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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항 동상. 내산서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 성회를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자는 것이오, 이 횃불과 같은 열기를 우리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며, 꺼지지 않는 횃불과 같이 우리 민족의 열정을 온 누리에 밝히자는 뜻입니다. 우리 광주시민 아니, 전라남도 도민 아니, 우리나라 대한민국 모든 민족이 온누리에 횃불을 밝히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1980년 5월 16일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 때, 박관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연설이다. 말 그대로 열변을 토한 사자후였다. 광주시민의 심금을 울린 그는 이 집회를 이끌면서 '광주의 아들'로 거듭났다. 박관현동상. 그의 태 자리에서 가까운 불갑테마공원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박관현(1953∼1982)은 영광군 불갑면 쌍...
편집에디터2022.09.22 16:33법화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장성에선 인물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벌교에 가면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말이다. 나름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다가 넓은 여수는 고기잡이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다. 장성은 학덕 높은 하서 김인후와 고봉 기대승, 노사 기정진의 영향이 크다.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벌교는 주먹과 무슨 상관이 있지? '벌교 주먹'에는 왠지 좋지 않은 이미지가 앞선다. 벌교에 폭력을 쓰며 행패를 부리는 깡패가 많았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말이나 행동이 거친 왈패가 많았을까? 궁금증이 에서 풀린다. 일제강점기 의병들의 투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벌교주민(한만호, 손공현)의 구술이었다. '장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일본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
편집에디터2022.09.01 16:29탑동마을 전경. 영랑생가 뒤편 세계모란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이 새끼, 저 새끼, 내부총질 등 비속어가 일상으로 들려온다. 정제되지 않은 저급한 언어들이 정치권에서 난무한다. 말의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옛말에 '벼슬이 높은 1품은 아홉 번 생각한 다음 한마디 말을 하고, 9품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인들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 이상의 말을 뱉어내고 행동하는 것만 같다. 우리말을 잘 다듬어 쓴 '언어의 정원사'를 만나러 간다. 언어의 정원사는 내면의 서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영랑 김윤식(1903∼1950)을 가리킨다. 목적지는 '남도답사 일번지' 전라남도 강진이다. 강진은 김종률․정권수․박미희 트리오가 부른 '영랑과 강진'의 노랫말처럼, 영랑의 글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곳이다. 감성길로 단장된 탑동마을의 골목길...
편집에디터2022.08.18 15:46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어우러지는 만연사. 사철 아름다운 절집이다. 이돈삼 대웅전 앞의 당간지주 사이로 본 절집 풍경. 진분홍 배롱나무 꽃과 요사채가 어우러진다 . 이돈삼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걷는다.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호숫가에 설치된 운동기구와 한몸이 되기도 한다. 데이트를 하는 젊은 연인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여름 한낮도 싱그럽다. 녹음이 우거져 괜찮다. 봄날엔 벚꽃과 철쭉꽃으로 화사했던 길이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버무려진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멋스럽다. 밤에는 별천지를 이룬다. 사방이 어두워지면 호수에서 보름달이 떠오른다. 달 속에선 토끼 두 마리가 절구방아를 찧는다. 수변도 황홀경을 선사한다. 화순 동구리 호수공원 이야기다. 평범하던 저수지가 공원으로 변신한 것은 지난 2013년부터다. 화순군이 연못분수와 ...
편집에디터2022.08.04 15:22방풍림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 마을 어머니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이돈삼 여러 해 전, 해남 땅끝으로 가는 길이었다. 황량한 들녘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고목이 줄지어 있었다. 한눈에, 방풍림임을 직감했다. 줄지어 선 버드나무와 팽나무의 나이도 지긋해 보였다. 밑동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났다. 해남윤씨의 옛집과 어우러져서 더 아름다웠다. 윤철하 고택의 안채와 별당채.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별당채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이돈삼 백방산(198m)과 사이산(162m)이 에워싸고 있는 해남군 현산면 초호리다. 그 마을을 다시 찾았다. 계절을 달리해서, 초록이 짙어가는 여름날이다.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을 듯한 날씨다. 저만치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하늘은 희끄무레했지만, 방풍림은 여전히 늠름하다. 버드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의 이파리도 무성하다. 흡사...
편집에디터2022.07.21 15:38섬의 산정에서 만난 꽃밭. 배경 무대로 섬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산과 들에 여름꽃이 흐드러졌다. 여름꽃으로 별천지를 이루고 있는 섬으로 간다. 호젓한 섬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섬 자체가 정원이고 꽃밭인 '쑥섬'이다. 전라남도의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돼 있다. 쑥섬은 고흥반도의 끝자락,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딸려 있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에 속한다. 외나로도항에서 배를 타면 5분 만에 데려다주는, 섬 속의 섬이다. 섬의 면적이 32만6000㎡, 해안선의 길이 3㎞ 남짓의 작은 섬이다. 인구는 주민등록상 30여 명이 산다. 오래 전 섬에 쑥이 지천이었다고, 한자로 쑥애(艾) 자를 써서 애도(艾島)이고 쑥섬이다. 마을 담장에 그려져 있는 고양이 조형물과 그림. 길손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한다. 이돈삼 비밀의 정원에 세워져 있는 고양이...
편집에디터2022.07.07 16:15갯벌에서 뻘배를 타는 장도의 어머니들. 뻘과 갯물을 적절히 이용해 움직인다. 이돈삼 보성 벌교는 '꼬막의 지존' 참꼬막의 주산지다. 참꼬막은 알이 굵다. 비릿한 냄새가 약간 난다. 육질을 손으로 만지면 오므라들 정도로 싱싱하다. 조정래의 소설 에도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고 언급돼 있다. 벌교꼬막의 4분의 3을 생산하고 있는 섬이 장도다. 장도는 '꼬막섬'이다. 장도를 꼬막섬으로 만든 건, 여자만(汝自灣)의 갯벌이다. 여자만 갯벌은 차진 진흙갯벌이다. 갯벌이 화장품 크림보다 곱고, 아이스크림만큼 부드럽다. 람사르습지, 습지보호구역,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재된 갯벌의 '끝판왕'이다. 장도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다. 썰물 때가 돼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뻘배를 탄 마을 어머니들이 갯벌을 점령한다. 기계의 힘을...
편집에디터2022.06.23 15:50강진갑부 김충식의 옛 별장. 강진미술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강진은 '남도답사 1번지'로 통한다. 빼어난 풍광에다 품격 높은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살아 숨쉬고 있어서다. 월출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강진은 높고 낮은 산과 바다를 끼고 있다. 강진만 주변의 구릉이 넓고, 마량포구에는 낭만이 넘실댄다. 1000년의 신비를 간직한 강진청자,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절집 무위사도 자랑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알려진 시인 김영랑도 강진에서 났다. 시대를 초월한 큰 스승 다산 정약용(1762∼1836)도 강진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큰 족적을 남겼다. 다산의 강진 유배는 신유박해에 이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시작됐다. 강진 유배생활은 1801년부터 1818년(순조 18년)까지 18년 동안 계속됐다. 유배기간 이학래 등 18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
편집에디터2022.06.09 16:47용암마을의 담장 벽화-마을의 당산제와 줄다리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돈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지키고 서 있다. 흡사 성곽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 네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크고 굵은 고목에서부터 비교적 젊은 나무까지 모였다. 오래된 나무이지만 가지가 많이 뻗고, 이파리도 우거졌다. 도란도란 화기애애한 가족 같다. 나무숲에는 마루 넓은 정자가 들어앉아 있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마을사람들의 쉼터임을 알 수 있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바람도 솔솔 얼굴에 와 닿는다. 마음 같아선, 두 다리 쭈-욱 뻗고 드러눕고 싶다. 금세 낮잠이 몰려올 것 같다. "시원하요? 어디서 왔소? 여기가 우리마을 쉼터요. 가장 굵은, 이 나무는 수령이 500년은 넘었을 것이오. 해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나무요...
편집에디터2022.05.26 16:42김응문 일가 현창비를 세우는 이유는... 김응문 일가 현창비 옆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김응문 장군 일가 현창비가 세워졌다. 김응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무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제막식은 위령제, 진군식, 현창비 제막식, 진혼무, 마당극 순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월 11일․황토현 전승일)을 앞둔 지난 5월 4일 무안 차뫼마을에서다. 김응문(1849∼1894)은 '김창구'로도 불렸다. 몽탄 일대의 접주로 활동하며, 전투 자금을 모으는 데 앞장섰다. 자신의 집에 대장간을 설치하고, 갖가지 무기도 만들었다. 마을주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김응문은 농민군을 모아 백산전투, 황룡강전투 등에 참가했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 주력부대가 공주 우금치에서 패한 뒤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해 11월 같은 무안 출신의 배...
편집에디터2022.05.12 16:32이순신의 표준 영정. 충민사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다. 이돈삼 여수는 이순신과 엮인다. 호남이 다 그렇지만, 여수는 더욱 각별하다. 임진왜란 때 여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머물던 통제영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온 건 1591년. 통제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부터 1601년까지 10년 가까이 설치됐다. 하여, 여수는 이순신이 전라도 백성들과 함께 왜란을 극복한 현장이 됐다. 거북선을 처음 출정시킨 곳도 여수였다. 여수가 이순신이고, 이순신이 여수였다. 때마침 이순신 탄신(4월 28일)을 맞았다. 발걸음이 여수로 향하는 이유다. 연초록으로 싱그럽던 산천이 초록으로 짙어지고 있다. 계절도 초여름으로 향한다. 여수에는 이순신 관련 유적이 많다. 의미도 다 깊다. 널리 알려진 진남관을 비롯 선소, 고소대가 먼저 꼽힌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가 ...
편집에디터2022.04.28 17:10연홍도와 선착장 전경. 파랑과 빨강 계열의 지붕까지도 예술작품으로 변신했다. 이돈삼 연홍도(連洪島)는 미술의 섬이고, 예술의 섬이다. 예술의 섬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일본의 나오시마를 떠올리게 한다. 고흥 거금도와 완도 금당도 사이에 있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신전리에 속한다. 바닷가에 가면, 안 쓰는 물건이나 폐품이 버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일쑤다. 연홍도는 버려지거나 쓰지 않는 어구를 활용해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을이 온통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집의 파랑과 빨강 지붕까지도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갖가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섬길.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함께 예술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돈삼 갖가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섬길.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함께 예술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돈삼 연홍도는 섬 속의 섬이다. 고흥의 끝자락,...
편집에디터2022.04.14 14:58벽파마을 전경. 벽파방조제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이돈삼 진도대교를 넘어 해안도로를 따라 벽파마을로 간다. 지난 주말이었다. 울돌목에서의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이 벽파진에 머물던 그때처럼 비가 뿌리고, 된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이다. 이순신은 1597년 8월 29일, 양력으로 10월 9일 벽파진에 통제영을 설치했다. 이순신은 울돌목으로 수군진을 옮기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며 명량에서의 전투를 그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벽파마을 전경. 벽파방조제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이돈삼 이순신은 명량대첩을 하루 앞둔 9월 15일(양력 10월 25일) 조수를 타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긴다. 울돌목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수의 군사와 배로 많은 수의 일본군과 일본의 전선에 맞서려면 울돌목의 좁은 해로가 제격이라는 판단...
편집에디터2022.03.24 14:43광양 추산마을 전경. 남도의 명산 백운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돈삼 완연한 봄날이다. 새봄에도 가볍게 다니려면 건강을 챙겨야 한다. 고로쇠 약수가 떠오른다. 효능은 이미 입증됐다. 자당과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철분 등 무기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 비타민 B1, B2, C도 많이 들어 있다. 뼈에 이롭다. 위장병에도 특효가 있다. 골리수(骨利水)로 불린다. 고로쇠 약수 한 사발을 그리며 광양 추산마을로 간다. 백운산 자락은 고로쇠 약수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마을 담장부터 다르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약수에 얽힌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좌선을 오래 한 도선이 다리를 펼 수 없었는데, 수액을 마시고 기운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다섯 토막의 삽화로 고로쇠 약수의 효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에 사는 동양화가 김정국의 솜씨다. 이 약수로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도 ...
편집에디터2022.03.10 16:45만호동 전경. 목포진 역사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보통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드디어 목포로 이사했다. 그 전에 나는 틈만 나면 뭍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혼자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며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다.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독학을 하겠다고 했다. …(중략)… 자식들을 뭍에서 공부시키겠다는 어머니의 의욕이 합쳐져 생활 터전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뭍으로, 큰 곳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배에 올랐다. 1936년 가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년 시절에 대한 회고다.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년 김대중의 눈에 비친 목포는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하의도 생활을 정리하고 함께 나온 어머니 장수금은 목포항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언덕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다. 그 '별천지'가 지금의 목포시 만호동이...
편집에디터2022.02.24 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