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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 씻김굿의 '이슬털이'… 종교 횡단하는 신화적 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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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 씻김굿의 '이슬털이'… 종교 횡단하는 신화적 원형

■ 이슬털이란 무엇인가
남도 무속의례 대표성 갖는 씻김굿
진도에선 예부터 '이슬털이'로 불려
유교 제례 필수인 술 만들기서 유래
증류주 만드는 원시적 방법이 이슬털이
기독교 '성찬의례'·불교 차와 연결돼

게재 2022-07-28 14:42:49
씻김굿(이슬털이). 진도군 제공
씻김굿(이슬털이). 진도군 제공

몇주 전 조선일보 조용헌살롱에서 '씻김굿의 이슬털이는 술 만들기''는 내 이론을 다루어 주었다. 씻김굿의 핵심거리인 '이슬털이'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이 시대가 장차 씻김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상재(上梓)한 글이다. 내 오랜 주장이기도 하지만, 비로소 내 생각들이 인용되는 듯하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감사드린다. 이 언급을 기회로 다가오는 명절 백중을 빌미 삼아, 기왕의 설을 보충해 둔다. 진도뿐 아니라 남도 전역의 씻김굿 중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기도 하고 또 이 시대가 더불어 어깨 겯고 나가야 할 덕목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누룩과 솥뚜껑을 솔가지(근래는 빗자루)로 씻는 의례 이슬털이. 이윤선
누룩과 솥뚜껑을 솔가지(근래는 빗자루)로 씻는 의례 이슬털이. 이윤선

남도씻김굿 이슬털이 방법과 유교적 맥락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의 씻김굿은 우리나라 남도 무속의례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사안마다 다른 이름을 붙여 굿판을 벌인다. 한 틀의 씻김굿은 대략 12개의 '거리'로 구성된다. 판소리로 치면 열두 개의 마당이다. 연극으로 치면 열두 개의 '과장'이다. 중간쯤에 배치한 '씻김거리'가 전체 굿의 핵심이다. 그래서 다른 거리의 이름들을 놔두고 통칭하여 '씻김굿'이라 한다. 이상한 것은 예로부터 진도사람들이 이 거리를 '이슬털이'라 했다는 점이다. '이슬털기' 혹은 '이슬털이'라는 이름의 출처와 이항대립의 경계 넘기 맥락에 대해서는 졸저 '산자와 죽은자를 위한 축제'(민속원)에서 자세하게 다루었다.

사용하는 소품들이 여러 개다. 죽은 자를 위해 마련한 옷가지를 저고리에서 버선까지 돗자리에 놓고 말아 세운다. 넋(魂)을 만 돗자리이기에 '영(靈)+돗말이'다. 소리 나는 대로 '영돈마리'라 한다. 말아 세운 돗자리 위로 누룩을 놓는다. 누룩은 원형틀에 넣고 밟아서 만든다. 원모양의 가운데가 옴팍하게 패어있다. 엽전을 크게 확대해놓은 모양새다. 종이로 오린 넋을 넣은 주발(周鉢)을 위에 놓으면 흔들리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모양이 된다. 위에 짚으로 만든 또아리(똬리)를 놓고 솥뚜껑을 덮어 '영돈마리'를완성한다. 주발은 뚜껑이 있는 밥그릇이다. 불교적 뉘앙스가 짙다. <탯줄코드>라는 명저를 쓴 김영균은 이것이 자궁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게 말해주었다. 위에 놓은 또아리를 뱀의 또아리로 해석하고, 이를 '탯줄코드'라는 신화적 장치로 풀면 자궁과 탯줄을 연결하는 한 가닥의 키워드가 드러난다. 졸저에 '진도 상장례와 재생의례'라 부제를 붙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죽은자의 부활이나 재생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대개의 죽음 관련 의례를 관통한다는 것이 내 이론의 핵심이다.

좀 더 자세한 분석은 따로 소개하겠다. 이슬털이는 당골(무당)이 솔잎에 쑥물, 향물, 맑은물 등 세 가지의 물을 묻혀 세워놓은 '영돈마리'를 씻는 절차다. 진도문화원장을 역임한 박병훈옹은 이를 '식힘굿'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씻김굿이라는 이름이 보편화 되기 전의 주장이다. 사람이 죽으면 불지옥으로 떨어지게 되니 사전에 물로 식힌다는 뜻이다. 불교적 내세관이 반영된 주장이다. 나는 이를 '삭힘(음식 등)'과 '삭임(마음)'의 과정으로 풀었다. 졸저에서 고 이완순 당골의 사설을 인용해두었다. "상탕에 향물로 목욕하고 중탕에 쑥물로 목욕하고 하탕에 청계수로 목욕하고...(중략)...용천감로(龍泉甘露) 정화수로 저의 도량에 감응내림 하옵소서" 등이다. 여러 거리 및 여러 곳의 사설에서 유사한 내용을 감지할 수 있다. 내가 주목했던 것이 누룩과 솥뚜껑이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필수재료다. 왜 하필 이 의례에서 누룩과 솥뚜껑을 사용했을까? 또아리와 밥그릇(주발)을 사용했을까? 간단치 않은 문제다. 신화의 원형이 내포하는 아우라라고나 할까. 그 배경을 살피게 되면 소스라치게 놀랄 맥락이 숨어있다. 수십년 전 내게 이른 일종의 깨달음이다.

자세한 내용은 졸저를 참고하는 것으로 하고, 결론만을 말한다. 유교 제례의 필수인 술 만들기다. 증류주 만드는 원시적인 방법을 '이슬털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진도홍주 만드는 소줏고리 형태를 빌어 졸저에서 설명해두었다. 기독교의 성찬의례 및 불교의 차(茶)와도 연결된다. 나는 이를 종교를 횡단하는 신화적 원형이라고 봤다. 제사의 완성은 '음복(飮福-제사를 마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이라고 늘 주장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 미장센의 배경은 유교 의례다. 그것뿐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용천감로를 좀 더 부연해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씻김굿에서 사용하는 한지로 오린 넋. 이윤선
씻김굿에서 사용하는 한지로 오린 넋. 이윤선

남도인문학팁

이슬털이의 용천감로(龍泉甘露)와 불탑 노반(露盤)의 이미저리(imagery)

노반(露盤)은 불교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을 말한다. '이슬판'이라고도 한다. 탑 위 네모난 기와집처럼 생긴 조형물이다. 연꽃처럼 장식되어 있기도 하다. 보통 위에 복발(覆鉢)이나 보륜(寶輪)을 올린다. 노반 위에 엎어놓은 듯한 복발(覆鉢)은 주발(周鉢) 곧 바리때(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그릇) 형태다. 한자말에서 알 수 있듯이 반(盤)은 쟁반이나 소반, 밑받침 등 자그마한 밥상이다. 이를 이슬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 이슬', 즉 감로(甘露)롤 받는 쟁반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이 내린 천상의 음료가 감로다. 사찰의 전각 내부를 구성하는 감로탱화가 이 맥락을 그린 그림이다.

감로 그림은 우란분절에서 비롯되었지만, 세시풍속 백중과도 연결된다.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련이 거꾸로 매달린 아귀도의 어머니를 구제하고자 했다는 '불설우란분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한무제는 건장궁(建章宮) 안에 하늘 닿을 듯한 구리쟁반을 만들기도 했다.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받아 마시고 영원히 살고자 함이었다나. 일곱 아름이나 되는 이슬받이 쟁반 아래 길이 20장(丈)이나 되는 금경(金莖)이라는 기둥을 만들었다. 믿거나 말거나, 현명한 임금이 어진 정치를 베풀면 하늘이 이 신령스런 액체를 내려준다고 한다. 인도의 생명수 암리타(Amrita)가 그것이다.

넥타르(靈酒), 암브로시아(神饌) 등도 유사하다. 꿀같이 달고 향기가 좋다. 이것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고 번뇌가 사라질 뿐 아니라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신비스러운 이슬이라고 한다. 남도씻김굿의 영돈마리 이미지를 대입해보면 마치 불탑을 세우고 쑥물, 향물, 맑은물로 씻는 의례라고 말할 수 있다. 향물은 흠향(歆饗), 쑥물은 이승의 상흔 치유, 정화수는 감로에 대입해볼 수 있다. 거듭 상고하는 것은, 이 장치를 고안했을 우리네 조상님들의 마음이다. 불교가 융성했을 시절에는 탑상의 노반을 상상하며 죽은자의 재생과 부활을 염원했을 것이고 유교가 융성했을 때는 제사술(祭酒) 만들어 음복(飮福)함으로써 후손들로 이어지는 유교적 영생을 도모했을 것이다. 불교라고 다르며 기독교라고 다르겠는가. 노반 위의 복발을 자궁으로 해석하고 남도씻김굿 이슬털이의 또아리를 탯줄로 해석할 수 있듯이 신화 원형은 힌두교 혹은 시바교의 남근 모티프까지 거슬러 오른다. 내가 초기 논문에서 이슬털이를 남근 모티프로 해석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주목한다. 부활의 기능을 포섭하고 제반 종교를 횡단하는 이슬 말이다. 따라서 남도씻김굿의 영돈마리 이미저리는 유교적 시선으로 보면 제사술 만드는 소줏고리이고 불교적 시선으로 보면 불탑이다. 이를 세워두고 무가를 연행하는 의례 이슬털이는 유교적 시선에서는 음복이고 불교적 시선에서는 감로의례 혹은 세시풍속의 백중의례다. 기독교적 시선에서는 성찬의례다. 이 모두 재생과 거듭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시국이 요란해서인지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조용헌이 지적했듯이 이 시대는 씻김이 절실한 시대요, 김영균이 포착했듯이 탯줄의 아우라가 긴요한 시대다. 나야 땔나무꾼이니 언감생심 종교적 심성 따위를 바라겠는가. 전주 모주(母酒)나 감주(甘酒) 몇 병 시켜두고 오는 백중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