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양화단 선구자 오지호의 생애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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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한국 서양화단 선구자 오지호의 생애를 돌아보다
●'오지호와 인상주의 :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
내년 3월2일까지 전남도립미술관
회화작·아카이브 등 200여점 전시
탄생 120주년 앞둔 서양화단 선구자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 VR 체험 눈길
  • 입력 : 2024. 11.18(월) 17:53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지난 14일 ‘오지호와 인상주의 :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 개막을 하루 앞둔 전남도립미술관 전시 현장. 박찬 기자
“아름다운 것을 그렸더니, 그게 조국이었다.”

빛과 생명을 근원으로 순수한 색채를 투영해 ‘한국 인상주의’를 개척한 오지호 화백의 전시가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지난 15일부터 열리고 있다.

전시 ‘오지호와 인상주의 :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는 오는 2025년 오지호 탄생 120주년과 1874년 열린 제1회 인상파 전시 150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남도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다.

이번 전시는 화가이면서 민족주의자였던 오 화백의 독자적 예술세계와 미술계에서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논문 등을 통해 드러난 그의 인생관을 알리는 자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찾은 전남도립미술관 현장.

오 화백의 회화작품 10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이젤과 팔레트, 작업복 등)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상주의의 시대적 의미와 현대적 의의를 제고하기 위해 오지호, 김홍식, 김용준이 작업한 초상화 등 일본 동경예술대학 졸업작품과 일본 동경예술대학교 교수이자 일본의 대표 인상주의 화가인 오카다 사브로스케, 후지시마 다케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오지호 작 ‘처의 상’(1936).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오지호 작 ‘남향집’(1939).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크게 설명과 연표 등으로 이뤄진 인트로와 3부로 나눠 구성됐다. 인트로는 9전시실, 1부 8전시실, 2부 7전시실, 3부 6전시실에 각각 마련됐다. 시대적 배경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끼쳐왔는지도 확인해 보기 쉽다.

먼저 1부 ‘인상주의를 탐색하다’는 1920~1945년 작품들로 채워졌다.

동경예술대학 유학 시절 제작한 작품과 한국 최초 서양화 미술 단체인 ‘녹향회’ 활동 등을 감상할 수 있고 1930년대 개성 송도 시절에 출간한 한국 최초의 원색화집 ‘오지호·김주경 2화집(1938)’에 수록된 ‘처의 상’, ‘임금원’과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남향집’ 등이 전시됐다.

이어 2부 ‘남도 서양화단을 이끌다’는 1946~1970년 해방 이후 산 풍경과 항구, 배, 바다 풍경을 비롯해 꽃과 식물, 열대어 등 남도 서양화단을 주도했던 시기의 작품들로 수놓았다. 이와 함께 오 화백의 화업을 이어간 장남 오승우(1930~2023), 차남 오승윤(1939~2006), 장손 오병욱(1958~)의 대표작품도 전시됐다.

오지호 작 ‘캔버스에 유채’(1978).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마지막으로 3부 ‘한국 인상주의를 구현하다’는 1971~1982년를 다루는데 남도의 풍경뿐만 아니라 1974년, 1980년 두 차례의 여행을 통해 담아낸 유럽풍경들과 유작으로 남긴 미완의 작품 ‘세네갈 소년들(1982)’을 만날 수 있다.

1905년 화순에서 태어난 오 화백은 한국의 서양화가,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여 서울 휘문고에서 고희동 교사의 지도로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이후 일본 동경예술대학교에 입학해 서양화과를 전공한다.

그의 일생은 시대적 격동기가 관통한 ‘인(因)’과 ‘욕(辱)’의 연속이었다. 실제 그는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전쟁기록화 제작을 거부했고 민족미술 이념을 내세운 녹향회 활동으로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받았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에 휘말려 남부군에 끌려가 빨치산 생활을 견뎌야 했고 1960년대에는 4·19혁명, 5·16군사정변 직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와 연루돼 옥고를 치렀다.

시대적 풍파를 견뎌낸 그는 1960년대 광주·전남 화단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 구심적 역할을 한다. 1965년 전남도미술전람회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고 예술정신을 널리 전파하는 데 남은 생애를 전념한다. 1982년 작고하기까지 무등산 아래 광주 시산동 초가에서 남도의 풍경과 정취를 담아 실천적 예술정신이 반영된 작품을 유산으로 남겼다.

오지호 화백의 유족이 기증한 그가 생전 미술 작업에 사용했던 유품들. 박찬 기자


제1회 인상파 전시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남도립미술관에 마련된 VR 체험 공간. 박찬 기자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오지호의 손자들은 오 화백을 ‘한국적 인상주의’라는 프레임에 가둬 놓는 것에 부정적”이라고 전하며 단순한 ‘인상파 화가’로 함축하기에 그의 삶은 보다 거대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어 “이번 전시를 위한 유족들의 도움이 컸다”며 “전시관을 찾은 관객들이 빛과 색채로 표현된 오 화백만의 생명의 찬가를 느껴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와 연계한 VR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인상파 전시 15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의 인상주의 대표작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예술세계를 VR로 체험할 수 있어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오지호와 인상주의 :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는 내년 3월2일까지 개최된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