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의 시대, 열린 마음으로 변화의 다양성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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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가속의 시대, 열린 마음으로 변화의 다양성 인정해야"
“나이는 숫자…평생 현역이라는 열정 갖는게 중요/스스로 해 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성공의 지름길”||“지구·인류 위한 개개인의 건전한 윤리의식 필요/유능한 학생 도전적 삶 위한 교육의 역할도 중요”
  • 입력 : 2020. 02.04(화) 15:50
  • 이용환 기자

◇박종오 원장 약력 △광주 출생 △광주일고·연세대 졸업 △전남대 로봇 연구소장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 연구원 △독일 프라운호퍼 자동화연구소 연구원 △현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 연구원장

"연구자는 의지가 없으면 연구를 성공시킬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마주해야 한다. '가속의 시대'로 불리는 지금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냥 뒤쳐질 따름이다."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박종오 원장이 평소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이다. 4일 전남일보와 인터뷰에서도 의지와 변화를 수차례 강조했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수요에 의해 가속되는 만큼 여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귀와 눈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결과는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 내기에 달렸듯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기존 규범이나 제도에서 벗어나 변화의 다양성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1987년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뒤 33년을 오직 로봇연구에만 전념해 온 그를 만나 과학기술의 미래와 다가올 4차산업혁명시대를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를 들어봤다.

-과학자로서 신념이 있다면.

△독일 프라운호퍼 자동화연구소에서 1987년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뒤 KIST에서 18년, 2005년부터 전남대에서 15년간 총 33년간 로봇연구에 전념해왔다. 나는 과학자가 아닌 공학자다. 공학은 과학에 시간과 돈이 추가된 학문이다. 아무리 좋은 학문이나 기술도 시점이 맞아야 하고 경제성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도 어려운데 공학은 더 어려운 것 같다. 공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을 든다면.

△스스로 해 내겠다는 의지다. 나는 박사학위과정까지 포함해 38년간 연구에 몰두하면서 후배들에게 의지를 강조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은 자기가 끝까지 성공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지금도 연구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 끝까지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자만이 성공한다'고 얘기한다. 모든 일에는 자신의 능력, 운, 타인의 도움 등 여러 가지 영향이 있겠지만 결국 남는 건 자신의 의지뿐이다. 자신 때문이 아닌 다른 핑계나 이유도 부질없는 일이다.

-개척자의 삶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어떻게 극복하나.

△나 스스로 '끝없는 긍정주의'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을 항상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성공적인 결과를 내왔다는 자신감도 내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다. 밥퍼목사로 알려진 최일도 목사의 책에 나오는 '무대책'처럼 대책없이 긍정적인 신념이 성공의 동력이자 나의 장점이고 단점이다.

-4차산업혁명을 앞두고 창의성이 대세다. 21세기형 인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두가지가 생각이 난다. 영화 '아이언 맨'의 모델인 미국의 갑부 일론 머스크는 대단한 기인이면서 사업가다. 서로 안맞는 조합같지만 사실이다. 머스크는 물론 재력을 바탕으로 학교를 만들고 자신의 철학대로 학교 컨텐츠를 만들었다. 또 하나는 2020년 그래미상을 석권한 빌리 아일리쉬다. 그는 정규교육 대신 재택학습을 했다고 한다. 매우 단편적인 사례지만 창의성의 관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래 AI는 15년 전만해도 뇌과학자와 로봇공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어였고 그렇게 각광받는 단어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율자동차, 구글 바둑, 5G 스마트폰 등 시장이 기술을 견인하는 시대가 되면서 급변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기존 규범이나 제도를 강조하기 보다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열린 마음이다. 변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창의성을 키우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공학자가 보는 기업의 미래도 다를 것 같다.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대신 1인 기업시대가 크게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AI, IoT, 5G, Big Data, Data Cloud 등 이 시대의 주요 단어를처럼 막대한 지구상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개인에게 제공되는 시대다. 다가올 변화된 세상에 맞춰 우리 모두 귀와 눈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

-광주형일자리의 핵심인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출범하면서 지역민의 기대가 높다.

△광주형일자리의 첫 모델이라는 점에서 반갑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지금은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만드는 세상이 아니다.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 화석연료시대가 가고 이제 새로운 동력의 자동차가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량생산 위주의 현재 추세도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를 다품종 소량생산하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지금처럼 자동차 회사가 획일적으로 상품을 만들어 파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고, 밴더나 중소기업이 조립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여기에 대한 준비를 하루 빨리 해야 한다. 지금의 자동차산업은 이제 더 이상 주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얼마 전에는 입시제도를 놓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한국의 교육은 어떻게 가는게 옳은가.

△한국의 교육열은 한국인의 특성이며 장·단점이다. 좁은 나라에 인구가 많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신경을 너무 쓰는 사회가 됐다. 교육별로 온나라 부동산이 좌우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이런 부정적 기운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교육의 목적도 바뀌어야 한다. 광주에서 연구를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는 것이다. 젊고 유능한 대학생의 목표가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있어서는 안된다. 유능한 학생들이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좀더 도전적인 생각을 갖도록 우리 교육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한 기본 자세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은 어떤 경우든 발전하는 속성이 있으며 사람에게 편리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냥 뒤에 쳐질 따름이다. 과학자와 공학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호기심이듯 과학기술의 변화를 따라가려는 일반인들의 호기심과 열정이 새로운 세상을 활짝 열어줄 것이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도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나는 지금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학자로서 평생 열정을 가진 현역으로 살 계획이다. 젊은이보다 항상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살고 싶다. 지금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이룰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여기에 열정을 쏟아야 한다. 내가 1955년생이다. 결코 젊은 나이는 아니다. 선·후배에게 당부하고 싶다. 신체적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정신 만큼은 어느 젊은이 못지 않게 건강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평생 일하고 평생 현역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의료로봇이 일반에게는 생소하다. 이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로봇의 기본 특징은 정밀하고 속도가 빠르고 지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료로봇은 의료기기에 첨단 로봇기술이 부가된 형태다. 특히 우리가 집중하는 마이크로의료로봇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의료기기와 제약의 경계를 넘는 융복합기기다. 의료로봇이 속하는 산업은 크게 봐서 인간의 건강과 복지를 위한 헬스케어산업이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의식주가 해결되면 다음 관심은 건강과 안락한 삶이 된다. 결국 헬스케어산업은 거대한 산업으로 제4차산업혁명시대에 ICT나 자동차시장보다 더 큰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첨단과학의 부작용도 많다. 과학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DNA 조작을 통해 인간의 특성을 바꾸고 로봇에 의해 인간이 지배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당장 최근에도 전투로봇인 드론에 의해 인간이 살상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직은 먼 얘기이지만 냉동기술의 발달에 의한 뇌이식 등도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항상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특성상 모두 언젠가 일어난다는 점은 확실하다. 필요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로봇윤리법을 제정하는 등의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거대한 인간군집체인 지구는 다양한 이해를 가진 인간집단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지구와 인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개개인의 건전한 상식과 윤리의식도 필요하다.

-과학의 목적도 결국 인간이다. 바람직한 과학의 길은 무엇인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산업이 발전과 혁신을 거듭했고 심지어 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까지 사용되고 있다. 더욱이 지금은 그 발전 주기가 더욱 가속되고 있다. 뉴욕타임스 컬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현재를 '가속의 시대'로 명명하고 아이폰이 처음 출시된 2007년을 원년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반복하지만, 과학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발전하며 이는 시장 즉 수요에 의해 가속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수의 수요가 있으면 새로운 제품과 시장이 생기고 이에 맞는 기술은 더욱 빨리 발전한다. 'market pull' 효과가 'technology push'보다 효과가 훨씬 크다고 본다.

-과학이 국력이라고 한다. 과학을 위한 자치단체와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정부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원천기술과 공공기술 영역이며, 응용기술과 상용화기술은 기업의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가급적 해당 자치단체 지역의 과학기술 전문가와 연구기관이 그 기능을 수행하면 좋을 것 같다. 자치단체는 당연히 해당지역을 위한 지역특화기술에 집중하겠지만 국가전략기술에도 투자할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광주시와 전남도의 고민이 깊다. 시급한 정책이나 전략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은 정부에서 특별 지원하는 AI산업 육성에 노력을 해야 한다. 산업은 정부가 아닌 산업계에서 주도해야 가속된다. 그런 점에서 전문인력, 컨텐츠, 금융, 관심기업 등 어려운 지역 인프라 여건에서 우리 모두 고민과 노력과 격려가 필요하다.

여기에 지구적 (global) 특성을 가진 AI를 우리 지역에서는 지역성을 가미한 'glocal'이라는 개념으로 대응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로봇의 두뇌는 AI와 정확히 동일한 개념이었고 비슷한 범주에서 다루다가 이제는 로봇을 벗어난 거대한 산업으로 고속질주하고 있다. 전 지구적 특성에 지방화를 곁들인 glocal의 틀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도약으로 생각한다.

-광주·전남 시도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과학기술자와 관련기관이 먼저 시·도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나 또한 정부사업 확보하고 연구하기 바빠 그 이상 노력하지 못했다. 좀더 다가가도록 노력하겠다. 더불어 시민들도 광주에 세계최고의 첨단 '마이크로의료로봇' 연구소를 정착시키려는 공학자들을 눈여겨 봐주길 당부한다. 글·사진=이용환 기자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