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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5화_공간을 깨우고 생명을 불어 넣는 예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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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5화_공간을 깨우고 생명을 불어 넣는 예술의 힘

게재 2020-04-14 14:25:40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던 4월의 봄이 왔다. 이곳저곳 우리 주변의 하얗게 만개한 벚꽃 잎이 마스크를 한 사람들의 숨겨진 입 꼬리를 잡아 끌어올린다.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새로움이 가득한 봄이 왔다. 전과는 다른 분위기 탓에 올해의 봄을 '정말 잊지 못할 봄'으로 우리는 기억 할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자신이 처한 비관적인 현실 상황에서도 '삶과 예술에 대한 의미'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나아가게 했던 지속가능한 예술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현실의 혼란 속에서 보석처럼 찾아낸 '사랑과 행복'에서 부터 아니었을까?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맛볼 수 없는 예술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쏟아져 내리는 새로움과 현실 너머, 순수하고 창의적인 예술의 힘.

수많은 시대의 예술가들은 유용과 무용한 가치의 경계에서 끊임없는 혼란을 겪으며 새로운 쏟아내는 예술을 향한 창조의 몸부림은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끝없이 이어져왔다.

이번 다섯 번째 '큐레이터 노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프랑스에서 겪으며 현실 너머 예술 안의 해피 바이러스를 자신만의 자유로운 선과 색으로 선보인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1954)의 작품을 소개한다.

" 나는 춤을 아주 좋아한다. 춤은 정말로 특별하다. 춤은 삶이요. 리듬이다. 춤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어느 일요일 오후 모스크바로 갈 '춤'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그려야 했을 때 나는 '물랭 드 라 갈레트'로 갔다. 거기서 무희들이 춤추는 모습을 관찰했다. 무희들은 홀을 누비며 서로 손을 잡고 관객들을 리본처럼 둘러쌌다."

by Henri Émile-Benoit Matisse

마티스, 춤Ⅰ,1909, 캔버스에유채, 259.7x390.1cm, 뉴욕현대미술관
마티스, 춤Ⅰ,1909, 캔버스에유채, 259.7x390.1cm, 뉴욕현대미술관

[마티스, 춤Ⅰ,1909, 캔버스에유채, 259.7x390.1cm, 뉴욕 현대미술관]

그의 <춤> 의 작품은 자신만의 밝고 순수한 색채에 대해 생각하고, 행복을 꿈꾸며, 상상했던 화가 앙리 마티스. 춤에서 나오는 삶의 기쁨과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 보다 더 중요했다.

행복과 평화를 기원하는 춤, 마치 우리나라의 강강술래를 연상 시키는 앙리 마티스의 1909년 첫 번째 <춤Ⅰ> 작품은 습작이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걸린 이 작품은 가로가 4m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이며 습작이라는 사실은 쉽게 믿기 힘들었고 마티스는 이런 거대한 작품은 문화자원으로 남아 현재까지 우리에게 그 위엄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대형 캔버스 위에 다섯명 무희들의 원근법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둥그렇게 모여 서서 빙글빙글 도는 무희들은 하늘을 둥둥 떠 있는 것처럼 가볍고 입체감이 없이 편평했다. 세부적인 표현을 거부하고 본질적인 세 가지 색만 사용하여 춤에서 나오는 원초적인 생명력의 에너지와 삶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배경의 파란색은 바다이고 하늘이며 초록은 나무이고 땅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붉은 빛을 담은 인간이 춤을 추고 있다. 이상과 현실이 맞닿은 공간에서 인간이 태초의 순수함을 회귀하기 위한 의식과 같은 춤을 추고 있다. 작품 안의 색 파랑과 초록, 붉은 색은 빛의 삼원색으로 모든 색을 만들어 내는 근원의 색이며 이 세가지 색의 조화는 자연과 우주에 조화 된 인간의 활기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작품을 감상할 때 느껴지는 자유로운 선의 리듬감과 색채가 빚어내는 조화로운 화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사용한 색이 프랑스 남부에서 관찰한 싱그러운 소나무, 푸른 하늘, 분홍빛 살에서 왔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초록색을 칠했다고 해서 풀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파란색을 칠했다고 하늘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쓰는 모든 색은 마치 합창단처럼 한데 어우러져 노래를 부른다."

<춤> 작품은 마치 선사시대 고대인들이 종교의식을 하듯 물아일체가 되어 빙글빙글 도는 춤 속에 드러나는 연결 된 선의 강약은 원초적 생명력과 삶의 기쁨을 대변하며 보여준다. 또한 세 가지 원색이 충돌하여 빚어내는 화음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함을 노래하며, 작품의 원시성과 천진난만함은 지금 불온전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단순하고도 간결한 '예술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하다.

앙리 마티스가 미술사에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회화에서 색을 해방시켰다는 사실이다. 즉 대상이 가진 고유색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에 따라 임의적인 색을 사용함으로써 색채는 자율성을 획득했고, 색채의 추상화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세상에 완벽한 창조적 예술은 없을 것이다. 마티스의 두꺼운 윤곽선과 대담한 원색은 고갱의 영향이었다. 다만 마티스는 사물의 객관적 색채에 상관없이 대담하게 주관적 색채를 구사하는 경향을 색과 색이 충돌하여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감과 운동감 그리고 조화를 그려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음악이 음표들의 관계로 이루어지듯이 회화 역시 색채들의 관계로 이어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1910년에 제작 된 <춤Ⅱ> 작품은 현재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모스크바의 화상, 세르게이 슈추킨이 의뢰한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춤Ⅰ>과 비슷한 구조이긴 하나 두 번째 작품에서는 보다 움직임이 힘차고 활달하다.

[마티스, 춤Ⅱ,1910, 캔버스에유채, 260x391cm, 상트페테르부르크에르미타주 미술관]

작품 안 색채도 더 단순하고 진해졌는데 특히 인물들의 붉은 색 기운이 강해지면서 초록, 파랑, 빨강이라는 색의 삼원색 개념이 좀 더 명확하게 두드러진다. 이렇게 색채를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 입체감을 버렸고 그림자의 어두운 색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티스의 회화는 명암 없이 평평한 색 면으로 강렬하고 장식적인 원색으로 채워진 2차원적 회화가 되었다.

그의 작품 중 <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계속 선보였으며 마티스와 같이 색채의 자율성, 장식적인 원색, 명암 없이 평평한 구성을 추구했던 무리를 일컬어 야수파[fauvisme]라 불렀다. 바로크나 인상파처럼 처음에는 경멸이 뜻을 가지고 시작되었던 주정적(主情的)인 경향을 대표하는 야수파 운동은 마티스를 비롯한 야수파 작가들의 활동은 짧은 기간에 끝났지만, 강렬하고 원시적인 색채와 자유롭지만 확신에 차있는 선은 형태로부터 해방시켜 회화의 독립적인 요소로 격상시킨 것으로 이후 현대 회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순수하고 평온한 앙리 마티스의 <춤> 작품은 인위적인 시선에 맞춰진 본질적 미술의 표현과 규정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담고 있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는 세상이 전쟁과 고난 속, 삶의 어둠을 맞이했을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의 보석처럼 존재하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기쁨'이란 사실을 그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게 아닐까? 마치 세상의 모든 굴욕과 슬픔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예술과 예술가의 순수한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작은 위로가 아닐 수 없다.

마티스, 춤, 1931,캔버스에유채,398x344cm, 복사
마티스, 춤, 1931,캔버스에유채,398x344cm, 복사
마티스, 금련화와춤, 1912, 캔버스에 유채,190.5x114cm,푸시킨국립미술관
마티스, 금련화와춤, 1912, 캔버스에 유채,190.5x114cm,푸시킨국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