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치밀한 연출로 그려낸 스펙터클한 자연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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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치밀한 연출로 그려낸 스펙터클한 자연재해
정이삭 감독 ‘트위스터스’
  • 입력 : 2024. 08.19(월) 17:17
정이삭 감독 ‘트위스터스’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정이삭 감독 ‘트위스터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의 타이틀 ‘twisters’가 뉴스로만 알던 먼 나라의 토네이도라는 정보 하나만 달랑 갖고서, 이 무더위를 시각적으로 식혀줄 재난영화겠거늘 지레짐작하며 영화관을찾았다. 영화 보는 도중 “대박, 미쳤다!”가 한 엑스트라 배우의 대사여서 한국 관객을 겨냥하고 삽입한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엔딩 크레딧 맨 처음에 ‘Lee Isac Jung’이란 이름이 떠서 깜짝 놀랐다. 이태 전, 배우 윤여정을 아카데미 수상식장에 수상자로 서게 해주었던 영화 ‘미나리’(2020)의 감독이어서였다.

영화 ‘트위스터스’는 저예산 독립영화였던 ‘미나리’와는 규모부터 달랐다. 스티븐스필버그 감독 및 거물급 영화인이 기획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대규모급 제작비 2억 달러(약 2740억 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급 영화였다. 전작 ‘미나리’로 수상 21관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감독이기는 했으나, 미국적 재난인 토네이도를 소재로 한 것으로 보나 미국적 인물구성, 로데오 신과 어우러지는 기타 반주의 컨트리송 등에서 정이삭 감독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할리우드식 재난영화의 문법에 충실한 영화라서, 예컨대 볼거리 한가득인 재해·재난의 스펙터클한 신에 인류와 지구를 구하는 특출한 영웅 출현으로 평화를 가져온다는…. 그래서 더더욱 ‘이 감독이라고?’ 하며 의아함과 함께 내심 반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할리우드식 재난영화의 정석이라 해도 감독이 추구하는 색이 있었다. 감독이 갖는 맑은 색은 영화를 뻔한 재난영화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의 철학이 중요하다. 특별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케이트(배우 데이지 에드가 존스). 그녀는 어릴 적부터흐린 날과 바람을 느끼는 ‘날씨 소녀’였다. 대학 시절, 토네이도를 길들이겠다며 친구들과 팀을 구성, 자신이 개발한 화학물질을 이용해 실험을 하다 예상을 넘어서는 규모의 토네이도를 만나 그만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만다. 5년 후, 기상청 직원이 된 그녀는 큰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고 있다. 그러다 함께 살아남은 옛친구 하비(배우 앤서니 라모스)와의 재회가 다시 토네이도를 쫓게 한다. 그런데 토네이도를 쫓는 무리는 더 있다. 유튜브 인플루언서인 타일러(배우 글렌 파월)의 토네이도 헌터 팀. 이들이토네이도를 쫓는 데에는 각각 다른 목적이 있다. 목적이 다르면 어쩔 수 없지만 같은 곳을 향하는 무리들이 힘을 합치면 에너지가 상승하는 법이다. 그녀는 새로운 인물과의 만남에 힘을 얻어 도전으로 이어지는 열정을 되살리고 토네이도를 향해 질주한다.

영화는 3차례에 걸쳐 강도 높은 토네이도를 보여주고 건물 잔해와 자동차, 사람을 날려보내는 강풍과 비바람으로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토네이도만 보여줬다는 생각이들지 않은 것은 다채로운 서사 구도의 짜임새 때문이어서였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낯선 토네이도가 강도에 따라 어떤 위력을 갖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어서 현장감이 극대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굉음과 강풍으로 지면을 집어삼키는 토네이도가 불어 닥쳐 객석의 관객마저 날려버릴 것만 같은 긴장감과 박진감을 주는 것은 신 하나 하나에 스펙터클함과 디테일을 겸비한 치밀한 연출 덕이리라. 재난 앞에 개인의 욕망을 더하는 자본주의적 마인드도 놀라웠지만, 감독의 철학은 공공선을 위해 연대하며 타인을 돕고자 하는 신을 통해 드러난다.

‘트위스터스’의 원작은 영화 ‘트위스터’(1996). 두 작품 모두 토네이도 체이서들이 등장해 거대하고 위력적인 자연현상에 맞선다는 줄거리를 갖고있다. 28년 전에 만들어진 ‘트위스터’가 토네이도를 예측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면, ‘트위스터스’는 한 발 더 나아가 토네이도를 길들이고 멈추려는 이를 그려냈다. 영화를 보며, 토네이도가 이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는 생각이다. 미국에서 학회 참석차 텍사스 오스틴을 간 적이 있었다. 유학중이던 후배네 집에서 이삼일 머무를 요량이어서 후배가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그의 집에 가기 전 후배의 와이프를 픽업하러 도서관 앞에서 기다리는데 도통 나오질 않아서 쏟아붓는 빗줄기를 어쩌지 못한 채 차 안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잦아들자 차를 벗어나 도서관에 들어섰더니 입구에 ‘토네이도로 인한 소개령’이 붙어 있었다. 토네이도 경로가 도서관을 통과한다는 예보에 도서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지하실로 대피했노라 했다. 그때는 비껴 가서 다행이라 여기고 말았는데, 이제 와 영화를 보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가 체감의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토네이도의 패턴 역시 점차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다. 정이삭 감독은 “이럴수록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기보다는 두려움 만큼 사랑이 공존하기를 바란다.” 했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