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가을 전어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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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가을 전어축제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4. 08.15(목) 17:06
이용환 논설실장
“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고 하자/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고 하자…/가을에는 사람의 몸속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슬픔 있으니/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 있는 속살로 채우자/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정일근의 시 ‘가을 전어’는 읽을 때마다 맛있고 멋지다. 8월 하순, 바다에서 갓 잡은 전어를 뼈째 썰어 된장에 찍어 먹는 맛은 고소하고 달짝지근하다. 가을을 앞두고 슬그머니 빠져나간 마음의 빈자리를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위로받겠다는 감성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했다. 봄에는 도다리가 그만이고, 가을에는 전어가 최고라는 얘기다. 전어는 가을이면 뼈가 부드러워 지고 살이 오른다. 이때 먹는 전어는 회 뿐 아니라 무침이나 구이로도 제격이다. 전어 새끼로 담는 연식젓, 내장을 담은 전어 속젓, 전어의 위를 모아 담은 밤젓도 미식가들에게는 유명한 음식이다.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전어 한마리가 햅쌀 밥 열 그릇 죽인다’는 속담이 회자되는 것도 이맘때다.

전어의 본고장은 광양 망덕포구였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솟아나 500여 리를 달려온 섬진강과 광양만과 합류하는 이곳은 영양염류가 풍부하고 갯벌이 발달해 예로부터 전어 잡이가 성행했다. 해질녘 광양만에서 전어를 가득 잡은 배가 망덕포구로 돌아오는 광경은 광양10경 가운데 하나인 망덕귀범(望德歸帆)이다. 보성 율포에서 장흥 회진, 강진 마량, 완도 금당도로 이어지는 남해안도 전어 주산지다. 특히 이곳 전어는 물살이 센 서해안과 달리 잔잔한 바다에서 살이 통통하게 올라 ‘떡전어’라고 불린다. 지금도 이곳에서 잡히는 전어는 최고를 자랑한다.

가을의 시작인 처서를 1주일 여 앞두고 보성과 광양에서 전어를 주제로 한 축제가 잇따라 열린다. 특히 16~17일 보성 율포솔밭해수욕장에서 열리는 보성전어축제는 맛과 멋이 조화로운 ‘5감의 향연’이다. 최근 해양수산부의 국가어항에 예비 지정된 율포항의 미래를 엿보는 기회로도 중요하다. 23~25일 광양 진월면 망덕포구 일원에서 개최되는 광양전어축제도 아름다운 풍광과 고소한 전어가 일품이다. 날씨보다 더 짜증나는 정치와 폭염보다 더 살인적인 경제가 옥죄는 지금, 보성과 광양을 찾아 깻잎과 전어에 저민 마늘 몇 쪽 곁들여 맑은 소주 한잔으로 위로받고 싶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