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전투가 끝난 뒤 임준영은 이틀 동안 작전 해역을 수색했다. 나는 임준영에게 전선 2척과 어선 5척, 그리고 군사 50명을 맡겼다. 임준영은 이틀 후 군사를 인솔하고 암태도로 돌아와 보고했다. 임준영은 떠다니는 적의 시체 2000여 구를 건져서 묻었다. 연안 갯벌 쪽으로 다가오는 시체만을 정리했고 원양으로 떠내려가는 시체는 수습하지 못했다." 김훈의 소설 중 일부다. 난중일기를 기초로 쓴 이 소설에는 많은 수사자(水死者)가 등장한다. 해전(海戰)이니 응당 물에 빠져 죽은 이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눈을 뜨고 읽기가 난처할 ...
편집에디터2022.05.19 15:41오월은 또 이렇게 왔다 싱그러운 계절이라지만 언제부턴가 잔인한 계절이라고도 부르는 오월이다 '민주의 성지'라 말하는 광주에 오는 외지인들에게는 세월은 자꾸 흘러서 오래 전 일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5.18 묘역이 참배의 차원을 넘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이제 다소 식상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광주 시민들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오월이다 이어지는 정치인들의 들락거림에는 관심이 없고 오래 전에 구묘역에서 찍었던 사진들이라도 들춰보면서 그날의 함성과 울분을 되새기고 희생된 민주영령들을 추모한다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지만 아니, 많...
편집에디터2022.05.19 15:42김응문 일가 현창비를 세우는 이유는... 김응문 일가 현창비 옆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김응문 장군 일가 현창비가 세워졌다. 김응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무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제막식은 위령제, 진군식, 현창비 제막식, 진혼무, 마당극 순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월 11일․황토현 전승일)을 앞둔 지난 5월 4일 무안 차뫼마을에서다. 김응문(1849∼1894)은 '김창구'로도 불렸다. 몽탄 일대의 접주로 활동하며, 전투 자금을 모으는 데 앞장섰다. 자신의 집에 대장간을 설치하고, 갖가지 무기도 만들었다. 마을주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김응문은 농민군을 모아 백산전투, 황룡강전투 등에 참가했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 주력부대가 공주 우금치에서 패한 뒤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해 11월 같은 무안 출신의 배...
편집에디터2022.05.12 16:321층 28.65m의 푸른 고래 . 차노휘 '꿈'이 만들어낸 박물관 이런 곳에서 하룻밤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아프리카 코끼리 부대가 달리고 코끼리의 조상인 워렌 마스토돈(Warren Mastodon)이 진흙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높이 15m인 바로사우로스(Barosaurus)가 발밑에 있는 어린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천적인 알로사우루스와 한 판 승부를 벌이는가 하면 에서 보던 4.5m 높이에 15m 길이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가 먹잇감을 찾기 위해 눈을 희붐하며 활보하는 그런 곳? 이것이 좀 시시하다면 '인도의 별'이라 불리는 563캐럿의 사파이어나 31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 운석 아니하이트를 찾아나서는 모험이라면? 우주 대폭발(빅 뱅)이나 지진이 일어난다면? 정말 그런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가 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
편집에디터2022.05.12 16:14일군의 농악대가 한 집에 이르렀다. 집주인은 안쪽에서 맞이하고 농악대는 바깥쪽에서 연주한다. 4/3박자 리듬이다. 구음보(口音譜)로 적어보니 '깽매 깽매 구갱깽/ 구갱매 깽매 구갱깽'이다.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농악대원들 모두 합창하여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쥔 쥔 문여소/ 어서어서 문여소'라 한다. 쥔장에게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임을 알 수 있다. 꽹과리와 더불어 울리는 악기의 리듬 패턴이 이 요청의 말과 합일하여 공명(共鳴)한다. 이를 '문굿'이라 한다. 마당에 들어선 농악대가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샘이다. 문굿 보다는 더...
편집에디터2022.05.12 16:24고정주 영정 규장각 직각을 박차고 낙향하다 임진왜란 당시 담양에서 거병했던 학봉 고인후(高因厚, 1561~1592)가 부친 제봉 고경명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순절한다. 그리고 학봉의 5남매(4남 1여)가 맡겨진 곳이 외가였던 창평이었다. 외조부모는 사고무친의 외손들을 따뜻하게 보살핀다. 학봉의 후손들이 창평에 세거(世居)하게 된 이유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 주권을 상실한다.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힘을 길러야 한다는 자강론(自强論)이 등장했다. 사회진화론에 바탕을 둔 애국계몽운동이었다. 이에 반해 일본과 투쟁을 통해 국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무장투쟁론이다. 이들은 화승총으로 무장하고 일어섰다. 바로 한말 의병이다. 학봉의 후손들도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고자 목숨을 걸었다. 학봉 11대 사손(祀孫, 봉사손)이던 녹천 고광순(...
최도철 기자2022.05.11 16:20영암 가야금산조 테마공원 전경. 영암군 제공 우리 음악을 크게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나눈다면, 민속음악은 다시 성악과 기악으로 나눌 수 있다. 성악(聲樂)은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을 말한다. 악곡의 종류에 따라서 판소리 등의 창가, 민요, 가요, 가곡, 기타 따위로 구분한다. 연주 형태에 따라서는 독창, 중창, 합창, 제창, 기타 등으로 나누고 기능에 따라서는,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 놀면서 부르는 노래, 종교적인 제의에서 사용하는 노래, 기타 등으로 구분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어떤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한 음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기악(器樂)은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연주자의 수에 따라 독주, 중주, 합주 등으로 나누고 표현 형식에 따라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실내악곡 등으로 나눈다. 우리 민요의 가창 방식...
편집에디터2022.05.05 15:36나는 자주 여행을 떠난다 국내의 이곳저곳만이 아니라 물설고 낯설은 다른 나라의 깊숙한 곳도 마다하지 않고 무대포식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우리 인생 그 자체가 여행이지 않던가 몇몇의 지인들과 어울려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서 떠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다소 외롭기는 하지만 홀가분 그 자체가 보석이다 휴식을 위한 것, 단순 관광을 위한 것, 일을 위한 것, 아니면 죄를 짓고 도망을 치는 여행자까지도 그 순간만은 자유인이 되는 것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자는 행복한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가고 고원에서 만년설을 ...
편집에디터2022.05.05 15:33언제나 그렇듯, 푸르름이 짙은 5월이 시작되었다. 올해 2022년 5월은 무슨 일들이 있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언제나 그렇듯, 광주에서 5월을 맞이한다는 것은 언제나 많은 생각이 든다. 아직도 뉴스에서는 이 시기가 되면 '5·18 민주화운동 왜곡 대응' 관련 기사를 마주하게 된다. 42년의 간극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우리의 움직임은 어디를 향해있나 상념에 잠기곤 한다. 인도의 환경 운동가이자 작가인 '아룬다띠 로이(Arundhati Roy)' 가 무차별적인 국가의 강 유역 댐개발로 인해 매 말라가는 나르마다(Narmada) 강을 바라보며 "나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예술가가 아닌, 저 강이 원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간절함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시대적 상징성이자 예술(예술가)의 태도와 관점을 다양하게 응시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역사는 누구의 소명이...
편집에디터2022.05.01 16:57유리로 된 구겐하임미술관 천장. 차노휘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푸른 생선 뱃속이 이런 모습일까. 구겐하임 미술관 1층에 누워서 천장을 멍하게 보고 있으려면 여럿생각이 든다. 고래 뱃속에서 3일간 있었다는 성경 속 요나 같기도 하고, 요나가 머물렀던 고래뱃속을 생명탄생공간으로 상징화한 모 문학작품의 자궁 안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 무덤 같기도 하다. 푸른 조명이 굴곡진 안쪽의 로턴다(Rotunda)라 불리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나선형 곡선에 은근히 스며들어 있을 때면, 흡사 6개의 아가미(1층부터 6층)가 자체 발광하는 것도 같다. 물을 들이켰다가 내뱉을 때마다 야광빛 아가미가 꿈틀거리면서 등뼈가 있는 공간으로 휴, 숨이 차오를 것 같은 뻥 뚫려 있는 중심 공간. 마침 그곳에 긴 스크린이 걸려있고 흑인 뮤지션이 스크린 속에서 전위적인 음악을 장송곡처...
편집에디터2022.04.28 17:03첫번째 동굴, 감실이 있는 에고의 방. 이윤선 경악! 바로 그 자체다. 거대한 땅굴, 7년간 매일같이 그것도 혼자서 굴을 팠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돈벌이로 한 것도 아니다. 굴을 다 파놓고도 자랑은커녕 문을 닫아걸었다. 전남 장흥의 사자산 자락, 평범한 시골이지만 굴은 예사스럽지 않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갖가지의 조형물들이 가득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거대한 지하 조각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면적 약 500평 규모에 굴 길이만 합쳐도 약 100미터 정도는 될 것 같다. 굴속의 각종 이미지는 부조 중심으로 50가지 정도다. 한 작가의 구도자적 수행공간으로 시작한 특이한 지하 현장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쓴 해설의 첫 대목이다. 4월 초 발행된 신간, '강대철 조각토굴'(살림출판, 2022) 내용이다. 사실 나도 지난해 4월 윤관장을 따라 ...
편집에디터2022.04.28 16:24이순신의 표준 영정. 충민사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다. 이돈삼 여수는 이순신과 엮인다. 호남이 다 그렇지만, 여수는 더욱 각별하다. 임진왜란 때 여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머물던 통제영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온 건 1591년. 통제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부터 1601년까지 10년 가까이 설치됐다. 하여, 여수는 이순신이 전라도 백성들과 함께 왜란을 극복한 현장이 됐다. 거북선을 처음 출정시킨 곳도 여수였다. 여수가 이순신이고, 이순신이 여수였다. 때마침 이순신 탄신(4월 28일)을 맞았다. 발걸음이 여수로 향하는 이유다. 연초록으로 싱그럽던 산천이 초록으로 짙어지고 있다. 계절도 초여름으로 향한다. 여수에는 이순신 관련 유적이 많다. 의미도 다 깊다. 널리 알려진 진남관을 비롯 선소, 고소대가 먼저 꼽힌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가 ...
편집에디터2022.04.28 17:10전라좌수영 관할 녹도진의 만호(萬戶) 정운이 배향된 흥양(고흥) 녹도진 성안의 쌍충사(雙忠祠). 정운 영정(충절사) 충장공 정운 장군 신도비(해남) 정운을 기리기 위해 '정운함'이라 명명한 해군 잠수함. 조선 수군의 신망을 받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관할 녹도진의 만호(萬戶)는 정운(鄭運, 1543~1592)이었다. 정운이 임진왜란 당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는 선조 27년(1594) 8월 12일자 『선조실록』의 다음 대화가 적격이다. 선조가 "임진년 이후 우리 군대가 움츠리기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묻자, 유성룡이 "정운이 죽은 후 수군의 사기가 꺾인 탓에 교활한 적병에게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가벼이 나서지 못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정운이 1592년 9월 1일 부산포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 조선 수군의 사기가 크게 꺾였고, 그래서 아군이 물러서기만 ...
편집에디터2022.04.27 16:34백제시대 전돌, 부여 외리 문양전 중 산수귀문전-국립중앙박물관 "나의 친우 성번중의 집에 일찍이 귀신의 장난이 있었는데, 초저녁 종이 울릴 무렵에 은은히 서산의 수풀 속에서 나와 돌을 던지기도 하고 불을 붙여 와서 한 여종을 능욕하여 임신이 되었는데 마치 사람과 접촉하는 것 같았다. 민가에 이따금씩 이러한 환난을 만나는 수가 있으니, 의원들이 말하는바 귀태라는 것으로, 백방으로 막으려고 애써도 되지 않는다." 김안로가 지은 야담설화집 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귀태설화(鬼胎說話)라고 한다. 흔히 얘기하는 도깨비 이야기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를 '두려워하고 걱정함' 또는 '나쁜 마음'이라고 풀이해두었다. 홍나래는 귀태를 이렇게 분석한다. "귀태 이야기 속 주인공은 아비 없이 태어났다는 소문과, 나자마자 세간의 비웃음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아이들이다. 그는 철이 들면 마을에 머...
편집에디터2022.04.21 16:22전남 광양에 있는 해발 1,222m 높이의 백운산 남쪽으로 광양만과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론 지리산의 주능선이 펼쳐져 보이는 명산이다 도선국사의 부도 탑이 있는 옥룡사지로 가는 소풍길이 좋고 이른 봄철에 나오는 고로쇠 수액 채취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백운봉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 있겠지만 주봉과 따리봉 사이에 있는 아구사리 동산 한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흔적들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여순사건의 주동자들이 처음 숨어든 곳이며 전남 빨치산의 최후 보루였던 곳이 바로 이 산이지 않던가....
편집에디터2022.04.21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