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차퍼, '막심'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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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러시안 차퍼, '막심'을 만나다
  • 입력 : 2019. 02.14(목) 11:20
  • 편집에디터

러시아 국가비상사태부에서 주관하는 소방공무 관련 실기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블라고베셴스크의 운동장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이틀째

다음날 슬라바, 올랴와 함께 세르게이의 차에 탑승했다. 목적지는 이 도시의 스타디움이었다. 오늘 이곳에서 이 지역의 엠취에스(МЧС- 국가비상사태부 소속 소방공무원)가 주관하는 실기시험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운동장에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이런 저런 난이도가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하면서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슬라바는 이곳에서 자신의 직장과 관련해서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돌아다녔다. 나는 두 시간 정도를 운동장의 객석에 앉아서 구경하면서 휴식하는 시간을 보냈다. 전날, 하루 동안 782km를 달렸다. 한 밤 중까지 이루어진 주행으로 모터바이크의 진동이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마디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잠도 좀 부족해서 따뜻한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자체가 좋았다. 갈증에 좋은 크바스(호밀로 만든 발효 음료) 한통을 사들고 시내 중심가로 나왔다. 올랴의 작은 아버지, 세르게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펼쳐진 500m 넓이의 아무르(흑룡)강 건너편은 중국이다. 인구 이십만 명이 약간 넘는 이 도시가 아무르주의 주도이다. 제야강과 아무르강이 만나는 지점에 바둑판 형태로 도시가 들어서 있다. 가금씩 눈에 들어오는 중국식 옛 건물들은 이 도시가 한 때 중국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올랴의 작은 아버지는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슬라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느낌이다. 슬라바가 우리를 스타디움으로 인도한 이유가 자신의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세르게이에게 믿음을 심어주려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짐을 들고 나온 우리를 세르게이가 자신의 차에 태우고 호텔 지하에 있던 유료주차장에 데려다 주었다. 시동을 걸었다. 슬라바 초이의 바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중저음과 나의 바이크에서 나오는 경쾌한 소리가 지하주차장의 벽을 타고 돌아다니다 기분 좋게 귓속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모터바이크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서로 포옹과 악수로 세르게이와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머리에 고프로를 착용했다. 모터바이크 축제가 열리고 있는 제야 강변까지 달려가는 영상을 촬영해보기 위해서이다. 전원을 켰다. 캄차카를 상징하는 주기가 슬라바의 모터바이크에 매달린 채로 바람을 타고 흔들린다. 깃발에는 태양 안에서 한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화산이 그려져 있다. 어젯밤에 달려 들어왔던 다리를 다시 건너자 제야강변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길이 오른편으로 이어진다. 모래 밭 길에 들어서서 조금 더 달리자 상체를 맨몸으로 노출시킨 남자들이 임시로 설치된 키오스크(간이매점) 앞에 모여 있다. 이곳이 축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입장료를 지불하자 파란색 띠가 나의 손목에도 채워졌다. 바이크를 타고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자 공터가 나타났고 나는 안내받은 자리에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하바롭스크의 축제장에서 부른 노래로 인해 780여km 떨어진 이곳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먼저 자신을 '라쿤'으로만 불러달라는 '이고르'가 찾아왔다. 다음으로 블라고베셴스크에 살고있는 바이커 니콜라이가 자신의 부인과 함께 찾아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과는 하바롭스크에서의 바이크축제가 끝난 뒤, 클럽 '아무르의 시라소니'에서 2박 3일 동안 함께 지냈었다. 신혼부부와 같은 슬라바와 올랴는 둘만의 시간에 집중했다. 블라고베셴스크의 축제장에서 나는 주로 라쿤과 어울렸다. 자신의 몸을 상당히 잘 가꾸어 놓은 라쿤, 인상도 좋은 이 젊은이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자신이 바이크 축제에 참가하는 이유는 오로지 섹스를 위해서 라는 거다. 그는 특히 바이크를 타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특별한 직업은 없으며 금속 탐지기를 사용해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변에서 주은 귀금속들이 자신의 여름 여행 경비가 된다고 말한다. 이런 행사에 익숙한 듯이 틈이 날 때마다 어디선가 먹을 것을 구입해 와서 내게 반절씩 나누어 주곤 했다. 서양음악이 주를 이루는 로커들의 노래가 끝나면 힘겨루기나 야한 게임으로 이루어진 경연대회가 시작되고 각 지역별 클럽 모임이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진다. 모스크바나 유럽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베리아나 극동은 거친 곳이다. 같은 바이커여도 이곳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으며 서로간의 공동체 의식도 높다. 한편 이로인해 싸움이 일어날 확률도 많다. 2박3일 동안 나는 이곳 축제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도록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삼일째,

다음 날 출발을 위해 오후부터는 혼자서 시간을 가졌다. 축제장 외곽 길을 따라 걷다가 나의 텐트가 세워져 있는 부근에서 '막심'과 '나탈랴'를 만났다. 그들의 텐트도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의 모터바이크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바이크는 '아프리카 트윈', 혼다에서 만들어졌다. 나와 같이 포장과 비포장의 환경을 모두 감당할 수 있는 듀얼퍼포먼스 기종이며 배기량은 700cc이다. 아프리카 트윈은 다카르랠리에서 수차례 우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모터바이크이다. 하지만 이 바이크는 2003년 단종 되었다. 막심은 500달러의 비용을 들여 중고가격으로 아프리카 트윈을 구입했다. 그리고 1,000달러의 비용을 들여 1년에 걸쳐 천천히 고쳤다. 그는 자동차 정비사이며 블라디보스토크에 살고 있다. 2014년의 여름, 그의 연인 나탈랴와 함께 중앙아시아까지 달려보려는 여행 계획을 가지고 이곳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륙횡단에 적합하도록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개조했다. 나탈랴를 뒷자리에 태우기 때문에 짐을 사등분해서 앞바퀴와 뒷바퀴 쪽으로 분산시켰다. 물론 운전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 각도를 찾아냈다. 그는 대륙을 횡단하기 위해 준비된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오픈했다. 특히, 연료가 다 소비될 때까지 모터바이크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치가 인상적이다. 바이크가 달리는 중에 윤활류가 체인과 기어에 떨어지도록 해서 서로의 마찰을 줄여 주도록 해놓았다. 특허를 내도 좋겠다고 칭찬해 주었다. 11개의 시차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달리는데 적합하도록 자신의 모터바이크를 개조해 놓은 그를 나는 '러시안 차퍼(Chopper)'라 불렀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다음 날, 출발을 나와 함께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무척 경치가 좋은 야영장소를 알고 있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술과 음악과 이벤트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연인과 차를 마시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신뢰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곧바로 좋다고 말했다.

블라고베셴스크에서 넷째 날

오전10시 30분, 다시 출발할 시간이 왔다. 짐을 구분해서 분산하지 않고 뒤쪽의 한곳에만 쌓아 올려놓는 방식은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 역시 짐을 꾸리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앞쪽에도 작지 않은 배낭을 올려놓았지만 이곳은 밧줄이 문제이다. 진동과 충격에 약한 디지털 기록 장비들이 들어가 있어서 배낭을 꽉 조일 수가 없다. 달리다보면 밧줄은 헐렁해져 있고 배낭은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경우가 많다. 1,600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나 혼자서는 이동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구간 구간의 길에 대한 자료를 만들고 중소 도시를 하나씩 선택해서 베이스캠프를 세우고 각 각의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대륙을 횡단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구입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고무줄만은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분산하거나 혹은 집중해서 한곳에 쌓아올리거나 어떤 경우에도 짐을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서는 고무줄이 가장 적합하다. 11시 축제장 입구에서 나탈랴와 막심의 모터바이크와 만났다. 막심은 자신의 바이크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탈랴에게 넓적한 돌을 전달 받아서 바닥이 무른 모래 위에 던져놓고 그 위에 바이크의 지지대를 세웠다. 오전11시, 바이크에 시동이 다시 걸렸다. 앞서서 달리는 막심의 바이크가 P461을 벗어나 블라고베셴스크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이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야강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긴 다리를 지나야 한다. 물론 러시아에서 적당한 규모의 다리나 마을 입구에는 검문소가 있다. 경찰이 들고 있는 짧은 지시봉이 정확히 나를 향해 까딱거렸다. 1996년에 모터사이클로 이루어진 러시아 횡단 중의 좋지 않은 추억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즉시 모터바이크를 멈추었다. 여권과 서류들을 어디에 넣어두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경찰이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바이크로부터 고정되어 있던 짐들이 풀리고 경찰의 주문에 따라 건네진 나의 여권이 곧바로 그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렇게 되면 그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그 순간 뒤쪽으로부터 달려오던 바이커들이 멈추었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의외로 막심은 제자리를 지킨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경찰은 나의 여권을 다시 꺼냈으며 운전면허증과 바이크 관련 서류를 다시 요구했다. 서류들에 대한 확인이 끝나자 국제운전면허증에서 다시 제동이 걸렸다. 나는 그에게 러시아 말로 면허증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국제운전면허증

1996년부터 반복적으로 이루어진 나의 유라시아대륙횡단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의 일상에서 사용되는 운송수단으로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을 당장 지금 경험할 수 있는 자료를 구축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2014년부터 한국과 러시아는 양국을 오고가는데 비자가 필요 없게 되었다. 물론 국제운전면허증도 서로 인정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국제운전면허증에는 러시아어가 없다.

"에따 러시아(여기는 러시아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들어있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을 한다. 이 경우에도 '에따 러시아'라고 말한다. 당연히 영어를 모르는 러시아의 많은 경찰관들에게 러시아어를 모르는 한국의 여행자들은 운전면허증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인구45억의 거대 시장이자 자원의 보고로서 유라시아 대륙은 지구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유라시아대륙이 시작하는 곳이다. 현재로 다가온 우리의 미래이다. 유라시아대륙은 남과 북의 분단으로 인해 고립된 섬 안에서 이루어져왔던 제한된 선택의 범위의 확장을 의미한다. 2010년에는 러시아 횡단도로의 완성되었다. 유라시아대륙을 모터바이크로 횡단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100명이 넘는다. 캠핑카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사용하는 운송수단을 이용해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을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자들은 계속 많아질 것이다. 정부의 유라시아 시대라는 구호는 아직도 우리에게는 '꿈'이다. 국제운전면허증 안에 러시아어 한 페이지 넣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거창한 구호보다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것으로부터 유라시아대륙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시장이 대륙에 넓고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섬세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블라고베셴스크 시내에서 캄차카 주의 깃발을 들고 있는 슬라바 초이와 올랴

블라고베셴스크를 감싸고 있는 제야강변에서 열리는 모터바이크 축제장에서 만나는 바이커들

'라쿤'이라고 불러 달라는 이 젊은이는 금속 탐지기를 사용해서 자신의 여름 여행을 위한 비용을 만든다

블라고베셰스크의 모터바이크 축제에서 만난 사람들. 다양한 직업군의 소시민들이다

러시아인 차퍼, 막심과 그의 연인 나탈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땅을 달리는데 적합하도록 자신의 바이크를 개조했다

막심과 함께 블라고베셴스크를 떠나는 날

바닥이 무른 모래 위에 자갈을 놓고 바이크의 지지대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