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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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섬
  • 입력 : 2021. 04.22(목) 15:34
  • 편집에디터

신안군 하의도

섬을 이르는 우스개 중 하나, '서 있다'고 해서 '섬'이라 한다. 농담으로 하는 말일까? 제주도 비양도에 흥미로운 설화가 있다. 임신한 해녀가 흘러 내려오는 섬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는데 한림 앞바다에 서게 되었다. 아마도 이 섬에 올라 소변을 보던 해녀 아니었으면 우주 어느 한 별까지 흘러가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늘에 날아오른다는 뉘앙스의 비양(飛揚)이라 이름을 지었을까.

그래서인지 북쪽 해안의 파식대에 발달한 호니토를 애기 업은 돌, 부아석(負兒石)이라 한다. 호니토(hornito)는 용암이 공중에 튀어 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면서 굳어버린 바위덩어리다. 2004년 천년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염습지 펄랑못 중앙에 정초 개의 날 제의를 하는 술일당(戌日堂)이 있는 이유도 이런 설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비양도 뿐일까. 이 이야기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물에 떠내려가다가 "저기 섬이 떠내려가네"라고 소리쳐서 멈춰 선 것이 섬이라는 것이다. 소리치는 주인공은 주로 소녀, 임신한 여자나 출산과 관련된다. 비양도의 해녀가 오줌을 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시작, 출산 행위와 결부 짓는 것은 이 설화를 통해 섬이 가지는 땅의 탄생 아니 어쩌면 우주의 탄생, 모든 생명의 기원을 말하려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삼십삼천 도솔천일까 삼천삼백의 섬

우리나라에 섬이 몇 개나 있을까? 무엇을 섬이라 하는가에 따라 개수는 달라질 수 있다. 도(島)는 관념상 큰 섬을 말하고 아주 작은 섬들은 서(嶼)라 한다. 크고 작은 온갖 섬이라는 뜻의 도서(島嶼)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새(鳥)가 앉아 쉬는 산(山)이라는 합성어로 해석한다.

조수 간만의 차에 따라 나타났다가 없어지기도 하는 암초나 '여'를 섬으로 볼 것인가도 흥미롭다. 우리나라 최남단 '이어도', 마라도로부터 149Km 떨어진 수중 암초인데 2003년 6월에 이어도종합해양 과학기지가 설치되었다. 수심 50미터를 기준으로 약 2㎢인 작은 암초지만 전략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지점이다. 이어도라는 이름은 남도 사람들의 설화와 제주도의 민요에서 왔다. 정부 기관의 통계에서도 섬의 개수가 통일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여를 섬에 포섭한다면 밀물(滿潮)에는 몇 개 썰물(干潮)에는 몇 개 등으로 구분하여 셈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개펄을 포함해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우리 해역이 가지는 특성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섬이 가장 많은 행정구역은 신안군이다. 자료에 따라 800여개에서 천 개 혹은 더 이상의 개수로 표현한다. 하지만 1004개를 통설처럼 얘기한다. 일명 '천사의 섬'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정한 숫자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나는 우리나라 섬의 개수를 삼천삼백 개라고 부른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섬의 개수가 유인도 472개, 무인도 2,876개로 3,348개라는 점을 참조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지랖 넓게도 인문학자의 시선은 바로 삼천삼백이라는 숫자가 표상하는 불교관념, 아니 동양 고전의 관념과 철학에 닿는다. 불교의 우주론에 삼십삼천의 중심 도리천이 있고 도리천의 정상에 수미산이 있다. 해녀가 오줌을 누지 않고 가만 놔뒀더라면 한림의 앞바다 비양도는 어쩌면 삼십삼천 도솔천까지 흘렀을지도 모른다.

해맥론(海脈論), 교역과 전쟁, 갈등과 화합의 징검다리

우리는 오랫동안 북방으로부터의 정치, 외교, 역사, 문화의 이입과 습합을 모토삼아 왔다. 그 근간에 광활한 만주와 대륙, 산과 산맥을 중심에 두는 이론이 있다. 정맥이니 정간이니 하는 이론들, 산을 중심에 두는 풍수적 관념들, 오악삼해(五嶽三海)에 왕이 제사하는 의례들에 이르기까지 그 생각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다.

우리의 역사를 관통해 온 이 관념들은 히말라야나 북방의 광활한 산맥으로부터 백두산 금강산을 거쳐 지리산 등으로 이어져 국토의 실핏줄까지 씨줄날줄로 횡단한다. 이 생각들은 고대로부터의 신화와 관념과 철학에 깊이 스며들어 우리의 내외면을 포괄하는 심리적 지형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멀리는 대해양시대 가깝게는 근대 제국주의의 팽창과 2차 대전, 크고 작은 전쟁과 교섭 속에서 해양의 중요성이 부각되어왔다. 그래서다. 해류와 조류 특히 중국과 한반도의 매개공간인 황해를 거꾸로 보는 해맥론(海脈論)이 중요하다. 산맥의 맥(脈)이 사실은 혈맥이나 수로를 말하는 것이기에 우리말로 표현하면 '물길론'이다. 그간의 내륙적 사관을 뒤집어보는 방식이다. 산맥을 뒤집어엎는 것이 아니라 음양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여기에 적도 상간, 지구 자전의 영향을 받아 회전하는 흑조(黑潮, 쿠로시오 해류)가 있고 이 해류가 갈래를 치는 지류들이 있다.

특히 우리에게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개펄의 특성이 있기에 조류의 해맥론이 중요하다. 나는 이를 토대로 낙동강, 영산강에서 압록강, 두만강에 이르는 강항(江港)문명을 설명하곤 한다. 섬이 해맥의 주요 지점들을 형성한다. 바다를 통한 국가간 협력이나 상존하는 섬 분쟁 등도 포함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지도가 바뀔 만큼 섬을 매개로 하는 혹은 섬을 중심으로 삼는 공간 관념의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연안의 모든 섬들을 연결해버리겠다는 다리도 그런 풍경 중 하나다. 향후 이어질 교량까지 포함하여 선을 그은다면 우리의 지도는 획기적으로 바뀐다. 다리의 안쪽은 일종의 호수가 되는 셈이다. 더부살이하던 교군(僑郡) 혹은 교현(僑縣)에서 오히려 중심이 되는 교군(橋郡)으로 섬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남도지역 특성이던 부잔교(浮棧橋)가 비행기의 Air birdge로 바뀌지 않았던가. 곧 설립될 국립섬진흥원도 이런 흐름들을 반영하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교량(橋梁) 말이다.

땔나무꾼이 어찌 노파심을 말할 수 있겠는가만 바라건대 공간 혁명에 준하는 아니 통념을 통째로 뒤집어 국가개조에 나서는 동아시아적 비전과 포부들을 펼쳐주시기 바란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나라 성장동력의 견인차, 섬사람들의 디테일이 있다. 20여년 가까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작은섬 프로젝트에 참여해오면서 생각해둔 것이 있다. 북한의 섬들을 모두 조사정리하고 위화도에서 회군 아니 회향하는 것 말이다. 시절이 어찌 흐를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새로운 국가의 개조, 희망의 나라를 건국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이 있다. 오늘 남도인문학팁은 졸시 '섬'으로 대신한다.

남도인문학팁

- 이 윤 선

거슬러 오르는 게 어디 연어뿐이랴

조금 무시 지나고 사릿발 물살 억세도

칼날 같은 바람 모가지 아래 비늘 세우고

갱물 거스른 섬들 웅성이며 오르네

곰할머니 동굴에서 쑥마늘 드시던 때였을까

애기 업은 어떤 처녀 소스라치며 외쳤지

저기 섬이 떠내려가네!

저기 섬이 떠내려가네!

외던 소리에 심약한 섬들 그 자리 서버렸는데

달 정기 받으시온 어떤 섬들 외쳤지.

우리 어찌 서있기만 할 것인가

우리 어찌 흐르기만 할 것인가

만년 천년 물 한 가운데 있었어도

흐르는 바람 탓한 적 없고

역류하는 간만(干滿)의 물 원망한 적 없네

대저 갱물은 들고 나는 것이어니

거슬러 오르는 게 어디 연어뿐이랴

남녘 겨울바람 백설 되어 쏟아져 내린 갱번

옷깃 세운 물비늘 길베 삼아 가르며

새떼 같은 섬들 갱물 거슬러 오르네

병풍도

가거도

다물도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