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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추산마을 전경. 남도의 명산 백운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돈삼 완연한 봄날이다. 새봄에도 가볍게 다니려면 건강을 챙겨야 한다. 고로쇠 약수가 떠오른다. 효능은 이미 입증됐다. 자당과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철분 등 무기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 비타민 B1, B2, C도 많이 들어 있다. 뼈에 이롭다. 위장병에도 특효가 있다. 골리수(骨利水)로 불린다. 고로쇠 약수 한 사발을 그리며 광양 추산마을로 간다. 백운산 자락은 고로쇠 약수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마을 담장부터 다르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약수에 얽힌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좌선을 오래 한 도선이 다리를 펼 수 없었는데, 수액을 마시고 기운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다섯 토막의 삽화로 고로쇠 약수의 효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에 사는 동양화가 김정국의 솜씨다. 이 약수로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도 ...
편집에디터2022.03.10 16:45만호동 전경. 목포진 역사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보통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드디어 목포로 이사했다. 그 전에 나는 틈만 나면 뭍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혼자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며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다.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독학을 하겠다고 했다. …(중략)… 자식들을 뭍에서 공부시키겠다는 어머니의 의욕이 합쳐져 생활 터전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뭍으로, 큰 곳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배에 올랐다. 1936년 가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년 시절에 대한 회고다.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년 김대중의 눈에 비친 목포는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하의도 생활을 정리하고 함께 나온 어머니 장수금은 목포항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언덕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다. 그 '별천지'가 지금의 목포시 만호동이...
편집에디터2022.02.24 14:36돌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돌산대교와 당머리마을 야경. 황홀한 조명에 마을이 빛나고 있다. 이돈삼 '여수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여수밤바다♬….' 마을 건너 돌산도에서 본 돌산대교와 당머리마을 풍경. 마을이 돌산대교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버스커버스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여수밤바다'를 흥얼거리며 여수로 간다. 그렇다고 오늘 목적지가 '여수밤바다'는 아니다. 화려한 밤바다의 조명 속에 들어앉은 여수 당머리다. 당머리는 코로나 시대 '비대면 여행지'로 제격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대교동(大橋洞)에 속한다. 대교동은 오래 전 남산동과 봉산동이 합해져 만들어졌다. 남산동은 예암산의 다른 이름인 '남산'의 아래에 자리...
편집에디터2022.02.10 16:49마을의 담장 벽화. 유팽로의 창의를 주제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돈삼 '합강(合江)'이란 지명이 여기저기에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는다. 두 갈래 이상의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형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한 곳이 곡성 합강이다. 마을을 옥출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옥과천과 순창에서 흘러 내려온 섬진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배산임수의 지형 그대로다. 마을 앞들에 있는 둥글고 작은 독메산의 이름을 따서 '도리산(道裡山)'으로도 불린다. 옥과군 수대곡면, 창평군 수면을 거쳐 지금은 '골짝나라' 곡성군의 옥과면에 소속됐다. 예부터 산과 물이 만나면 음과 양이 모이고, 음양이 어우러지면 생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 자리가 명당이라는 얘기다. 곡성 합강은 의미가 더 깊다. 군계(郡界)이면서 도계(道界)에 해당된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전라북도 ...
편집에디터2022.01.27 15:10담양천변 뚝방마을 풍경. 관방제와 관방제림을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 이돈삼 가분수다. 얼굴이 몸의 절반을 차지한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가 선명하다. 얼굴 가득 엷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모습이 정겹다. 돌로 다듬은 작은 석인(石人)이다. 그것도 2기가 가까이서 마주 보고 있다. 오른쪽이 할아버지다. 맞은편의 할머니보다 더 크다. 머리에 원유관(遠遺冠)을 쓰고 있다. 옛날에 지체 높은 사람이 쓰던 모자다. 얼굴에선 두꺼운 입술과 코가 도드라졌다. 눈은 움푹 패어있다. 턱 밑에 수염이 역삼각으로 길게 내려와 있다. 얼굴에서 인자함이 묻어난다. 왼편은 할머니다. 머리에 탕건을 썼다. 상대적으로 눈과 코, 입 등이 많이 닳았다. 얼굴 표정에는 인정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담양읍에 있는 석인상(石人像) 얘기다. 석인상은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뚝방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1838년...
편집에디터2022.01.13 16:20겨울날 월하마을 풍경. 귀촌인과 외지인들이 늘면서 전원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이돈삼 코로나19와 함께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날마다 부산했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진다. '남도답사1번지' 강진으로 간다.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월하마을이다. 백운동정원과 강진차밭으로 조금은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과 백운동정원은 국립공원 월출산의 옥판봉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속한다. 백운동정원은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됐다.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편집에디터2021.12.30 16:20바닷가에 돌을 쌓아서 만든 독살.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가둬서 잡는, 옛날식 고기잡이 법이다. 이돈삼 바다의 텃밭으로 간다. 말이 텃밭이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생태체험 관광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유용한 갯벌이다. 이 갯벌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7월이었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갯벌은 신안을 중심으로 보성·순천, 충남서천, 전북고창을 한데 묶고 있다. 신안갯벌이 1100㎢로 가장 넓다. 보성·순천과 서천, 고창갯벌이 각 60㎢ 안팎에 이른다. 전남의 갯벌이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수만 년에 걸쳐 되풀이되면서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가치가 무한하다. 갯벌에는 조개와 고둥, 게, 낙지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물고기와 새들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도 갯벌에서 유익한 식량을 얻...
편집에디터2021.12.19 14:35섬진강변 함허정. 누정에서 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돈삼 대한민국은 섬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다. 통계수치가 들쭉날쭉한 탓에 정확한 섬의 숫자는 귀신도 모른다고 한다. 334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유인도 277개, 무인도 1888개가 전라남도에 속한다. 2165개로 우리나라 섬의 3분의 2에 해당된다. 전남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은 신안군이다. 그 뒤를 여수, 완도, 진도, 고흥, 영광, 해남이 잇고 있다. 전라남도의 통계수치다. '골짝나라' 곡성에도 섬이 있다면, 믿을까? 곡성군 입면에 있다. 제월섬이다. 사전에서 섬을 찾아보면 '주위가 수역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라고 나와 있다. 내륙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섬의 분포 상태에 따라 제도(諸島), 군도(群島), 열도(列...
편집에디터2021.12.02 14:33비트. 색깔이 빨갛다고 '빨간 무'로도 불린다. 이돈삼 김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배추밭. 배추가 튼실하게 자랐다. 이돈삼 벼 수확을 마친 들판이 황량해졌다. 볏짚을 한데 뭉쳐놓은 곤포 사일리지가 허전함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단풍 든 나뭇잎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산하가 초겨울을 향하고 있다. 튼실하게 자란 배추와 무, 비트 등 남새는 김장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스산한 바람이 서성거리는 들판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나비'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전라남도 함평군의 나산면 초포리다. 함평이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불갑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해보천이 고막원천과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초포리는 초포, 사촌, 환곡, 사산, 입석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옛날에 작은 포구가 있던 곳이라고 초포, 모래밭이 있었다고 사촌, 옥(玉) 고리의 모양새라고 환곡,...
편집에디터2021.11.18 16:17금남동 거리. 금남동은 곳곳이 문화재이고,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이돈삼 나주는 한동안 여행객들의 마음에서 밀려나 있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음에도 크게 단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웠던 나주가 남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르고 있다. 나주는 오래 전 전라도의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이었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羅州牧)이 913년 동안 유지됐다. 이 기간 나주목사 306명이 부임했다. 나주를 '천년고도', '목사골'로 부르는 이유다. 나주는 북한산과 한강을 배산임수 지형으로 삼은 한양에 빗대 '작은 한양'으로 불렸다. 뒤로는 금성산을, 앞으로는 영산강을 두고 있다. 당시 나주는 인구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나주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세금을 많이 ...
편집에디터2021.11.04 15:41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아픈 역사입니다." 김부겸 국무총리의 말이다. 김 총리는 지난 19일 여수에서 열린 여순사건 73주기 합동위령제 겸 추념식에서 이같이 말하고,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추념식은 지난 6월 여순사건특별법(여수·순천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처음이자, 정부가 주관한 첫 번째 행사였다. 여순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다. 처음엔 14연대 군인들의 반란이었다고,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다. 지금은 여순사건, 여순항쟁 등으로 ...
편집에디터2021.10.21 16:29내평마을 입구에 세워진 마을 표지석. 마을의 지명 유래까지 개겨져 있다. 이돈삼 어렸을 때, 누비이불을 덮고 살았다. 누비이불은 푹신했다. 추운 겨울밤도 거뜬했다. 이불이 무거운 게 흠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누비이불은 형제들의 도화지였다. 돌아가면서 지도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곧잘 그렸다. 하지만 칭찬을 받지 못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동냥을 나가야 했다. 그 시절, 목화가 지천이었다.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다. 딸자식이 많은 집은 더 심었다. 당시 목화솜을 넣은 이불은 첫손가락에 꼽는 혼수품이었다. 목화는 동네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다래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다래 맛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쩍 벌어진 하얀 솜꽃도 아름다웠다. 목화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은 것도 그때였다. '우리 처음 만난...
편집에디터2021.10.07 17:16공동우물 '장수정'의 표지석. 상몽탄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어약연비(魚躍鳶飛). 물고기가 물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 즉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산강변이 그랬다. 물고기가 강물에서 솟아오르고, 하늘엔 새들이 날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강변 풍경이다. 물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숭어가 강변의 정적을 깰 뿐이었다. 물결의 파장이 잔잔한 강물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강변 둔치를 연녹색으로 덮은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도 눈길을 끈다. 고양이나 살쾡이가 속이 불편할 때 뜯어먹는다는 풀이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로도 불린다. 겉보기에 솜털 같지만 따끔한 가시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골탕 먹일 때 썼다는 이야기가 서려 있다. 부인성 질환과 피부병,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강변...
편집에디터2021.09.23 16:44고산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고산서원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장안만목(長安萬目)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一目). '장안(서울)에 있는 1만 개의 눈이 장성에 있는 하나의 눈만 못하다'는 말이다. 청나라 사신이 낸 문제를, 학식 높다고 뽐내던 서울사람들이 풀지 못했다. 대신, 장성에 사는 애꾸눈의 기정진이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에서 태어난 기정진(1798~1879)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한쪽 시력을 잃었다. 기정진은 7살 때 시를 지으면서 '천재'로 불렸다. 고산마을 풍경. 마을이 불태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돈삼 노사 기정진은 1862년 국정의 폐해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한 상소 '임술의책(壬戌擬策)'을 올렸다.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을 다섯 가지 개혁안을 담았다. 사대부의 도덕적 해이와 특권의식도 비판했다. 기정...
편집에디터2021.09.09 16:45고막마을 표지석. 마을의 상징이 된 돌다리가 마을이름과 어우러져 있다. 이돈삼 "너, 고막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그렇게 말 안 들으면, 고막다리 밑에다 버려 버린다." "웬수 같은 ×, 다리 밑에 있는 니 엄마한테 다시 가라." 중장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다. 옛날 어른들은 그랬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거나, 심하게 울면 '다리 밑'을 들먹였다. 그 말을 자주 들은 한 아이는, 진짜 보따리를 싸 들고 다리 밑으로 가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옛 추억 속의 이야기다. 고막대사를 등장시킨 돌다리 벽화. 고막마을회관 앞 벽에 그려져 있다. 이돈삼 고막마을 고막천의 팽나무. 수령 2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돈삼 그 이야기 속의 다리다. 함평 고막천 석교, 이른바 '고막다리'다. 장성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월야·나산을 거쳐 ...
편집에디터2021.08.26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