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6, 트랜스 유라시아 2014❳=대륙의 길 위에서 만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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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국의 유라시아 탐험기
❲AH6, 트랜스 유라시아 2014❳=대륙의 길 위에서 만나는 것들
  • 입력 : 2019. 01.17(목) 13:32
  • 편집에디터

김현국의 ❲AH6, 트랜스 유라시아 2014❳

'부두칸'강이라는 표지판을 지나치자마자 모터바이크를 세웠다. 강렬한 햇볕과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서이다

하바롭스크 출발

짐을 바이크 위에 싣고 고정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떤 내용물이 어디에 있는지 한 눈에 알아봐야 하면서도 각 각의 물건들을 꺼내기 쉽고 한편으로는 짐들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것에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이슬비가 내리는 환경에서 클럽 밖으로 나와 도로 위로 들어섰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바이크가 지나가는 길 위의 곳곳에서 고인 물이 튀어 오른다.

숙소에서 6km정도의 거리에 있는 아무르대교가 하바롭스크를 빠져나가는 길목이다. 이 도시 밖으로 나가는 길에 대한 지도는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태평양 국립 대학교 앞을 지나는 지름길을 선택했지만 교차로에서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비로비잔'으로 가는 길에 대해 물어본 뒤 P297도로로 확실하게 들어섰다. P297(혹은 M58 혹은 AH30)은 하바롭스크에서 치타까지 2,200여km 구간의 도로 이름이다. (러시아에서 P는 국도를 의미하고 M은 모스크바를 의미한다. AH은 아시안 하이웨이이다. AH30은 우수리스크에서 치타까지의 도로 이름이다)

잠시 뒤, 아무르대교와 만났다. 모터바이크를 멈추고 핼멧 위에 설치된 고프로에 전원을 넣었다. 3.6Km의 길고 긴 다리를 영상에 담으면서 달리다가 강 쪽으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두 눈만으로는 담기 힘든 대자연이 다가온다. 존재가 감당하기에는 두려움마저 느껴지게 만드는 거대한 강이 신에 대한 경외감을 갖도록 만든다. 아무르대교는 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 아래로 열차가 달릴 수 있는 철도가 놓여 있는 복합교이다. 하바롭스크를 거쳐 극동으로 들어가거나 반대로 모스크바로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한 이 다리의 중요성은 이곳에선 말로 다 할 수 없다. 다리의 입구에서 부터 검문소가 있으며 다리 곳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자그마한 초소가 서있고 경비하는 사람들이 다리를 지키고 있다. 다리가 파괴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강 밑으로 터널을 파서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놓았다.

다리를 넘어서자 하바롭스크 지방이 동북쪽으로 물러서고 유대인자치주가 시작된다. 잔뜩 찌푸린 회색빛 하늘이 눈앞으로 가까워오자 모터바이크의 속도를 줄였다. '또 비다!' 바이크를 멈추고 길가의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머물렀던 도시와 방금 지나 온 거대한 강에 대한 여운을 이곳에서 잠시 정리하고 싶었다. 귀여운 인상의 젊은 아가씨가 가게 안을 지키고 있다. 7월인데도 높은 위도에서 비가 오는 날씨여서 추웠다. 홍차 티백을 구입한 뒤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달라고 했다. 송창식의 노래, '담배 가게 아가씨'를 떠오르게 만드는 아가씨에게 몇 마디 말을 걸어보았다. 방학 때라 부모님 가게에 와서 도와주고 있는 중이라고 답을 하면서도 약간 수줍어하는 모습에 더 정이 간다. 바이크 주변을 서성이는 동네아이들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집어 보라고 했다. 아가씨의 눈치를 보며 서 있는 그들의 손에 초코바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비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출발했다. 평지 위에 놓인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자 '비로비잔'이라는 표지판이 눈앞으로 들어온다.

하바롭스크로부터 180km, 비로비잔

유대인 자치주의 주도이다. 1934년, 당시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러시아에 유대인자치주가 세워졌을 때 유대인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이 살기 힘든 습지였고 혹독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을 떠났다.

1995년, 아무르 강에서 수영하다 익사할 뻔 한 나를 구해주었던 유대인 '비딸리'의 고향이기도하다.

'비로비잔'으로 부터 70km,

'부두칸'강이라는 표지판을 지나치자마자 모터바이크를 세웠다. 강렬한 햇볕과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서이다. 빛바랜 나무집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비옷을 벗기 위해 바이크를 멈추자마자 뒤로부터 달려오던 바이크 두 대가 차례로 속력을 줄이며 내게 '이곳에서 뭐하니'라고 묻는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도움을 주겠다라는 의미가 이들의 말 속에 내포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어서 나는 '뭐, 그냥..,?'이라고만 대답해 주었다. 무리를 지어 함께 달리자는 그들에게 먼저가라고 하고 사진을 찍고 나도 출발했다. 빛의 속도로 달려대는 러시아 바이커들에 비하면 아직 나는 거북이 달음질 정도의 속도이다. 러시아의 바이커들과 함께 라이딩을 하면 이동거리는 저절로 늘어난다. 러시아에서는 함께 달리면 멀리 갈 뿐 만 아니라 빨라지기도 한다. 끝이 없는 러시아의 길을 처음부터 여행자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대륙의 길을 달리는 법을 배우고 이 길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축적해가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자신의 바이크의 속도를 줄이면 된다. 천천히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고 있으면 빛의 속도로 달려대는 러시아의 바이커들과 반드시 만나게 된다. 인종과 종교와 국적에 관계없이 형제라고 부르는 그들은 결코 여행자를 길 위에 혼자 내버려 두고 가려 하지 않는다.

'하바롭스크'로 부터 280km,

'따뜻한 호수'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이 길 건너편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온천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길을 달려 나가다가 한적한 길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노점을 하고 있는 나이 드신 분을 만나게 되었다. 햇볕을 가득 담고 있는 산과 숲이 주는 느낌이 좋은 이 지역에서 채취된 꿀과 잣을 조금씩 구입했다. 워낙 큰 땅이라서 노점에서 팔고 있는 물건들이 각 지역별로 달라진다.

하바롭스크로부터 360km

주유소 간판을 보고 모터바이크의 속도를 줄였다. 근처에 '오블루치예'라는 마을이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도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유대인자치주가 끝나고 아무르주가 시작되는 경계 부근이다

2010년 이후, 하바롭스크에서 치타 사이의 도로 환경이 좋아졌지만 이 전의 정보를 가진 여행자들은 이 구간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구간에서 이삼백 킬로미터 거리 내에 주유소가 없다는 예전의 소문은 여행자들로 하여금 무게와 큰 부피를 차지하는 예비연료통을 준비하게 하고 이로 인해 바이크 위의 짐은 더 많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이렇게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구간에서는 주유소가 눈에 보이는 대로 무조건 기름을 꽉 채울 것 '이 그것이다. 좋은 방법이지만 2019년 현재 러시아를 횡단하려는 여행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2010년, 러시아횡단도로의 완성으로 자동차들의 이동 량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을 위한 휴게시설과 주유소와 정비시설들이 이 구간에도 마구 들어서고 있다.

두꺼운 쇠창살 안에서 잔돈을 거슬러 주던 아가씨가 내게 목적지를 묻는다. 암스테르담까지 갔다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건강하게 여행 잘 하라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오는 길에 이곳을 다시 지나가게 되면 꼭 자신을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도 남긴다.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핼멧을 쓰려는데 두툼한 배기음을 가진 바이크 한 대가 주유소로 들어온다. 당연히 눈인사만으로 그냥 갈 수는 없다. '여기는 러시아니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편 바이커는 이미 바이크에서 내렸고 뒤에 타고 있는 여성과 함께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서로의 이름을 주고받으면서 악수로 인사를 마치자마자 '슬라바'의 연인, '올랴'도 자신의 이름을 내게 내밀었다. 하바롭스크의 축제에서 나를 봤다라는 말과 함께 이루어진 그녀와의 인사는 더 적극적이 되어 가벼운 포옹까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들과의 인사는 무엇인가 더 특별했다. 이유가 '올랴'에 의해 밝혀졌다. '슬라바'의 아버지가 최씨 성을 가진 한국인(북한이 고향)이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다시 인사를 나누었고 반갑게 서로 포옹했다. 이들은 곧바로 내게 함께하는 라이딩을 제의했다. 목적지는 '블라고베셴스크'이다. 그곳에서 바이크축제가 열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는 이미 하바롭스크의 바이크 축제를 경험하고 자료화했기 때문에 이 도시를 방문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스코보로디노'를 목표로 북상해야 하는 상태에서 나에게 서쪽에 위치한 '블라고베셴스크'라는 도시는 계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슬라바 초이'가 나와 같은 피를 가진 형제라는 것을 안 이상 함께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순위라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였다. '슬라바'가 주유하고 있는 동안 체인과 기어 사이의 마찰이 줄여지도록 체인 스프레이를 뿌려 놓고 달리는 동안 바이크 위의 짐이 흔들리지 않도록 줄을 더 조였다.

오블루치예 주유소로부터 3.7km,

출발한지 오 분 만에 유대인자치주를 뒤로하고 아무르주에 들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주유소로부터 33km의 휴게소에서 멈추었다. 슬라바의 바이크에 문제가 생겼다. 슬라바는 바로 자가정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햇살은 강렬하고 기온은 높지만 습기가 적어 땀이 나지 않는 상쾌한 날씨였다. 대형차를 모는 운전사들이 선호하는 곳인 듯 덤프트럭들이 이곳저곳에 멈추어져 있었다. 파자마를 입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화 '스내치'의 집시마을, 남자들에게서 보여 지던 거칠고 시골스러운 느낌이 이들에게서도 묻어나왔다. 이들로부터 나오는 질문의 대부분은 바이크의 배기량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입을 통해 바이크 배기량의 크기가 그들에게 전달된 뒤, 나의 바이크에 대한 그들의 토론이 계속되었다. 바이크의 배기량에 비해 엔진이 무척 조그마한 것 같다는 결론이 내 귀에 들어왔으며 이것은 나의 바이크에 대한 이들의 호감도가 매우 높다는 라는 것을 의미했다. 슬라바의 바이크가 정비되자 우리는 다시 환하게 뚫린 P297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백 킬로미터를 달려 부레야 강을 건넜다.

러시아의 바이커들은 결코 여행자를 길 위에 혼자 내버려 두고 가려 하지 않는다

잣과 꿀 그리고 이 지역의 산과 숲에서 나는 약초들이 있다.

시베리아의 한적한 길가에 자리를 잡고 노점을 하고 있는 노인

한국인과 러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난 러시아인 슬라바 초이와의 만남. 러시아 비상 사태부 소속의 소방공무원인 그는 캄차트카에 살고 있다.

파자마를 입은 남자들- 아무르 주에 들어서자마자 슬라바 초이의 모터바이크가 멈추어 섰다

자신의 바이크를 수리하는 슬라바 초이와 그의 연인 올랴

하바롭스크에서 노보부레이스키까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