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광주 남구 방림동의 한 도로에 ‘좌측 비보호 표지판’이 거꾸로 매달려 다른 방향을 안내하고 있다. (왼쪽) 광주경찰 관계자가 ‘좌측 비보호 표지판’을 재설치하고 있다. |
교통량이 많은 광주 도심 한 가운데 설치된 교통안전표지판이 한 달 넘게 거꾸로 방치돼 운전자 등 시민들이 큰 혼란을 빚었다. 더욱이 해당 도로는 지하철 공사로 매번 차선이 바뀌는데다, 표지판이 안내하는 곳은 횡단보도라서 보행자들의 안전 또한 위협을 받았다.
지난 14일 광주 남구 방림동의 한 도로. 남구청 앞 백운교차로에서 조선대병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 한 가운데 ‘호보비’라고 적힌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오른쪽을 가리키는 이 표지판을 따라가니 도로를 벗어나 외딴 골목길로 안내됐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해당 표지판은 거꾸로 설치된 ‘비보호 좌회전’이었다. 당초 오른쪽이 아닌 왼쪽을 가리켜야할 것이 180도 뒤집어진 채로 매달려 다른 방향의 길로 안내했던 것. 초행길이나 초보운전자의 경우 자칫 길을 잘못 들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해당 도로는 하루 평균 약 2만대의 많은 차량이 오간다. 특히 도시철도 2호선 건설로 수시로 차선이 변경,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에는 상습 정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인불명의 ‘거꾸로 표지판’이 설치되면서 이곳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의도치 않게 ‘거북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직장인 방태현(24)씨는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 익숙치 않은 상황에 표지판 마저 이러니 출근길마다 가슴을 졸인다”며 “한번은 ‘내가 잘못본 건가’ 싶어 넘겼는데, 알고보니 아예 잘못 설치된 거더라. 정말 당황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방향’만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본보 취재 결과 지난 2022년 지하철 공사와 함께 설치됐던 해당 표지판은 지난달 15일 공사 트럭이 신호등에 부딪히면서 180도 거꾸러졌다. 이로 인해 조선대병원에서 남구청 방향으로 가는 차량을 위한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이 반대로 남구청에서 조선대방향 운전자들로 향하게 됐다. 더욱이 표지판 양쪽으로는 횡단보도로 통행길이 있어 이따금 유턴하는 운전자들이 이곳을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30대 운전자 정모씨는 “비보호 표지판이 잘못 설치된 건 알았지만, 방향만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지 아예 뒤집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공사로 매번 차선이 바뀌기 때문에 (횡단보도가 있어도) 통행이 되는 줄 알았다. 지나가면서도 ‘보행자와 부딪힐 것 같다’는 우려를 하긴 했다”고 말했다.
18일 기준 신고된 인명·사고 피해는 없었지만, 시민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중인 최모(68)씨는 “수십 년간 동네에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공사로 원체 위험한데 교통표지판까지 이러니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리주체인 광주시는 ‘시행사의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교통안전표지판은 경찰에서 해당 도로의 위험도·통행량 등을 고려해 자치구(지자체)에 설치 통보한다. 4차선 미만은 해당 자치구가 설치·관리하고 이를 넘기면 시가 하는 식이다. 이 도로는 4차선으로 광주시가 관리하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해당 구간은 잦은 차선 변경 등 특수성이 있어 광주경찰과 도시철도가 직통으로 소통한다”며 “지난달 생긴 사고 이후 도시철도가 현장 수습을 (지하철) 시행사에 맡겼는데, 미처 세부적으로 확인을 못한 것 같다. 교통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다만 언제까지 시정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관련해 질의 했지만 ‘담당부서에 확인하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이 도로에 교통안전표지판을 지시했던 경찰 측은 ‘광주시의 탁상행정’을 꼬집으며 곧장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광주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설치 요청 후 모든 권한·관리를 지자체에 맡긴다. 시가 현장에 나와보지 않으니 몰랐던 것 같다”며 “해당 장소는 당장의 사고 위험이 높아 보인다. 바로 정상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한달 넘게 방치됐던 ‘거꾸로’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은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하루만에 시정조치 됐다.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