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롭스크에서 블라고베셴스크까지 78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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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하바롭스크에서 블라고베셴스크까지 782km
연재11.
  • 입력 : 2019. 01.31(목) 12:59
  • 편집에디터

하바롭스크로부터 487km(오블루치예로부터 127km),

'노보부레이스키' 도로 한편에 넓은 공터가 있고 이곳에 러시아횡단도로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러시아횡단도로는 2010년에 완공되었다. 당시 총리 신분이던 푸틴이 자국민차인 '라다' suv차량으로 '하바롭스크'에서 '치타'까지 2,200km 구간을 횡단한 뒤,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에 대해 발표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1만여km의 전체구간 중 하바롭스크에서 치타에 이르는 구간, 특히 '스코보로디노'에서 '체르니쉡스크' 사이의 700km가 가장 열악한 구간이었다. 러시아의 도로를 사망도로라고 부른다. 한겨울의 추위와 강물이 범람하기 쉬운 저지대 습지환경의 시베리아의 열악함을 도로가 온전히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한겨울과 한여름의 기온 차이는 70도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어는 과정을 몇 번 거치다보면 도로는 부서지기 시작한다. 이곳저곳에 만들어지는 포트 홀들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자동차 사고가 무척 많이 발생한다.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조형물들을 러시아의 도로 위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이자 자원의 보고로서 기회를 가진 이 땅에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길을 만든다. 러시아는 시장의 흐름을 지켜보았고 2010년, 러시아를 가로지르는 러시아횡단도로를 완성시켰다.

물론 이것은 포장도로의 완성을 의미하지 않았다. 2010년의 이 발표이후 포장도로를 목표로 2019년 현재까지 계속해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길을 따라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에 도전하는 자동차물류회사가 등장했으며 자동차의 이동량이 많아짐에 따라 주유소와 휴게소와 숙박시설 및 정비소등의 복합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가진 다국적 제품들이 이 길을 따라 물류를 장악해가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다디단 과일과 중국에서 만들어진 생필품들 역시 이 길을 따라 북극의 오지까지 진출하고 있다. 유라시아라는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에서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들이다. 우리도 도전해볼 수 있는 따끈따끈한 아이템들이 이 길 위에 있다. 유럽도로와 한국의 아시안 하이웨이6호선을 연결하는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유라시아대륙이 하나의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른 러시아여성들처럼 포즈를 잘 취하는 '올랴'와 '슬라바'와 함께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다시 모터바이크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속도를 140km까지 높인 채로 40분 정도를 달리면서 모터바이크의 흔들림 등을 체크해보았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 바이크의 속력을 줄였다. 이때 대형화물트럭이 바이크를 추월하면서 바이크가 순간적으로 기우뚱 거렸고 나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차량은 달리면서 바람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트럭과 나란히 달리는 것은 위험하다.

하바롭스크로부터581Km(오블루치예로부터 221km),

'예카테리노슬라브카'를 향해 러시아횡단도로인 P297도로에서 벗어나 P465번 도로로 들어섰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을 가진 휴게소 앞에서 우리는 멈추었다. 물만 사오겠다는 슬라바를 이끌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 연인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슬라바는 '캄차카'에서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МЧС'이다. 엠취에스는 국가비상사태부에 소속되어 있는 일종의 소방공무원이다. 11개의 시차를 가진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이들이 하는 일은 그야말로 광범위하고 많다. 그들의 헌신성은 러시아국민들에게 무척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오지 근무를 하게 되면 혜택이 주어진다며 슬라바는 캄차카가 자신의 연고지가 된 이유를 말해주었다. 올랴는 하바롭스크에서 살고 있으며 경제학인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자그마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 둘 사이를 연인으로 이어준 된 것은 SNS이다. 식사 중에 이들이 결혼식을 대신해 여행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라바는 자신의 바이크를 배 위에 싣고 캄차카를 출발했다. 올랴와 함께 러시아 각 지역의 모터바이크 축제에 참가하면서 바이칼호수까지 달려보는 것을 그들의 목표로 잡았다. '블라고베셴스크'에는 올랴의 작은 아버지가 살고 있다. 이 도시를 찾아가는 이유는 바이크 축제에 참가하는 것 외에도 유일한 친척에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함께하는 한 끼의 식사가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P465 도로는 국도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열악한 지방도로의 환경이다. 러시아 횡단도로를 벗어나는 순간 러시아의 도로는 대부분이 비포장도로의 환경으로 바뀐다. P465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의 이곳저곳에 구멍들이 만들어져 있다. 도로가 엿가락처럼 휘어 있기도 하다. 도로의 포장을 위해 도로 위를 빨래판처럼 긁어 놓은 곳을 달릴 때에는 바이크가 기우뚱거려 상당히 긴장하게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는 타이어의 공기압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한참을 달린 후에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 길 위에서 멈추어 섰다. 나는 슬라바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는 네비게이션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잠시 뒤, 뒤로부터 달려오던 두 대의 모터바이크가 멈추었다. 목적지로 연결된 길을 서로 맞추어보고서 그들이 먼저 출발했다. 슬라바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우리는 다시 달리게 되었다. 서쪽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를 석양이 막아서기 시작했다. 눈이 부셔서 모터바이크가 달려 나가는 앞쪽으로 펼쳐진 도로의 환경이 어떤가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만약 '포트 홀'을 만난다면 큰일이다. 앞서 달리는 슬라바는 속력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100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우리는 달리고 있다. 삼십분이 지나자 우리는 다시 멈추었다. 슬라바의 친구로 보이는 이가 먼저 와 있었다. 그도 바이커이지만 이번 축제에는 자동차를 타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슬라바가 가르키는 손끝을 따라 시선이 옮겨졌다. 그 순간 나의 입에서 '와!'라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엄청난 규모의 노천광산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지구의 중심부를 향해 파고 들어가고 있다는 듯이 원추형태의 깊은 구멍이 저 밑으로부터 눈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이아몬드같이 선명하고 붉은 석양빛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자 어둠이 대지 위를 덮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언덕마저도 없는 평원이다. 사람이 사는 흔적이 없는 길 주변의 풍경은 너무나 어두웠다. 더군다나 길 위의 폭탄, 포트 홀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모터바이크에서 나오는 조명에만 의지하기에 길은 너무 어두웠다. 슬라바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마구 달려대고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우리가 달리는 속도는 시속 100킬로미터였다. 나는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모터바이크의 불빛에 의해 앞으로부터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포트 홀을 확인할 때면 마치 큰 사고를 모면한 것 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계속 달릴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불빛은 이 거대한 평원 그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달리는 모터바이크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뿐 이었다. 다시는 야간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나는 신을 향해 맹세를 반복했다. 도로 위에 집중이 되어 있는 눈은 바람에 의해 충혈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도로에 적응하기 시작한 나의 눈동자가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쏠렸다. 별빛을 받은 은색의 거대한 호수가 달리는 모터바이크 옆에서 환상적인 지구의 야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탐보브카' 교차로에서 P461번 도로를 선택하고 다시 어두운 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바롭스크에서 782km (예카테리노슬라브카에서 156Km),

'블라고베셴스크'에 도착했다. 밤 12시. 시내 중심가의 호텔 앞에서 올랴의 작은 아버지와 만났다. 나의 숙소를 잡아주기 위해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섰지만 가격표를 보고 우리는 밖으로 다시 나왔다. 이 시간에 이 도시에서 저렴한 숙소들이 문을 열고 있을 확률은 없었다. 올랴의 작은 아버지, '세르게이'는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먼저 호텔 지하에 있는 유료주차장에 두 대의 모터바이크를 넣었다. 필요한 배낭만을 짊어졌다. 세르게이의 집 거실에 짐을 풀었다. 내가 먼저 샤워를 마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슬라바와 올랴도 차례대로 들어왔다. 세르게이가 준비해놓은 것은 간단한 음식과 녹차였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인지 부엌과 음식에서도 중국 느낌이 묻어났다. 식사 후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두 개의 소파가 변형되어 각 각의 침대가 되었으며 슬라바와 나는 그 위에 몸을 눕혔다. 다음 날 몸살이 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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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광주,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암스테르담에 이르는 '유라시아대륙횡단도로'가 하나의 길로 이어 되었다.

캄차카에서 온 슬라바 초이와 그의 연인, 올랴

러시아횡단도로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나는 P465 도로 위에서 슬라바가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잠시 뒤, 뒤로부터 달려오던 두 대의 모터바이크가 멈추었다.

P465도로 위에서 만나는 풍경. 지구의 중심을 향해 파들어 간 노천 광산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하바롭스크에서 블라고베셴스크까지 782km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