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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희노애락과 이상향을 가락에 담다, 청자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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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희노애락과 이상향을 가락에 담다, 청자 악기

게재 2019-03-12 15:00:48
청자철화모란당초문장고(완도 해저유적 출수; 국립광주박물관)
청자철화모란당초문장고(완도 해저유적 출수; 국립광주박물관)

언어는 주어진 약속에 의해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담지만 음악은 소리와 가락으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남녀노소와 양의 동서를 떠나 누구나 공감하고 감흥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매체는 음악과 무용이다. 특히, 음악은 신체에 의한 발성뿐만 악기라는 도구를 통해 이를 표현하고 심화하여 인간의 이상향을 실현하고 고취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평상심의 유지와 일상의 탈출, 철학적 사유, 기쁨과 즐거움의 고양, 사랑의 달콤함, 아픔의 위로, 죽음의 애도, 분노의 표출, 제례의 권위와 장엄, 종교의 이상향까지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음주가무(飮酒歌舞)라 하여 음악은 술, 무용과 함께 의례를 비롯하여 여흥과 여가에 반드시 등장하는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음악은 감정 표현을 위해 성악과 기악을 결합한 예술로 인간 본연의 다양한 내면의 세계를 소리와 가락으로 구체화하여 정립한 것이다. 화성과 음계의 유기적 조합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생각 등 복잡한 심리를 언어와 문화, 종교, 지역 등을 초월하여 타인의 머리와 마음 속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음악인 것이다. 인간은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인격을 형성하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정신적 통로를 구축하여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은 인류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음악은 모든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자연스러운 예술적 행위로 의례와 소통, 오락 등 다양한 목적에 따라 발전되고 사용되었다. 또한, 민족과 시대, 문화, 종교, 지역 등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 무형문화유산이다.

인간의 미묘하면서 복잡한 감정과 이상을 가락에 담아 이를 풀어내는 악기들 가운데 청자로 만든 것은 현재 장구와 피리, 범종만 확인되고 있다. 이외에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무늬로 표현된 상감청자 병이 있어 고려인의 음악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청자 악기 가운데 가장 많이 확인되는 것은 장고로 전라남도의 대표적 청자 요장인 강진과 해남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요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이들 장고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청과 궁궐 등의 생활유적에서도 출토되고 있으나 사찰과 제사유적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장구가 여흥을 위한 역할뿐만 아니라 신을 위한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장구는 양편의 머리가 크고 그 허리가 가늘다고 하여 요교 또는 세요고라고도 부른다. 장구의 몸통은 대체로 나무를 이용하고 있으나 이외에 자기나 도기도 이용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이 나무에 칠을 입힌 것이며 다음이 자기와 도기의 순서로 품질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고려 청자 장구는 대부분 청자 전성기에 만들고 있어 조형성이 우수하여 특별히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고가 출토되는 유적도 궁성과 관아, 사찰, 제례 등의 위격을 갖춘 곳이 많아 위세품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연주는 몸통의 양쪽에 댄 가죽을 쳐 소리를 내는데, 오른손은 채를 잡고 두드려 '채편'이라 하며 왼손은 손바닥으로 치고 있어 '북편'이라 한다. 북편은 두터운 흰 말가죽을 쓰고 채편은 얇은 보통 말가죽을 사용하여 채편이 북편보다 높고 맑은 소리가 난다. 소리의 높낮이는 조이개(축수)를 움직여 조정한다. 장구는 삼국시대에도 있었으며 현재도 전통 국악의 모든 연주와 가곡, 가사, 시조, 잡가, 민요, 무악, 산조, 농악 등 사용하지 않은 곳이 정도로 중요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악기이다. 청자 장구는 일반적으로 채편과 북편을 연결하는 중앙의 가느다란 조롱목이 현재의 장구보다 좁고 길쭉하며, 양면의 머리는 공명 효과를 고려하여 한쪽이 크고 반대는 좀 더 작게 만들고 있다. 청자 장구는 남아 있는 수량이 많아 무늬가 없는 것을 비롯하여 음각과 상감, 철채, 철화, 흑자 등 다양한 시문 기법이 확인되고 있다. 무늬는 대부분 모란문과 당초문, 국화문 등으로 풀과 꽃을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성형은 채편과 북편을 함께 만든 일체형과 진도 용장성 출토 장고처럼 조롱목을 반으로 나누어 채편과 북편을 각각 따로 만든 분리형이 있다.

청자 피리는 장구에 비해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으며 청자 전성기에 강진과 부안 등 한정된 요장에서 만들고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상감운학국화문피리는 청자 피리 가운데 가장 명품으로 비색의 유약과 간결하면서 유려한 무늬가 매우 선명하게 시문되어 있다. 피리의 위와 아래 부분에는 백상감의 번개무늬를 돌렸으며, 연주를 위한 구멍 둘레는 흑상감으로 원을 돌렸다. 이외는 흑백상감의 국화와 학, 백상감 구름문을 몸통 전체에 시문하여 전성기 청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피리는 3만5천년 전에 독수리 뼈로 만든 것이 독일 남부의 동굴에서 발견되어 인간의 목소리를 제외한 인류 최초의 악기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북한의 함경북도 나선시 굴포리 서포항 유적에서 출토된 역시 뼈로 만든 청동기시대 피리(북한 준국보)가 가장 빠르다. 새의 다리뼈를 잘라 만든 것으로 길쭉한 몸통에 한 줄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1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피리는 고구려에서 발전하여 중국의 수(隨) 문제(文帝)가 궁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일곱 가지의 대표적인 음악을 선택하여 칠부기(七部伎)를 제정할 때 피리가 편성되어 있던 고구려 음악인 고려기(高麗伎)가 포함되어 피리도 상당한 평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때의 피리는 서역에서 수입되었으나 토착화되어 향토 피리라는 의미로 '향피리'라 불렸으며, 고려에서는 중국화된 피리가 유입되어 '당피리'라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선비들의 단아한 풍류에 적합한 음량이 작고 음색이 부드러운 가느다란 '세(細)피리'를 만들어 현재 이들 세 종류의 피리가 사용되고 있다. 피리는 음율의 강약과 높고 낮음을 사람의 목소리처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어 우리 음악에서 필요로 하는 표정 깊은 선율을 만드는데 적합한 악기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청자로 만든 종 역시 명품 청자의 대명사인 강진과 부안 청자요장에서만 소량 확인되고 있으며 유색과 문양, 형태 등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강진 사당리 요장 출토 청자종(이용희 기증품)은 윗부분의 경우 음각당초문을 돌렸으며, 직사각형의 유곽(乳廓) 안에는 연봉형으로 표현한 9개의 종유(鐘乳)를 붙여 성형하였다. 부안 유천리 요장 출토 청자종(김대환 기증품)은 여래상과 종을 치는 나무 막대가 맞닿는 연꽃 문양의 당좌가 표현되어 있다. 종은 시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일반에서도 만들고 있으나 대부분 사찰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고 있다. 또한, 처음에는 악기로 만들었으나 사찰에서 주로 사용하면서 부처를 향한 찬양과 공덕, 자비, 구원, 진리, 깨달음의 의미를 담은 장엄의 소리 법음구(法音具)의 역할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청자 종은 쉽게 깨지기 쉬운 재질이기 때문에 사찰에서 사용하는 일반적 기능인 시간과 의식을 널리 알리는 역할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크기도 작아 실내에서 가볍게 쳐 경전 독경에 음율을 맞추거나 참선하면서 졸음과 방심 등을 쫒는 경계의 방편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중국에서는 훈(塤)과 편경(編磬) 등의 청자 악기가 확인되고 있어 고려에서도 이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어 향후 새로운 청자 악기의 확인도 기대된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표현된 청자는 이제까지 모두 3점이 확인되고 있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 인물문 매병은 야외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소나무와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는 한 마리 학을 바라보는 문인을 표현하고 있어 일상을 초월하여 자연을 관조하는 군자의 풍모를 엿 볼 수 있다. 소나무도 연주에 심취한 듯 나선형으로 표현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하버드박물관 인물문 청자 파편은 병 또는 호로 추정되는 기종으로 일부만 남아 있어 주변을 알 수 없으나 책상 위에 거문고를 놓고 있어 실내에서 밖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인물문 매병은 풀과 꽃, 학을 사이에 두고 비파와 피리 또는 퉁소로 보이는 악기를 연주하는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문인들의 정감 있는 친근한 생활상을 느낄 수 있다. 청자에 표현된 거문고와 비파는 가야금과 함께 우리 민족의 대표적 현악기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고려 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였으며, 이런 바램이 청자 무늬에 반영되어 풍류에 아취의 격을 더했던 것이다. 즉, 선비들의 술병이나 꽃병으로 사용되면서 아름다운 선율을 상상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특히, 거문고는 연주 기능 이외에도 마음을 수양하는 군자의 악기이자 천상(天上)의 악기로 가장 많이 애용되었으며, 다양한 기록과 그림 등에서 확인되고 있어 그 상징적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학과 소나무가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불로장생과 함께 곧고 굳은 고고한 기상을 지닌 이상적인 군자를 상징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 깊다 하겠다.

한편, 조선 후기에 만든 백자 연적은 악기는 아니지만 생황(笙簧)의 모습을 매우 잘 표현한 명품이다. 대나무에는 산화동(酸化銅)을 발랐으며 몸통에는 청화(靑華)를 칠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생황을 연주하기 위해 입술이 닺는 부분을 연적의 주둥이로 표현하는 등 사실적인 모습을 지닌 조선시대 상형(象形) 연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이다. 생황은 삼국시대부터 연주되었으며 국악기 가운데 유일한 화음 악기이다.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대나무 관이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서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대지에 만물이 돋아나는 모양을 하고 있어 살아있는 대나무 악기(笙)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거문고처럼 보편적이지 않았으나 문인들의 풍류에 애호되는 악기 가운데 하나였다.

청자는 재질이 갖는 특성으로 소중하게 다루어야하는 민감성 때문에 악기로 많이 제작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청자 전성기에 정성을 들여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전성기에 제작된 아름답고 우아한 청자가 다양한 용도에서 고려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에 기여하였음을 청자 악기와 청자에 표현된 악기의 연주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봄은 점차 바람을 타고 너울을 넘어 우리 곁으로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아지랑이처럼 대지를 박차고 피어오르는 이 봄을 찬양하라! 피리 불며 장구치고 소리 높여 노래하라!"

도기요고(진도 명량대첩로 해저유적 출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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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장고(나주목 관아지 출토; 영해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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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철채당초문장고(진도 용장성 출토; 목포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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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운학국화문피리(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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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음각당초문종(강진 사당리 청자 요장 출토; 고려청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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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청자요장 출토 청자양각여래문종-부안청자박물관
-부안 유천리 청자요장 출토 청자양각여래문종-부안청자박물관
청자상감인물문매병-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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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청자요장 출토 청자상감인물문매병-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부안 유천리 청자요장 출토 청자상감인물문매병-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청자상감인물문병-미국 하버드박물관
청자상감인물문병-미국 하버드박물관
백자생황형연적-국립중앙박물관
백자생황형연적-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