기 일자리는 많고, 친구들 통해 괜찮은 작업장을 소개받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는 일자리로 옮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E-9비자로 입국한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는 광주에 956명, 전남에 1799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어업비자(E-9 2)로 입국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