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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남도' 문화적 키워드 광주·전남에 가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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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남도' 문화적 키워드 광주·전남에 가두지 말라

함평천지(咸平天地), 무등(無等)과 남도
지금 여기 발 딛고 서 있는
내 땅에 대한포지티브적 해석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요
광주전남이 아니라 호남이며
호남이 아니라 삼남이다

게재 2022-11-17 17:20:13

지난 칼럼 <호남가의 내력 찾기>를 통해 지명가요의 전통과 변천을 톺아본 바 있다. 다시 제기할 문제는 호남의 각 지역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른바 중의법(重義法)을 차용한 이유랄까, 그렇게 시를 짓고 노래했던 남도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읽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조선 초기부터 발생하여 유행하던 지명가사(地名歌辭)가 호남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란 점에 대해서는 지난 내 칼럼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위백규의 여도시(輿圖詩)에서는 경기, 호서, 해서, 관서, 관동, 관북, 영남, 호남을 골고루 노래했다. 문제는 문학 장르로서의 가사(歌辭)를 넘고 여러 노래하기의 방식들을 거쳐 호남을 노래한 부분이 특화되었다는 점, 급기야 판소리 단가 호남가로 정착한 이유이다. 확인하였듯이 지명 관련 노래는 호남에서만 불란 것도 아니요, '함평천지~'로만 시작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임방울이라는 유행가수가 불러 이른바 국민가요로 등극했다. <호남가>는 그래서 호남의 노래를 넘어 지명가요로 거슬러 올라가는 국토에 대한 노래일 수도 있다. 마치 이난영이 불러 국민가요가 되었던 <목포의 눈물>과도 같다. 그러하니 어찌 <호남가>를 뭇 언어학자들의 해석처럼 지명을 패러디한 언어유희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삼남(三南)의 남도(南道)로부터

<남도인문학>이란 깃발을 내세우고 그 의미를 오랫동안 추적해왔기에, 남도(南道)를 여러 차례 얘기하거나 주장해왔다. 이를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남도가 본래 삼남(三南)의 별칭이었음을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사전적인 풀이를 재확인한다. 남도는 "경기도 이남의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제주도를 특화하여 흔히 남도(南島)라는 왕섬으로 호명하지만, 1946년 도(道)로 승격하기 전까지는 호남에 속하였다. 삼남(三南)의 사전적 풀이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세 지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남도'와 '삼남'의 풀이가 같다. '삼남'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으로는 세종 때부터 하삼도(下三道)에 대한 논의가 자주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방행정구역이 체계를 잡은 조선 초기 태종 때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한다. 하삼도는 호강(湖江, 지금의 금강) 이남의 호남지방, 제천 의림지 서쪽의 호서지방, 조령(鳥嶺) 남쪽의 영남지방으로 세분된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농업생산과 물류, 군사 등의 요충지였다. 예컨대 17세기 이후 조운(漕運)의 87%를 삼남지방이 차지한다. 마산창, 법성창, 공진창 등이 그 사례다. 농업과 어업이 주축이던 시대에는 이 공간에서 거의 모든 국가적 에너지가 생산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하니 가렴주구(苛斂誅求)가 횡횡하던 시대에는 어찌 삼남의 백성들만 도탄에 빠졌겠는가. 삼남에 대한 폭압은 곧 전국에 대한 폭압일 수밖에 없었으니 이 지역에서 동학이 성행하고 급기야 혁명과 전쟁이 발발했던 것 아니겠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세 지방의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충남평야, 호남평야, 김해평야를 뜻하는 삼남보고(三南寶庫)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국가의 에너지가 논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요, 유무형의 다각적인 공간에서 창출되는 시대이기에 꼰대 어법으로 치부되겠지만, 적어도 삼남으로서의 남도 의미가 그러하였다는 점 정도는 인지해둘 필요가 있다.

호남가(湖南歌)에서 남도의 노래로

지금의 남도(南道)라는 의미는 '광주전남'으로 축소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충청남도와 경상남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전라북도 사람들마저 '남도'에 대한 정서가 약하거나 혹은 거부감이 있다. 내가 말해온 남도 혹은 남도인문학은 일찍이 지춘상 교수가 말했던 금강 이남, 섬진강 이서라는 공간을 토대로 형성된 문화 지층들에 관한 것이기에 기왕의 삼남을 포괄한다. 비교학적 맥락에서는 아시아를 포섭하고 세계를 아우른다. 아무리 축소하여 인지하여도 남도사람들의 미학적 전거로 호명되는 '귄'의 공유권이랄지, 육자배기토리, 판소리 등 무수한 키워드들이 공유되는 지역이다. 나는 여기서 '갱번'과 갯벌을 읽어냈고 뭍과 물의 대칭을 독해하였으며, 뒤집어 읽는 방식을 통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세계관으로 정리해냈다. 그런데 왜 삼남보고(三南寶庫) 등의 내력을 내버리고 호남으로 축소되고 더욱이 광주전남으로 제한되는 의미로 '남도'가 호명되어온 것일까? 어떤 이들은 역사나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광주전남으로 축소되거나 제한된 의미로 보는 것은 한 편의 결과일 뿐이다. 남도는 오히려 광주전남으로 수렴되고 응축된 에너지의 다른 말이다. 앞으로 좀 더 쓰긴 하겠지만 지금까지 본 칼럼을 통해 320여 차례 제시했던 각양의 키워드들이 사실은 이 하나의 시선으로 묶이는 구슬 같은 것들이다. 나는 남도라는 문화적 키워드를 광주전남 혹은 호남이라는 지리에 가두려는 인식을 거부한다. 견강부회가 아니다. 지금 여기 발 딛고 서 있는 내 땅에 대한 포지티브적 해석이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요, 광주전남이 아니라 호남이며 호남이 아니라 삼남이다. 나는 이것을 또한 지명가요 호남가로부터 배웠다. '함평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그렇고 불교 용어에서 차용한 무등이 그러하며, 가없는 한해륙 갯벌의 물길들이 그러하다. 호남가를 남도의 노래로 고쳐 부르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방울이 불러 전국민을 울렸던 호남가, 그 첫머리로 고정된 함평천지의 너른 의미를, 남도로 수렴된 에너지들 다시 모아 전국민을 웃게 하는 노래로 다시 불러야 할 시대에 우리가 서 있다.

남도인문학팁

함평하다, 무등하다, 그래서 자유하다.

일전에 함평 고향에 정착한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철학자는 왜 고향에 돌아왔는가'라는 화두를 내건 강연이었다. 여기서 최교수는 함평을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마지막 남겨둔 땅'이라고 표현하였다. 미래비전을 설계해나가자는 취지라고 생각되었다. 판소리 단가 <호남가>를 들어 최교수의 발언을 상기한다. <호남가>에서의 함평(咸平)은 '모두 평평하게 다스리고 지위고하나 높고 낮음이 없이 너른 호남'을 의미하는 중의어이다. 무등산의 무등(無等)을, 무유등등(無有等等)의 불교 용어를 넘어, 등급이나 차별이 없는 민주와 평화로 해석하는 것과 같다. 아니 '그 이상 더할 수 없다'는 동사 '무등하다'의 지극함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에서 '광주'는 무엇일까?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고을'이란 뜻이다. 지난번 함평에서 내가 <호남가의 내력> 관련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객석의 촌로께서 제안해주신 내용이다. 탁견이다. '함평하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호남가에서 적시한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등하자'는 뜻으로 내가 제안하는 동사이다. 지역의 존재의식, 발 딛고 서 있는 자기 땅에 대한 정체성의 인식이라야 중의적이고 다의적인 의미부여의 본뜻을 펼칠 수 있다. 땅 이름을 노래하는 것은 나의 정체를 톺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함평천지로 시작하는 호남가는 지명시에서 지명가사로, 영산에서 허두가를 거치며 판소리 단가로 정착하기까지 더 넓고 더 너른 남도라는 미래를 창조해나가자는 의미로 우리에게 남겨둔 노래다. 남도의 노래를 다시 짓는다. 함평하니 무등하다. 그래서 자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