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0> 옛 국군병원…'5월광주' 조망하는 미래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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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30> 옛 국군병원…'5월광주' 조망하는 미래 현장으로
■잊혀진 자리, 가능한 역사
  • 입력 : 2022. 05.01(일) 16:57
  • 편집에디터

언제나 그렇듯, 푸르름이 짙은 5월이 시작되었다. 올해 2022년 5월은 무슨 일들이 있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언제나 그렇듯, 광주에서 5월을 맞이한다는 것은 언제나 많은 생각이 든다. 아직도 뉴스에서는 이 시기가 되면 '5·18 민주화운동 왜곡 대응' 관련 기사를 마주하게 된다. 42년의 간극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우리의 움직임은 어디를 향해있나 상념에 잠기곤 한다. 인도의 환경 운동가이자 작가인 '아룬다띠 로이(Arundhati Roy)' 가 무차별적인 국가의 강 유역 댐개발로 인해 매 말라가는 나르마다(Narmada) 강을 바라보며 "나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예술가가 아닌, 저 강이 원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간절함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시대적 상징성이자 예술(예술가)의 태도와 관점을 다양하게 응시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역사는 누구의 소명이나 상처라 명명할 수 없고, 기억은 누구의 책임이거나 의무가 될 수 없기에 우리의 역사와 기억은 삶, 그리고 존재 자체로 기억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80년 5월 처참한 희생과 항거 끝에 광주는 결국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아직까지도 5·18 진상문제가 우리 시대의 숙제로 남아있으나 역사적 증명과 사실은 확연하게 내려진 상태이다. 40년의 시간과 세월이 지나는 동안 광주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는 5월을 경험하고, 보아왔고, 기억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오늘까지도 직·간접적 공감을 통해 마주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과거 독재정권에 대응했던 지난 시간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 써내려간 현재의 촛불이자 시대의 정치·사회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오월의 광주, 정신'은 한국 사회문제 및 문화예술 현장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별 자유의지와 나아가 세계 인류의 평화까지도 다른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1980년 5월에서 오늘로, 역사적 사건에서 보편적 일상으로'를 주제로 기획된 전시⟪메이투데이(MaytoDay)⟫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재)광주비엔날레가 선보이는 다국적 특별전시 프로젝트였다. 전시회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5·18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민주주의 정신의 동시대성을 예술을 통해 탐색한다. 전시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유산들을 국제적인 맥락에서 재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담론들이 생성되는 장을 형성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이념화된 편향적 시선에서 한 발짝 벗어나 5·18민주화운동의 숨겨진 의미와 가치를 현재의 급변하는 사회·문화적 시각으로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창립 이래 '광주 정신'을 세계에 알리며 동시대 예술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였고,⟪메이투데이⟫전시를 통해 지난 시간 동안 축적되어온 비엔날레의 역사와 기록을 꺼내어 재조명하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복원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80년 5월의 광주와 질곡의 역사 혹은 현재를 관통하고 있는 해외 도시들을 전시 장소로 연결하여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 민주주의 담론과 관점들을 예술의 시각을 통해 제시한 것이다. 대만 타이베이, 한국 서울, 독일 쾰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총 4개의 도시에서 초청 큐레이터의 기획 아래 전시가 구성되었다. 각각의 전시들이 함의하고 있는 서사들은 이후 하나의 전시로 재편되어 광주를 거쳐, 현재는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예술로 승화된 5월 정신'의 미학적으로 재해석된 <꽃 핀 쪽으로> 전시가 진행 중이다.

볼수있는것과말할수있는것사이_이연숙 작가 작품 설치 중_2021년

작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위치한 구국군광주병원 옛 터에서 진행 된 전시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공동 기획 이선, 임수영) 는 광주의 일상에서 격리되고 잊혀져 병원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병원을 찾아가 광주작가들과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1964년 개원한 구국군광주병원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학생과 시민이 치료를 받았던 군사병원(군병원)으로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로 등록되어 있지만, 2007년 함평으로 이전한 이후 '구 국군광주병원 옛터'로 불리우며 도심 속에 폐허처럼 남겨져 있었다.

지도나 네비게이션에도 잡히지 않는 이곳은 광주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으로,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었기에 자연적 동식물의 환경이 최적화 되어 있고, 지역민들은 흡사 '남도의 DMZ' 라고도 불렀다.

광주비엔날레_볼수있는것과말할수있는것사이_옛국군광주병원_2021_ⓒ광주비엔날레

이곳은 근현대사 주요 사적지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아카이브 기록되어 있고, 광주 5.18의 역사와 기억, 아픔과 치유, 폭력과 저항이 공존하는 장소이자 의료 공간으로써 구)국군광주병원은 각각의 서사에서 사유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주인공이자 내러이터(narrator)가 되기도 하며, 배경이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5.18민주화운동은 기념화 된 과거의 역사가 아닌, 오늘의 일상에서 다른 '가능한 역사(potential history)'를 상상해보고 말할 수 있게끔 한다. 그곳은 잊혀진 기억의 자리였으며 상흔이자, 피하고 싶은 과거였고, 풀어야하는 현재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구국군광주병원는 군사시설 특수성으로 인해 광주 시민으로부터 소외되어, 이후 광주시민의 일상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고 2018년 광주비엔날레 커미션프로젝트(GB커미션)를 시작으로 일정 공간을 장소 특정 '전시장(exhibition hall)' 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후 2021년 동시대의 국제 현대미술작가들이 참여한 GB커미션 작업과 함께 <메이투데이> 전시는 이러한 병원의 일시적 개방에 동참하는 셈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립 트라우마센터'로 활용방안이 계획되어 있다. 지난 5.18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광주광역시는 '어린이 역사 교육관',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치료 공간', '기념공원'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구국군광주병원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 온 것인지 모른다. 2018년 5.18 기록관이 입수한 1980년 당시 현장을 기록한 촬영 영상은 국군광주병원에 실려 온 남자를 비롯한 어린이와 여성의 모습을 포착하며 5.18의 참상을 다시금 조명했고, 이후 밝혀진 전505부대 수사관의 증언으로 병원의 보일러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광주시민들의 시신 소각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밝혀지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감히 떠올릴 수 없는 1980년 그토록 처참한 희생과 항거 끝에 광주는 민주주의를 얻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5.18 진상문제가 우리 시대의 숙제로 남아있으며 역사적 증명과 사실은 확연하게 내려진 상태임에도 그 숙제와 진실을 풀어야만 하는 신군부 중요 인물 5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면조사위원회가 직접 만나 조사하겠다고 통지한 인물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이희성, 정호용 5인이다.)

오월의 광주는 한국 사회문제 및 세계인류 문화예술 현장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각하며 전시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는 우리의 시선이 간과해 온 예술의 역사적 발생과 그 변화를 추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2021년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 전시는 1980년 5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광주의 구국군광주병원이 마지막으로 예술가(예술)를 필요로 하는 시간임을 인지하고, 장소성과 역사가 창작자의 예술적 관점에서 해석되어 약 두달여 시간 동안 구현되어 종료 되었다. 지난 40여년의 시간 마주하지 못했거나 잊혀졌던 '5월의 광주'를 다시 조망하는 미래의 현장이자 사유로 기억되었으면 했다. 전시를 위해 기획자, 참여 작가 및 지원 담당자들은 도면, 화장실, 전기, 물도 나오지 않는 그 곳에서 매일, 매일 숨죽이며 역사적 상흔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애썼고, 기도하듯 작품들을 구상·배치하며 그 공간에 작은 염원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과 보이지만 애써 외면하려 했던 것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것과 차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사유와 침묵의 틈 사이'가 희미한 윤곽으로 나마 기억되었길 바란다.

이선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