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또 다른 아돌프 아이히만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서석대>또 다른 아돌프 아이히만
오지현 취재1부 기자
  • 입력 : 2025. 02.16(일) 17:41
지난 주말, 광주 충장로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싼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보수성향 기독교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개최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국가비상기도회는 금남로 3~4가 일원에서 열렸다. 이날 금남로에 모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 안정을 위한 것이였으며,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니 만큼 탄핵은 타당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윤석열 정권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광주비상행동(이하 광주비상행동)은 금남로 1~3가에서 제14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를 개최하며 ‘맞불 집회’를 열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지지를 촉구하고 나선 이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 피가 뿌려진 이 금남로에서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내란 수괴를 지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 출신의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는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을 취재하며 그가 엄청나게 사악한 인물이 아니라, 단순히 명령에 따라 행동한 ‘평범한 관료’였다는 점을 들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해냈다.

한나 아렌트는 어떤 이가 주체적으로 사유하지 않을 때, 즉 비판적 사고 없이 체제나 권력의 명령을 따를 때 악은 소리소문없이 사회 전체에 확산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악이 반드시 사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속에서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평범한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서 실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아렌트는 “사유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행동이 정말로 윤리적이고 정당한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을 의미한다”며 “아이히만은 주체적으로 사유하지 않았기에 역사상 최악의 유대인 집단 학살에 기여하며 ‘나는 법을 따랐고, 내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비상계엄을 대하는 정치권과 국민들의 태도를 계속해서 변해왔다. 초반만 하더라도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으나,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또 다시 특정 세력의 논리와 정치적 사견에 휩쓸려 주체적인 사유를 포기한 채 휩쓸리고 있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에 있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국가의 결정에 자신의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비판적 사고 없이 체제에 순응하는 또 다른 아돌프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