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조상들의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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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조상들의 여름나기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4. 08.18(일) 17:44
  • 최도철 미디어국장
최도철 미디어국장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가을 기운에 접어든다는 입추가 지난 지 십여 일이고, 처서가 낼모레인데 폭염의 기세는 당최 사그라들줄 모른다.

 입맛이라곤 전혀 없지만 지인의 권유에 냉면을 먹고 들어오는 길. 등골을 서늘하게 하고 뒷머리 땡땡치는 기계 바람이 싫어 잠시 걸을까 했는데, 웬걸 몇 걸음도 채 가지 못해 온몸에 다시 땀이 스민다. 땡볕에 마실도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별 수 없다. 다시 사무실 에어컨 아래로 피신할 수 밖에.

 겨우 한숨 돌리려니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이나, 삽상한 그늘자리에서 부채를 부치는 납량이 고작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이 무지막지한 찜통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날 덥기는 옛날에도 매한가지였던 것 같다. 고려 중기 대문호 이규보(李奎報)의 시 ‘고열(高熱)’에 염천의 고통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혹독한 더위와 근심의 불덩이가 가슴 속 가운데서 서로 졸이네/ 온몸에 빨갛게 땀띠 나기에 바람 쐬며 마루에 곤해 누웠지/ 바람이 불어와도 화염과 같아 부채로 불기운을 부쳐대는 듯/ 목말라 물 한 잔을 마시려 하니 물도 뜨겁기가 마치 탕국물 같네….’ 얼마나 더웠으면 이렇게 표현했을까.

 조상들의 여름나기 방법은 신분별로 차이가 있었다. 체면을 중시했던 양반들은 아무리 덥다한들 길동이처럼 훌훌 옷을 벗어던지거나 물속에 뛰어들지 못했다. 돗자리를 깐 사랑방 옆 마루에서 죽부인을 끼고, 삼베 옷 속에 등거리와 등토시를 걸쳐 바람을 통하게 해 견뎌냈다.

 선비들의 또 다른 피서법은 독서삼매에 빠지는 것이었다. 의관을 정제하고 사랑방에 앉아 선현들의 글을 읽으면서 더위를 잊는 것이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인 윤증(尹拯)은 ‘더위(暑)’라는 시에서 ‘구름은 아득히 멀리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제일이구나.’라고 독서를 최고의 피서로 쳤다.

 이에 반해 서민들의 여름나기는 ‘더위 쫓기’였다. 계곡을 찾아 천렵을 즐기거나 시원한 폭포수를 맞기도 했으며, 때로는 바다를 찾아 모래찜질을 하며 여름을 났다.

 유례없는 불여름이 제 아무리 맹위를 떨친다고 하나 입추가 지나지 않았는가. 이제 다시 십여일만 견디면 조석으로 소슬 바람 불어오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 들릴 터이다.
최도철 미디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