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지하상가·지하철역, 폭염 속 노인 휴식처 '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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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지하상가·지하철역, 폭염 속 노인 휴식처 '각광'
'만남의 광장' 빈 자리 찾기 힘들어
장기·바둑·TV 시청하며 여가 즐겨
"무더위에 마땅히 갈 장소 없어서"
경로당·복지관 텃세·비용 부담 호소
전문가 "노년층 여가시설 확충을"
  • 입력 : 2025. 07.15(화) 18:08
  • 이정준 기자 jeongjune.lee@jnilbo.com
연이어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15일 찾은 광주 동구 ‘만남의 광장’. 휴식을 취하는 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정준 기자
“밖에 돌아다니면 쓰러져요. 쓰러져. 여기 있으면 더위도 피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있으니 즐겁죠. 텃세 부리는 노인복지관보다 훨 나아요. 앞으로도 자주 올 생각입니다.”

한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치솟는 광주광역시의 폭염 속에서 광주 금남지하상가 ‘만남의 광장’과 지하철 1호선 금남로4가역, 상무역 등이 노년층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은 수년전부터 여름철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더욱 많은 사람이 몰려 앉을 곳 찾기가 힘들 정도다.

15일 오전 찾은 동구 금남지하상가 ‘만남의 광장’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수십명의 노인들이 모여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광장 한켠에는 에어컨이 가동 되고 있었고 노인들은 저마다 흩어져 자리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먹거리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다만 에어컨 바람은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아 노인들은 부채질을 하거나 연신 윗옷을 펄럭이고 있었으며 한켠에는 누워서 잠시 쪽잠을 자는 노인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노인들은 경로당의 ‘텃세’가 싫거나 무더위 쉼터를 찾으려 해도 지역 주민들의 눈치에 밀려 마음 편히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만남의광장은 기본적인 공중도덕만 지키면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폭염도 피할 수 있어 노인들에겐 진정한 쉼터다.

남구에 거주하는 김순길(80)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고 경로당은 불편하고 이런 날씨에 마냥 돌아다기도 힘들어 지하상가를 찾았다”며 “누구의 눈치 안보고 시간 보내기에 딱 좋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이곳을 찾은 신모(77)씨는 “집에서 에어컨 틀면 전기세 나가니까 여기로 온다”면서 “이곳에서는 비슷한 연배들끼리 금새 친해질 수 있으니 시간을 보내기에 최고의 장소다. 해가 지고 더위가 누그러지면 집에 갈 생각이다”고 전했다.
연이어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찾은 광주 서구 상무역.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는 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정준 기자
만남의광장이 대화나 쪽잠 등으로 인기가 있다면, 금남로 4가역은 그야말로 노인들의 엔터테인먼트 명소다.

만남의광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금남로 4가역에는 장기와 바둑 등을 두는 노인들로 항상 북적인다. 이곳에는 카페처럼 식탁과 의자가 있어 바둑이나 장기를 둘 수 있다. 승부를 하는 이들 외에도 옆에서 훈수 두는 이들까지 있어 항상 시끌벅적하다.

서구 상무역의 ‘무더위 쉼터’도 인기다.

이곳은 천장에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어 많은 노인들이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곳을 자주 방문한다는 박경애(79)씨는 “더위를 피하려 이곳에 자주 온다. 최근에는 비가 내려 좀 덜 덥지만, 그래도 비나 강한 햇빛을 피하기에는 참 좋은 장소다”며 “친구들에게도 이 장소를 알려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고객안내센터 직원은 “하루에도 많은 분들이 오고 가다 보니 정확한 숫자는 집계가 어렵지만 많은 분들이 방문하는 것 같다”며 “지난해보다 올해 더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년층 여가 시설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주성 북구 우산종합사회복지센터 관장은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 등의 시설은 그 근처에 사는 노인분들만 이용하다 보니 주택 등에 거주하는 분들은 마땅히 쉴 장소가 없어 지하 공공시설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차원에서 노인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설 공간 확충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서 조선이공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 노인의 경우 복지관 사용이 부담스러워 지하상가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노인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지하상가 등 노인밀집 지역에 안내소 설치 및 상담을 운영하는 등 쉼터 연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정준 기자 jeongjune.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