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씨압소 배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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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씨압소 배냇소
  • 입력 : 2021. 01.07(목) 11:28
  • 편집에디터

1972-진도 십일시장 우시장-이토아비또 촬영

'이라~, 자라~, 어이~' 일종의 소모는 소리다. 관련 음영민요는 주로 한강 이북지역에서 채록된 것이 많아 남도지역 농요의 전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명령어에 운율을 넣는 경우는 공통적인 듯하다. '이라~'는 오른쪽으로 '자라~'는 왼쪽으로 돌라는 뜻이고 '어~'는 서라는 뜻이다. 스무 살 되기 전부터 소 쟁기질을 하고 써레질을 해 본 탓인지, 나에게 소는 더없이 친숙하다. 전답이 없던 늙으신 아버지는 순전히 괭이로 서마지기 아홉 배미 산전답을 일구셨다. 한 이랑 쟁기질을 하면 막걸리 한잔을 해야 할 정도다. 산전 옹타리 치고는 사래가 너무 길고 논둑은 어른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비탈졌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언 땅이 풀리기 전에 초벌갈이를 한다. 초벌에 갈아둔 이랑을 양옆으로 갈라치기하며 쟁기질하는 것이 두벌갈이다. 이렇게 이랑과 고랑을 반복해서 갈라치기하여 일곱 번을 갈아야 비로소 논둑을 붙일 수 있다. 일곱 번 갈이 논둑 붙이는 법이라고나 할까. 그제야 논에 물을 대고 써레질을 하며 몽근 흙들이 골라지면 모내기를 한다. 이런 환경 때문일 것이다. 내 카카오톡 이름이 '깔비고 소띠기고'다. 가입할 때부터였으니 근 10여년 써왔다. '소꼴을 베고 소에게 풀을 뜯긴다'는 우리 고향 말이다. 소를 뜯기는 일은 사실 나라의 모든 소년들이 행했던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산과 들에 나가 소가 풀을 뜯어먹도록 시키고 꼴망에 풀을 베어야 한다. 외양간에서는 '쇠죽(粥)'을 끓인다. 회갑을 넘긴 이들 중 상당수는 소 풀 뜯기는 일과 꼴 베는 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1960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인구의 절대 다수가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소 키우기가 그 중심에 있고 그 안에는 마치 관례처럼 씨압소 즉 배냇소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깔비고 소띠끼고', '씨압소'의 전통

"씨압 갖다 키워서 새끼 낳먼 쉬앙치 받기도 허고, 아니먼은 어린 쉬앙치를 가져다 한 2년 정도 키워서 고놈을 팔아갖고 주인하고 절반썩 돈으로 나누기도 허고 그래. 돈으로 나눈 것보고 '바넷소'라고 그러고..." 이기갑 교수 등(「새로 발굴한 방언13」, 한국방언학회, 2014)이 정리한 '씨압소' 용례다. '씨압소'의 표준말은 '배냇소'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남의 소를 송아지 때 가져다가 길러서, 다 자라거나 새끼를 낳으면 원래 주인과 그 이득을 나누어 가지기로 하고 기르는 소라고 풀이해두었다. 제주에서는 '벵작쉐' 혹은 '멤쉐'라고 한다. 유사한 형태로 '반작소'가 있지만 배냇소와는 좀 다르다. 경남에서는 '배내이세' 혹은 '배내기소'라 하고, 경북에서는 '배미기', 또 일부지역에서는 '어울이소'라고도 한다. 진도에서는 '어시소', 영암에서는 '도짓소' 보성에서는 '배냇소' 곡성에서는 '씨압소/갈라먹기' 등으로 부른다. 남도지역에서는 '씨압소'가 보편적으로 통용되기에 나는 이를 준거 삼는 편이다. 송아지를 주고 어미소를 받거나 어떤 지역에서는 기른 사람이 어미소를 갖고 새끼를 낳아 주는 경우도 있다. 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 입히는 옷을 '배냇저고리'라 한데서 알 수 있듯이 '갓난 새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씨'는 의심의 여지없이 '종자'를 뜻하는 말이다. '압'의 출처는 약간 불분명한데, 이기갑 교수는 '아비'의 '압'에서 왔다고 풀이한다. '종자소를 줄 수 있는 부모 소'라는 뜻이다. 남도지역에 전하는 말 중에 씨아부지, 씨아부니, 씨압씨, 씨애비, 씨엄씨, 씨어매, 씨아자씨(시동생) 혹은 씨아잡씨, 씨숙(媤叔), 씨아재 등이 '압' 즉 부모라는 시댁(媤宅)을 넘어 '종자' 즉 '씨'와 연결된다. 씨압소의 전통은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전통이었다.

흰소의 해에 생각하는 십우도(十牛圖), 소는 누가 키우나

열네 살이 되면 씨압소를 부릴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입학생부터 그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무상으로 분배받은 송아지가 생후 6개월이 되면 '목매기' 즉 목에 고삐걸이를 한다. 이후 뿔이 나오고 생후 1년여 후에 코뚜레를 뚫어 채운다. 생후 13달 정도 되면 새끼를 밴다. 임신 기간이 280일로 사람과 거의 같으므로 생후 2년이면 새끼를 분만하게 된다. 통상 이 새끼를 씨압소 받은 소년이 갖고 어미소를 씨압소 준 이에게 갚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소년이 16세가 되면 자기의 소를 갖게 되는 것이고, 혼인할 수 있는 자격이랄까 성년으로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청년창업자금 정도로 퇴화되었지만 절대인구가 농업에 종사할 시기만 해도 통과의례와도 같은 중요한 일이었다. 나랏일을 맡아하는 이들은 이 점 눈여겨 두었다가 '배냇소 정책'을 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이들에게도 씨압소 시스템은 가동되었지만 성년에 진입하는 아이들에게 무상 분배되는 이 맥락을 주목할 일이다. 그러하니 소년들이 어찌 허투루 소풀을 뜯기며 소꼴을 베겠는가. 오만 정성을 다 들여 일종의 씨드머니를 키우고 가꾸지 않았겠는가. 2021년 올해를 신축년 흰소의 해라 한다. 사방에서 흰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원대한 비전들을 얘기한다. 흰소에 의지해 팬데믹에서 탈출하자는 소망들일 텐데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신축년 남편 찾듯, 무진년 팥방아 찧듯', 비교적 잘 알려진 속담의 재현이랄까. 1661년 신축년 그해에도 이랬던 모양이다. 천재지변과 재난, 흉년이 겹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부부도 떨어져 서로 찾아다녔다는 데서 유래한 속담 아닌가. 기후위기와 역병의 창궐, 언택트와 비대면 활동들의 데자뷰 같다. 3~4년 주기로 이 환란이 반복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최재천 교수는 주문한다. 일시에 처방하여 환란을 끝내는 백신은 없다. 주기적으로 반복되거나 혹은 더 강한 역병 팬데믹에 대한 행동백신으로 나가야 한다. 어떤 행동으로 백신을 삼아야 할까. 언택트 비대면이 기본이다. 향후 모든 정책은 이 기조로 수립되어야 한다. 그래서다. 흰소는 누가 공짜로 데려다주지 않는다. 십우도를 우리 같은 땔나무꾼들이 풀이하자면, 그저 묵묵하게 '깔비고 소띠끼'는 일일 것이다. 그래야 검은소가 흰소 되지 않겠는가. 코로나 팬데믹이 신축년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자 주문이다.

남도인문학팁

씨압소와 선불교의 십우도(十牛圖)

십우도를 인간이 깨달아 가는 과정으로 풀이하고 심우도(尋牛圖)라 얘기하니, 숭고한 영성을 어찌 우리 촌부들이 이해하겠는가만, 이를 씨압소에 기대 생각해보고 싶다. 열네 살의 소년이 씨압소를 받아 열여섯에 새끼를 낳게 하여 씨압을 갚고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는 과정, 소 키우는 일에 그만큼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는 뜻이다. 1. 심우(尋牛), 동자승이 검은소를 찾는다. 2. 견적(見跡), 동자승이 검은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3. 견우(見牛), 검은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4. 득우(得牛), 검은소를 붙잡아서 고삐를 건다. 5. 목우(牧牛),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데 검은소가 머리부터 흰색으로 변해간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흰소에 올라탄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7. 망우재인(忘牛在人), 흰소도 없고 동자승만 앉아있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흰소도 동자승도 없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강물은 고요히 흐르고 꽃이 절로 핀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세속의 저잣거리로 들어가 중생에게 손을 드리운다. 십우도의 지극한 과정을 보니 알겠다. 역병 창궐의 해일지언정 그저 묵묵하게 '깔비고 소띠끼'는 것이 정녕 행동백신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것을.

1972-소 뜯기로 가는 길-이토아비또 촬영

경남 거창군 남상면 임불마을 논에서 농부가 누런 황소를 앞 세우고 쟁기질을 하고 있다.뉴시스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고랭지 밭에서 농부가 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하며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고랭지 밭에서 농부가 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하며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경남 남해군 남면 항촌마을 인근 들녘에서 농부가 쟁기질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남 남해군 남면 항촌마을 인근 들녘에서 농부가 쟁기질을 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