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세는 나이'가 '폐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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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세는 나이'가 '폐습'이라고?
나이 셈법의 전통||우리는 '세는 나이' 전통은 적어도 아름다운 신화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음력설과 양력설이 병존하듯, '만 나이'로 집행의 묘를 살리면 될 일이다.||굳이 '세는 나이'가 폐습인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 없다.
  • 입력 : 2022. 04.14(목) 16:33
  • 편집에디터
아궁이에서 동지 팥죽을 정성스레 만드는 모습.
새 정부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것 중 하나가 나이 셈법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식 나이 셈법이라고 말들이 많았다. 많은 매체가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한 여론조사 발표를 보면, 국제표준인 '만 나이'를 우리 국민 70% 이상이 찬성한다고 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기도 하고 대다수가 찬성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만 나이' 세는 방식으로 바뀌는 듯하다.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심지어 북한까지 '만 나이' 셈법으로 바뀐 지 오래이니 반대할 명분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근자의 설왕설래를 거쳐 코로나 확산과 지원 등의 문제에 봉착하면서 이 문제가 더 도드라졌다. 한 가지 상고해볼 일이 있다. '세는 나이'라 일컫는 한국식 나이 셈법이 지닌 함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언설이 일종의 레토릭이 아니라면 말이다. 유사한 회한이 있다. 2014년부터 전면 시행된 도로명주소 표기법이다. 이미 늦긴 했었지만 남도민속학회 229회 월례회(2018. 7. 28)에서 이를 문제 삼았다. 2018년 한국민속학자대회(2018. 11.9~13)의 섹션 주제로 다루기도 했다. 두 번 다 내가 회장과 이사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문제 제기였다. 하지만 이미 국가적으로 공표되고 시행되는 정책이어서인지 별다른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나이 셈법이나 도로명 표기 모두 관리의 편리성과 비용의 절감, 글로벌한 시스템과의 융화 등 행정적 편의성이 강조되었다. 그것이 전부일까?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실질 이면에 잃어버리는 것은 없는 것일까? 이를 환기한다는 의미에서 차제에 도로명 주소 표기법의 문제점도 다뤄보겠다.

나이가 세 개라는 한국 사람들

이즈음 각 매체에서 뽑은 제목들이 현란하다. 이름은 하나인데 나이는 3개라는 둥, '만 나이'를 도입하면 일상이 바뀐다는 둥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안을 소개하기 바쁘다.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세는 나이'를 비롯해 민법상으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만 나이' 또 '연 나이'의 용례들 말이다. 수년 전 법률 개정까지 시도되었던 이 흐름을 보면 '세는 나이'의 불합리성이 강조되고 '만 나이'를 도입했을 때의 장점들이 열거된다. 세는 나이가 일종의 악습이나 폐습이 되어버렸다. 꼭 그런 것일까? 하지만 관습적으로 혹은 전통적으로 관념되는 '세는 나이'가 행정집행을 교란하거나 방해한다는 시각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세는 나이의 전통이 생각보다 넓고 깊다. 굳이 법률이나 제도로 없애지 않아도 현재 있는 민법상의 '만 나이'를 충분히 활용하거나 재구성하면 해결될 문제들 아닌가? 작년 민주당 김형배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가 강한 비판을 받고 철회했던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떠오른다. 홍익인간 등의 용어가 너무 추상적이라 하여 민주시민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꾸려던 사례 말이다. 홍익인간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따왔으니 추상적이라고 느꼈던 것일까? 견주어 말하자면, 세는 나이는 추상적인 것이고 만 나이는 구체적인 것일까? 예컨대 음력설은 추상적인 것이고 양력설은 구체적인 것일까? 동짓날 팥죽 한 그릇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는 풍속 등 부지기수의 사례들은 또 어떠한가? 한글, 한복, 한식, 한스타일, K-컬쳐의 범주에 '세는 나이'의 전통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새 정부의 안으로 모두 두 살씩 어려졌다고 말하는 농담이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한 사람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나이'라는 말은 '낳다'의 '낳'에서 왔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는 '낳'으로, 19세기부터 '나히', '나이' 등으로 변화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람이나 동·식물 따위가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라고 설명한다. 용례를 보면 나이, 연경, 연령, 연세, 연치, 연식, 춘추, 치산, 행년, 낫살, 나잇살, 귀경 등 십여 가지가 넘는다. 표면적으로는 한 해를 기점 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생명의 시작이라는 우주적인 철학이 깃들어 있다. '세는 나이' 방식은, 한 사람의 시작을 출생으로 보는 과정론적인 방식이다. '만 나이' 방식은 출생 1년 후에야 1살을 부여하는 결과론적 방식이다. 그렇게 따지니 후자는 1년 동안 0살이다. 물론 세계가 그렇게 사용하고 있기에 우리 전통을 고수하려는 이들이 고루하거나 편협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주목해둘 것이 있다. 본래 '세는 나이' 셈법은 동아시아 보편이었다. 그 안에 많은 기표와 기의가 있다. 단군신화가 대표적이다. 한 사람의 시작을 어느 시점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한 우리 고유의 철학적 토대라고나 할까. 삼칠일과 백일은 임신과 출산 즉 '낳(나이)'의 기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정보다. 곰은 동굴에서 마늘 스무 매(20)와 쑥 한 단(1)을 먹고 사람이 된다. 세이레(21)는 지금까지도 지켜지는 출산 풍속의 하나다. 100일은 백일잔치, 백일기도 등 보다 구체적인 행위와 사건들로 관념된다. 탯줄과 금줄이라는 수많은 암호와 상징들이 더불어 직조된다. 혹자들은 관련한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태아기의 생명존중 사상을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사실은 태어나자마자 1살을 부여하는 관념 자체가 그 증거다. 태교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굴리스&세이건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상적 관점에 따르면 '당신'은 당신의 출생 약 9개월 전에 당신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좀 더 깊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약 40억 년 전 초기 지구의 반죽 속에 빚어진 생명의 대담한 출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의 '세는 나이' 전통은 적어도 이런 아름다운 신화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지면상 할애하지 못했지만, 육십갑자를 배경 삼는 '갑계'와 '동갑'의 의미들도 이 나이 계산법에 포섭되어 있다. 남도지역의 '갑계'가 다종다양한 기능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어깨동무, 송아지동무, 삼바꿈동무 등 '동무'라는 말이 '동갑내기'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세는 나이' 전통이 그 기저에 있다. 행정적으로 난망하다면 음력설과 양력설이 병존하듯, '만 나이'로 집행의 묘를 살리면 될 일이다. 굳이 '세는 나이'가 폐습인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 없다.

남도인문학팁

'세는 나이' 전통은 생명존중 사상에서 비롯된 것

현대에 횡횡하는 생명경시 풍조가 어디서 비롯되었겠는가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오만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태아를 생명으로 극진히 생각했던 동양 고유의 철학 체계가 무너진 것도 그 하나의 원인이랄 수 있다. 마치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양, 시신 따위야 태워 없애버리면 된다는 풍조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음택의 풍수를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모가 사랑으로 만나 임신하고, 열 달 만에 탯줄 끊어 광명한 세상으로 나오는 사건의 의미를 허투루 여길 수는 없다. 단군신화로 거슬러 오르는 우리 고유의 철학 체계이다.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관심만큼 부모의 몸을 빌리기 전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거슬러 올라 조상들에게 묻고 내리내리 후손들에게 묻는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만 남아있다는 '세는 나이' 전통을 폐습처럼 여길 일인지, 그래도 우리가 생명존중 기반의 나이 셈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인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