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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500년을 관통 어딘가에 코리아 양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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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500년을 관통 어딘가에 코리아 양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붕(鵬)새의 날개

게재 2022-06-02 15:23:06

"말이 맞지 못하야 이 날밤 삼경시에 바람이 차차 일어난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 내려 깃발을 바래보니 청룡주작(靑龍朱雀) 양기각(兩旗脚)이 백호현무(白虎玄武)를 응하야 서북으로 펄펄 삽시간에 동남대풍(東南大風)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기폭판(旗幅版)도 떼그르르 천동(天動)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더니 간담이 떨어지는지라~" 판소리 적벽가 중 동남풍 부는 대목이다. 적벽대전 눈 대목의 하나, 긴박한 장면이기에 자진모리로 노래한다. 이 바람 아니었으면 주유가 조조의 백만 대군을 맞아 어찌 화공(火攻)을 펼 수 있었겠는가.

우리네 이름으로 흔히 마파람이라 한다. 배산임수를 정향(定向)으로 맞은편에서 불어오니 '맞바람'이고 동쪽으로 살짝 비꼈으니 '샛마'다. 새파람과 마파람의 틈바귀, 남도말로 '새다구' 바람이다. 봄철부터 비를 데리고 오는 바람이기에 '비올바람'이다. 반대로 북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격이니 '하누바람'이다. '샛마'와 대칭되는 서북풍이라 흔히 '늦하누'라 한다. 이러한 바람의 들고남이 비와 눈 혹은 가뭄과 동행하는 몬순(monsoon)지대에 우리가 속해 있다. 어찌 계절풍뿐이겠는가. 철마다 해 뜨고 지는 길이와 각이 달라지는 것이며, 북두칠성 기울어 순환하는 이치가 다르지 않다. 고대 이래 이것은 신화와 전설로 은유되기도 하고, 철학과 과학으로 표명되기도 했다. 다만 숨겨져 있으니 일각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각양으로 표명되었으나 선뜻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의 시선

그런데 말이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아카넷, 2021)라는 책을 펼치다가 무릎을 쳤다. 노숙과 함께 주유를 찾아간 공명은 남병산에 올라 칠성단을 쌓고 제를 지냈는데, 김상준 교수는 한해륙 어느 산에 올라 칠성단 쌓고 제를 지냈던 것일까. 청명하던 하늘에 동남풍 불어닥쳐 조조의 백만대군 무찌르듯 그의 언어는 화살이 되고 화선(火船)이 되어 종횡무진 지구별의 여러 지축을 울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징검징검 바람 거슬러 팽창하는 서양의 어딘가에 대고 불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나같이 눈썰미가 없는 사람은 알아채기 어렵다. 북명(北溟)에서 남명(南溟)으로 흐르다 다시 되돌아 흐르는 몬순의 바람만이 아니다. 그 위에 일출 일몰의 길이를 조절하는 태양이며 구만장천 지구별 전체를 날개짓하는 장자의 붕새를 포착했으니 천리안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 참고로 북쪽의 하늘바다 북명이나 남쪽의 하늘바다 남명, 곤(鯤)이라는 물고기나 붕(鵬)이라는 새들 모두 장자의 창작물이다. 김교수의 눈초리가 옹골찬 것은 횡축의 문명 흐름에서 종축의 붕새를 읽어내는 섬세함에 있는 것 아닐까. 급기야 저자의 새로운 적벽대전에서는 서양의 팽창근대를 뒤집어엎는 새로운 문명의 전장(戰場), 내장(內張)근대의 승전을 예고하기에 이른다. 아니 이미 깃발을 올리는 중이다. 내장근대, '안(in)으로의 확장(pand)'이라는 뜻일 텐데, 유럽 내전체제와 동아시아 평화체제, 군현과 봉건, 무(武)와 문(文), 중심과 주변은 물론 태평천국의 난에서 동학혁명까지 종횡무진 추적하다가 중국 내전, 베트남 전쟁, 우리 민족상잔의 전쟁, 전염병과 기후위기, 500여 년을 관통하는 어딘가에 도달한다. 그 지점에 코리아 양국체제가 있고 붕새의 양 날개가 있다.

천 쪽에 가까운 대작을 어찌 한 페이지 칼럼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 다만 몇 군데 대화들이 귓전을 맴돈다. 대항해시대 낙차 창출의 연속과정이 서구의 팽창 근대가 지속된 기술이었다. 팍스 브리태니카의 시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중국도 군사적 정복을 통해 '낙차'를 만들어 정복하려는 욕망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우리가 아는바 구체적인 근대의 기점은 아편전쟁이다. 하지만 저자는 근대의 기점을 혁명적으로 올려잡는다. 세계 역사학계가 근대화=서구화=문명화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 도식을 폐기한 지 오래되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마찬가지로 문명화=일본 식민지 지배라는 공식도 부정한다. 총생산과 인구 두 부분의 증가율이 두드러지게 커지는 시기를 기점 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내장(內張)근대와 서양 팽창근대라는 대립항을 도출하고 붕새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부상의 당위를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김교수가 이리 말하지 않겠나. "그리 꼼꼼하게 읽다니...." 그러면 내가 대답한다. "다 먹어 봐야 맛을 압니까. 손가락 끝에 찍어보기만 해도 하하하..." 이리 대답하면 책을 다 읽지 않았거나 듬성듬성 훑었다는 것을 혹시 숨길 수 있으려나. 아니 그것보다는 저자도 얘기했듯 서문의 종합발제만 가지고도 붕새의 날개짓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사례야 두고두고 읽어나가면 될 일이다. 권두에 "길을 잃었던 나에게, 이제 그 나이에 도달한 오늘의 젊은이에게"라는 표제를 붙였다. 헤드라인에는 <도덕경> 22장을 인용하였다. "멀리 돌았기에 온전하고, 굽었기에 곧다" 그래서일까. '멀리 돌아' '굽어 생각하면' 어렴풋이 보인다. 반어법이나 변증법보다는, 주역의 대대성(對待性) 회복으로 읽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서양의 팽창에서 동양의 내장으로 전진하는 것이 진보요, 다시 무(武)에서 문(文)으로 이행하는 것이 형류세형(形-流-勢-다시形)의 순리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죽은 시인의 사회'인 우리 현실의 '쪽팔림'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게 되었다. 혹은 퇴행하는 역사일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이라는 안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재구성했던 '갱번론'과 '물골론'을 덧붙여 술안주 삼을 수 있으려나.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남명 이르렀던 태양이 북명 향하는 어느 계절, '동남풍' 예비하는 그의 형창설안(螢窓雪案)을.

남도인문학팁

김상준의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를 읽으며

달포 전 어느 술자리에서 김교수가 내 손을 잡고 한 얘기가 있다. "장군에게 무슨 세부 전공이 있겠나. 모든 것을 통할(統轄)하는 것이 장군이지" 음! 이분네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구만 하하하, 그랬는데 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저작을 보고 알게 되었다. 에둘러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김장군! 내 말이 맞지 않소? 장자의 붕새를 몬순 지역의 바람 혹은 태양으로 읽어내고 북명에서 남명으로의 종축을 통해 문명의 횡축을 추적한 시선 말이요. 이를 붕새의 양 날개라고 했다. 사실 오래전 유사한 추적들을 몇 군데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이를 몬순과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은 처음 접했다. 아마 내 과문 탓일 것이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 혹은 생태적 현상으로 호명하는 남동풍이니 북서풍이니 하는 언술을 새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종축은 문화권 문명권별로 여러 개 혹은 수십 개 설정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동아시아 중심의 종축에 붕새가 있고, 서남쪽을 향해보면 또 하나의 붕새 가루다가 있다. 그뿐이겠는가. 용과 봉황, 뱀과 나가(Naga) 등 수많은 종횡의 대칭이 있다. 그가 길을 열었으니 이제 누군가 대칭성 회복의 기제들을 소환하고 추적하게 될 것이다. 사회과학, 자연과학 따위면 더욱 좋다. 다만 영감 가득한 이 책의 핵심, 문명의 진로에 대해 내가 언급하기는 어렵다. 내 수준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길을 찾은 어떤 젊은이들처럼 더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할 뿐. 길 없던 시절, 혼인하여 큰아이를 낳고 이름을 '붕(鵬)'이라 지었던 만용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일찍이 동학의 최제우에서 증산의 강일순으로 혹은 흰그늘의 김지하 등으로 어쩌다 꼬리를 무는 북명(北溟)의 성근 성운(星雲)을 올려다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