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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월하마을 풍경. 귀촌인과 외지인들이 늘면서 전원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이돈삼 코로나19와 함께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날마다 부산했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진다. '남도답사1번지' 강진으로 간다.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월하마을이다. 백운동정원과 강진차밭으로 조금은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과 백운동정원은 국립공원 월출산의 옥판봉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속한다. 백운동정원은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됐다.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편집에디터2021.12.30 16:20바닷가에 돌을 쌓아서 만든 독살.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가둬서 잡는, 옛날식 고기잡이 법이다. 이돈삼 바다의 텃밭으로 간다. 말이 텃밭이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생태체험 관광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유용한 갯벌이다. 이 갯벌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7월이었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갯벌은 신안을 중심으로 보성·순천, 충남서천, 전북고창을 한데 묶고 있다. 신안갯벌이 1100㎢로 가장 넓다. 보성·순천과 서천, 고창갯벌이 각 60㎢ 안팎에 이른다. 전남의 갯벌이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수만 년에 걸쳐 되풀이되면서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가치가 무한하다. 갯벌에는 조개와 고둥, 게, 낙지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물고기와 새들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도 갯벌에서 유익한 식량을 얻...
편집에디터2021.12.19 14:35섬진강변 함허정. 누정에서 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돈삼 대한민국은 섬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다. 통계수치가 들쭉날쭉한 탓에 정확한 섬의 숫자는 귀신도 모른다고 한다. 334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유인도 277개, 무인도 1888개가 전라남도에 속한다. 2165개로 우리나라 섬의 3분의 2에 해당된다. 전남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은 신안군이다. 그 뒤를 여수, 완도, 진도, 고흥, 영광, 해남이 잇고 있다. 전라남도의 통계수치다. '골짝나라' 곡성에도 섬이 있다면, 믿을까? 곡성군 입면에 있다. 제월섬이다. 사전에서 섬을 찾아보면 '주위가 수역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라고 나와 있다. 내륙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섬의 분포 상태에 따라 제도(諸島), 군도(群島), 열도(列...
편집에디터2021.12.02 14:33비트. 색깔이 빨갛다고 '빨간 무'로도 불린다. 이돈삼 김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배추밭. 배추가 튼실하게 자랐다. 이돈삼 벼 수확을 마친 들판이 황량해졌다. 볏짚을 한데 뭉쳐놓은 곤포 사일리지가 허전함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단풍 든 나뭇잎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산하가 초겨울을 향하고 있다. 튼실하게 자란 배추와 무, 비트 등 남새는 김장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스산한 바람이 서성거리는 들판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나비'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전라남도 함평군의 나산면 초포리다. 함평이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불갑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해보천이 고막원천과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초포리는 초포, 사촌, 환곡, 사산, 입석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옛날에 작은 포구가 있던 곳이라고 초포, 모래밭이 있었다고 사촌, 옥(玉) 고리의 모양새라고 환곡,...
편집에디터2021.11.18 16:17금남동 거리. 금남동은 곳곳이 문화재이고,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이돈삼 나주는 한동안 여행객들의 마음에서 밀려나 있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음에도 크게 단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웠던 나주가 남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르고 있다. 나주는 오래 전 전라도의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이었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羅州牧)이 913년 동안 유지됐다. 이 기간 나주목사 306명이 부임했다. 나주를 '천년고도', '목사골'로 부르는 이유다. 나주는 북한산과 한강을 배산임수 지형으로 삼은 한양에 빗대 '작은 한양'으로 불렸다. 뒤로는 금성산을, 앞으로는 영산강을 두고 있다. 당시 나주는 인구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나주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세금을 많이 ...
편집에디터2021.11.04 15:41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순천 동천. 여순사건 당시 봉기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싸웠던 곳이다. 이돈삼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입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아픈 역사입니다." 김부겸 국무총리의 말이다. 김 총리는 지난 19일 여수에서 열린 여순사건 73주기 합동위령제 겸 추념식에서 이같이 말하고,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추념식은 지난 6월 여순사건특별법(여수·순천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처음이자, 정부가 주관한 첫 번째 행사였다. 여순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다. 처음엔 14연대 군인들의 반란이었다고,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다. 지금은 여순사건, 여순항쟁 등으로 ...
편집에디터2021.10.21 16:29내평마을 입구에 세워진 마을 표지석. 마을의 지명 유래까지 개겨져 있다. 이돈삼 어렸을 때, 누비이불을 덮고 살았다. 누비이불은 푹신했다. 추운 겨울밤도 거뜬했다. 이불이 무거운 게 흠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누비이불은 형제들의 도화지였다. 돌아가면서 지도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지도까지 곧잘 그렸다. 하지만 칭찬을 받지 못했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 동냥을 나가야 했다. 그 시절, 목화가 지천이었다. 집집마다 목화를 심었다. 딸자식이 많은 집은 더 심었다. 당시 목화솜을 넣은 이불은 첫손가락에 꼽는 혼수품이었다. 목화는 동네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다래는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다래 맛은 떨떠름하면서도 달큼했다. 따사로운 햇살에 쩍 벌어진 하얀 솜꽃도 아름다웠다. 목화를 주제로 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얻은 것도 그때였다. '우리 처음 만난...
편집에디터2021.10.07 17:16공동우물 '장수정'의 표지석. 상몽탄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어약연비(魚躍鳶飛). 물고기가 물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평범한 일상, 즉 태평성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영산강변이 그랬다. 물고기가 강물에서 솟아오르고, 하늘엔 새들이 날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강변 풍경이다. 물 위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숭어가 강변의 정적을 깰 뿐이었다. 물결의 파장이 잔잔한 강물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강변 둔치를 연녹색으로 덮은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도 눈길을 끈다. 고양이나 살쾡이가 속이 불편할 때 뜯어먹는다는 풀이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밑씻개'로도 불린다. 겉보기에 솜털 같지만 따끔한 가시가 있어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골탕 먹일 때 썼다는 이야기가 서려 있다. 부인성 질환과 피부병, 소화불량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강변...
편집에디터2021.09.23 16:44고산마을 표지석.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고산서원 앞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장안만목(長安萬目) 불여장성일목(不如長城一目). '장안(서울)에 있는 1만 개의 눈이 장성에 있는 하나의 눈만 못하다'는 말이다. 청나라 사신이 낸 문제를, 학식 높다고 뽐내던 서울사람들이 풀지 못했다. 대신, 장성에 사는 애꾸눈의 기정진이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에서 태어난 기정진(1798~1879)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한쪽 시력을 잃었다. 기정진은 7살 때 시를 지으면서 '천재'로 불렸다. 고산마을 풍경. 마을이 불태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이돈삼 노사 기정진은 1862년 국정의 폐해를 바로잡을 것을 역설한 상소 '임술의책(壬戌擬策)'을 올렸다. 삼정의 문란으로 인한 폐해를 바로잡을 다섯 가지 개혁안을 담았다. 사대부의 도덕적 해이와 특권의식도 비판했다. 기정...
편집에디터2021.09.09 16:45고막마을 표지석. 마을의 상징이 된 돌다리가 마을이름과 어우러져 있다. 이돈삼 "너, 고막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그렇게 말 안 들으면, 고막다리 밑에다 버려 버린다." "웬수 같은 ×, 다리 밑에 있는 니 엄마한테 다시 가라." 중장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다. 옛날 어른들은 그랬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거나, 심하게 울면 '다리 밑'을 들먹였다. 그 말을 자주 들은 한 아이는, 진짜 보따리를 싸 들고 다리 밑으로 가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옛 추억 속의 이야기다. 고막대사를 등장시킨 돌다리 벽화. 고막마을회관 앞 벽에 그려져 있다. 이돈삼 고막마을 고막천의 팽나무. 수령 2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돈삼 그 이야기 속의 다리다. 함평 고막천 석교, 이른바 '고막다리'다. 장성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월야·나산을 거쳐 ...
편집에디터2021.08.26 16:32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감 농원. 감은 후산마을에서 많이 재배하는 과수다. 이돈삼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 못 가고, 열흘 붉은 꽃도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분홍 꽃으로 100일 동안 유혹하는 꽃이 있다. 꽃 한 송이가 100일 동안 활짝 피어있는 건 아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배롱나무꽃이다. 배롱나무꽃 핀 풍경은 명옥헌원림이 압권이다. 붉은 꽃너울이 누정 앞 연못에 비쳐 반영되는 풍경도 매혹적이다. 하여, 여기 배롱나무꽃은 두 번 봐야 한다. 꽃이 활짝 피어 꽃너울을 이룰 때, 그리고 꽃잎이 떨어져 연못에 가득할 때다. 명옥헌. 원림을 한눈에 내...
편집에디터2021.08.12 15:31한센인 추모 조형물. 당시 한센인들의 고된 노동을 표현하고 있다. 이돈삼 다섯 마리의 말 조형물. 간척으로 하나 된 5개 마을을 가리킨다. 이돈삼 농지를 개간하면, 그 농지를 주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다면 어떨까? 정확히 표현해서, 간척을 하면 그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면….그것도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이 그랬다. 소록도 한센인들의 얘기다. 한센인들은 간척을 하면 소록도 밖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2년 동안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치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났다. 한센인들의 한(恨)으로 남았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덕면 오마리에 오마간척 한센인 추모공원이 있다. 소록도에서 약 12㎞ 떨어진 곳이다. 한센인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오마도 간척지와 소록도가 한눈에 보이는...
편집에디터2021.07.29 14:57손죽마을 풍경.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마을과 돌담이 아름답다. 이돈삼 마을에서 본 삼각산 풍경. 바위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다. 이돈삼 손죽도는 거문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지리적으로는 고흥에 가깝다. 손죽도는 본디 고흥 땅이었다. 1896년 돌산군이 새로 생기면서 관할이 바뀌었다. 돌산군이 여수로 편입되면서, 손죽도도 여수의 품에 안겼다. 여수바다가 품은 353개 섬 가운데 하나다. 손죽도로 가는 배편은 넉넉하지 않다.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로 가는 쾌속선을 타야 한다. 이 배가 고흥 외나로도 축정항을 거쳐 손죽도에 들른다. 고흥 녹동신항에서 차도선형 여객선도 오간다. 손죽도에는 주민등록상 130가구 190여 명이 살고 있다. 실제는 100여 명이 산다. 마을 앞, 유려하게 구부러진 포구에 고운 모래가 깔려있다....
편집에디터2021.07.15 15:05모정마을-겉보기에 전형적인 농촌이다. 하지만 속은 전통이 깊은 마을이다. 이돈삼 나도 모르게 '순간이동'을 한다. 어렸을 때, 수박 서리의 현장으로. 달빛마저도 흐릿한 여름날 밤이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산자락에 있는 수박밭으로 향했다. 밭이랑을 따라 슬금슬금 기어가서, 수박 한 덩이씩 얼른 따서 들고 오는 것이다. 크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 숙련이 된 덕이었다. 혹여 밭주인이 눈치를 채고 "어떤 놈들이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들 땐 줄행랑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수박 한 덩이를 옆구리에 끼고 도망쳐 나올 때엔 스릴마저 느껴졌다. 그 수박은 더 맛있었다. 꿀맛, 그것이었다. 수박과 참외 서리뿐 아니다. 깊은 밤에 토끼와 닭·오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왔던 기억도 소환한다. '거사'를 함께 했던 일행에는 밭이나 동물의 주인집 아들이 끼어있기 일쑤였다. 수박 서리를...
편집에디터2021.07.01 16:44난장기-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다. 이돈삼 바닷가의 숲으로 간다. 영광 진성마을이다. 영광군 법성면 진내리와 법성리를 합해서 이름 붙였다. 법성면에 있는 여러 마을 가운데 가장 컸다. 옛 법성진의 치소도 106년(1789∼1895) 동안 자리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군사의 중심지였다. 지난 6월 14일이 음력 5월 5일 단오였다. 옛날에 단오는 설날, 추석, 한식, 정월대보름과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큰 행사였다. 그 가운데서도 영광 법성포는, 동해안 강릉과 함께 단오제의 전통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3호로 지정돼 있다. 법성포 단오제는 조선 중기부터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법성포 단오제가 열릴 때는 조기 떼가 영광 칠산바다로 알을 낳으려고 찾아드는 즈음이었다. 조기가 많이 잡히면서 파시가 열렸다. 어부들 손에도 돈뭉치가 쥐어졌다. 단오제의 규모...
편집에디터2021.06.17 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